대한민국을 만든 고전들_아홉 번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60년대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모르는 청춘이 있을까. 전혜린의 유고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1970년대 말까지 청년들의 마음을 뒤흔든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다. 소녀라면 전혜린을 거쳐 여성이 돼 갔고, 소년이라면 몸살 앓는 청춘의 신열을 전혜린의 글을 통해 풀어냈다.
[GREAT TEACHING] 전혜린의 서재, 그 시절 청년들의 영혼
1965년 1월 10일 3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전혜린은 늘 세간의 관심사였다. 서울대에 입학할 당시 수학 성적이 0점이었음에도 입학 성적이 전체 2위였다는 소문이나, 25세의 나이에 서울대에서 강의한다는 이력은 소문을 넘어 전설이었다. 실제로 서울대 법대에 당당히 붙었음에도 법대 강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훌쩍 독일로 유학 갔다는 얘기 속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전혜린이 보인 지적 탐구의 열정은 광기로 보일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또 작가 이봉구가 전혜린을 떠올리며 “우수가 서린 무서운 눈동자로 그 날카롭고도 매혹적인 에스프리를 쉴 새 없이 발했다”고 떠올리는 것처럼 전혜린의 눈빛과 인상, 심지어 검은 스카프를 두른 채 학림다방에 출몰했다는 이야기까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데미안’에서 ‘생의 한가운데’까지 번역
전혜린이 당대 청년들에게 미친 영향은 번역서에서 더 빛을 발한다. 번역한 책으로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등 10여 편이다. 이 책들은 전혜린의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청춘의 필독서가 됐다. 실제로 ‘데미안’의 경우 김요섭의 번역으로 전혜린 이전에 출판됐으나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발간되고 나서 오히려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 냈다. 전혜린의 해석 이전까지 ‘데미안’은 한 젊은이의 고뇌를 이러저러하게 담아낸 성장소설이었다. 한 소년이 있다고 치자. 소년의 성장이란 부모들의 간섭과 돌봄, 절대적 믿음과 신앙의 세계와 절멸한 채 자기 안의 자아와 만나야 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그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처럼, 하나의 존재가 태어난다는 것은 곧 한 세계를 파괴한다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성장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전혜린은 이 책을 ‘성장’에 방점을 찍고 읽는 것이 아니라 ‘데미안’의 세계로 읽어 낸다. “데미안은 하나의 이름, 하나의 개념, 하나의 이데아다”라고 언급하는 것처럼 데미안은 인간 존재가 실존에 다가가기 위해 부여잡아야 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일까. 전혜린은 ‘데미안’을 두고 ‘독일 전몰학도의 배낭에서 꼭 발견됐던 책’이자 ‘자살한 친구가 죽기 직전까지 읽었던 책, 그래서 무덤 속에 같이 넣어준 책’으로 떠올린다. 그래서 전혜린의 해석 속에서 ‘데미안’은 소년 싱클레어가 대면해야 하는 악마적 세계만이 아니라 한 인간이 부여잡아야 하는 ‘우리 자신의 분신’이다. 독일 전몰학도들의 배낭마다 발견됐던 책을 1960년대 학생들의 가방 속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었던 것, 즉 서로 다른 두 현실이 실은 서로 다르지 않다고 말해 준 것은 전혜린의 해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죽음에 임박한 자가 손에 꼭 쥐고 있는 책, 1960년대 전쟁터에 나간 청춘들이 부여잡은 책으로 ‘데미안’을 손에 쥐게 된 것은 전혜린의 독법과 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도 마찬가지다. 원래 이 소설이 명작이기는 하지만 실은 한국 문단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었고 번역된 작품도 없었다. 1962년 신구문화사에서 세계전후문학전집을 기획하면서 그중 한 권으로 독일의 전후 문학을 선별하는데, 그때 전혜린이 전후 독일 문학으로 꼽은 작품이 ‘생의 한가운데’다. 분명한 것은 전혜린이 꼽은 이 작품이 독일 문학의 대표작으로 매번 손꼽히는 그런 대표작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명작이기는 하나 열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 아니었다는 것. 그런데 전혜린이 ‘생의 한가운데’를 독일 전후 문학으로 추천하면서 여주인공 니나의 삶을 통해 독일 사회의 혼란과 권태 등을 되돌아보게 됐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하게 되는 것처럼 여주인공 니나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이 황폐하고 무미건조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생의 한가운데’는 여주인공 니나와 니나의 언니, 그리고 니나를 사랑하는 박사 슈타인의 이야기다. 슈타인은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자이며, 동시대 지배층의 존경까지 받는 명사지만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권태롭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는 오로지 니나를 보면서 삶의 반짝이는 열정과 기쁨이 무엇인지 느낀다. 어느 날 그런 그가 니나에게 삶이 무의미하다며 탄식하는데 이때 니나가 대답하는 말이 니나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그 의미를 결코 알게 되지 못할 거예요. 그것을 묻지 않는 자만이 해답을 알아요.” 삶은 객관화시켜 그 의미를 깨닫는 무엇이 아니라 생의 한가운데에 자신을 내던지고 느끼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극장과 신문이 가로챈 이 미천한 삶의 표면에서 거짓 냉소로 일관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걸 만한 위험이 없는 삶이란 아무 가치가 없어”라고 말하며 생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용기다. 니나는 나치시대를 배경으로 때로 위험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이카루스처럼 삶의 정점에 돌진한다. 슈타인 박사가 하는 것이라고는 니나의 삶을 그저 기록하는 것, 그 열정을 지켜보지만 한 번도 부여잡지 못한 채 죽어가게 되는 안타까운 아이러니다.


삶의 모순에 대한 절망감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근 15년 동안 전혜린이 쓴 책과 번역한 책을 빼놓고 청년들의 내면을 읽기는 어렵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대중에게 폭발적으로 읽히고 있음에도 그녀가 ‘니나’와 다를 바 없이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 잊히거나 묻힌 채 반추되지 않고 있다. 전혜린이 당시 한국 사회 속에 던진 여러 문제 제기들이 ‘문학 이전의 습작 수준’으로 손쉽게 치부되고 있는 것, 다시 말해 소설, 시, 희곡과 같은 문학작품이 아닌 짧은 에세이와 일기, 편지 등이 전부라는 것, 그럼에도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소품 수준의 일기, 편지 등이 10여 년 이상 청년들의 내면을 채우는 문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전혜린은 한 시대를 온전히 살아내고자 했던 청년의 아이콘이다. 부박한 한국 현실에서 기성세대들의 언어와 풍속, 관념과 관례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번역하고자 했던 청년의 초상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전혜린의 에세이에 대한 열광적 열기가 쉽사리 식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에게 전혜린은 데미안에게 부과하는 의미 이상으로 당시 청년들의 일부다. 번역하고자 하는 세계를 엿본 자들, 그러나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있어야 할 세계를 번역하고 싶었던 청춘들의 열정이다. 그러므로 당시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열광했던 것은 한 개인의 내면을 꽉 채우고도 남는 열정과 그럼에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삶의 모순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다.

전혜린의 죽음은 한 시대의 실존적 죽음이다. 이에 감응한 청년들의 애도, 그 절망과 슬픔의 힘이 10여 년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순례하게 한 힘이었다.


박숙자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