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미국 학계와 월가를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저물가를 바탕으로 한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을 추진해 온 점을 감안하면 이 논쟁은 그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MARKET INSIGHT] 미국 인플레 논쟁 금리 인상 언제 단행될까
올 하반기 들어서자마자 불거진 인플레이션 논쟁의 직접적인 발단은 5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1% 나온 데서 비롯됐다. 현재 미국 중앙은행(Fed)의 물가 목표치는 2.0%로 Fed가 금리 변경 시 가장 중시해 온 원칙 중 하나인 통화론자들의 ‘통화 준칙(monetary rule)’에 따른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소한 2015년 말까지 단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던 금리 인상 우려가 갑자기 불거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인플레 논쟁 가열
일단 재닛 옐런 Fed 의장은 소비자물가가 물가 목표치를 웃도는 것이 ‘통계적 잡음’으로 애써 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Fed의 울트라 통화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해 온 마틴 펄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한 미국 학자와 월가의 시장참여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이들은 5월 이후 소비자물가가 상승한 것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설령 옐런 의장의 주장대로 통계적 잡음이라 하더라도 ‘선제성(preemptive)’을 생명으로 하는 통화정책의 특성상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반박한다.
[MARKET INSIGHT] 미국 인플레 논쟁 금리 인상 언제 단행될까
미국의 통계 집계는 전분기 혹은 전월비가 기본 원칙이다. 이 원칙은 기준이 되는 분기와 월의 절대 수준에 따라 증감률이 달리 나오는 ‘기조 효과(base effect)’로 경제 현상을 과대 혹은 축소 해석하는 착시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전미경제연구소(NBER) 등은 분기 지표는 2분기 연속, 월별 지표는 3개월 이동 평균치로 경제를 진단하고 해석할 것을 권고해 왔고, 이제는 보편화됐다.

올해 6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어떻게 나올지가 더 관심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5월에 이어 6월 이후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목표치를 웃돌면 ‘인플레 논쟁’은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3개월 이동 평균의 마지막 달인 7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17일 전후 발표될 예정이다.

이때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목표치를 웃도는 현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금융위기 이후 ‘제로(0) 금리’와 ‘양적완화’로 상징되는 ‘버냉키-옐런식 통화정책’을 더 이상 끌고 갈 명분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발표 이후 각종 매스컴에 비춰지는 옐런 의장 얼굴에 특유의 여성스러움이 사라진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탓으로 월가의 시장참여자들은 해석한다.

금융위기 극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버냉키-옐런식 통화정책은 여건에 따라 중앙은행 목표와 관할 범위, 기준금리 결정 방식 등 모두가 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과 발권 기능, 최종 대부자로서 은행의 은행, 금융사에 대한 감독 등이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종전의 이론과 관례가 통용되지 않는 ‘뉴 노멀(new normal)’ 여건에서 종전처럼 통화정책을 추진하다간 중앙은행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가장 큰 변화가 통화정책 관할 대상에 실물경제뿐만 아니라 부동산 등 자산시장 여건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문제를 놓고 옐런이 Fed 부의장으로 근무할 당시 ‘그린스펀 독트린’과 ‘버냉키 독트린’ 간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린스펀 독트린은 통화정책 대상에는 원칙적으로 증시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 여건을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의 신념이다.

이 때문에 자산 가격의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이를 감안한 통화정책의 유효성 제고 방안과 새로운 중앙은행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논의의 핵심은 통화정책이 현행처럼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의 안정에만 주력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산 가격 안정도 함께 도모해야 하는지 여부다. 이런 주장에 벤 버냉키 직전 Fed 의장과 재닛 옐런 현 Fed 의장이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대해 미국 학계에서 가장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통화정책 관할 범위 등 정책 여건이 변화된 만큼 중앙은행 목표도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 버냉키-옐런식 통화정책의 기본 원칙이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 목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있는 만큼 밀턴 통화론자와 시카고학파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천사와의 키스’만 할 것을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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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버냉키와 옐런은 금융위기 이후 물가 안정보다 경기 부양과 고용 창출에 우선 목표를 두고 통화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Fed는 2012년 12월 회의에서 물가 안정뿐만 아니라 고용목표제를 양대 책무(dual mandate)로 도입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때 실무 차원에서 고용목표제 도입을 검토하고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사람이 옐런이다. 통화론자 입장에서 보면 ‘악마와의 키스’를 선택한 셈이다.

올해 5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목표치를 벗어난 것을 계기로 조기 금리 인상 결정에 참여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 사이에도 의견이 명확하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당초 예상됐던 2015년 말까지 Fed의 통화정책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한 참석자들이 크게 줄었다. 6월 FOMC에 참석했던 FOMC 위원 16명(금리결정권이 없는 위원도 포함) 중 10명이 내년 3월에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채 시장을 비롯해 각종 시장에서도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빠르게 반영되는 모습이다. 향후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을 겨냥한 스마트 머니는 보유 국채를 내다파는 과정에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2.4%대에서 2.6%대까지 단숨에 올랐다. 스마트 머니란 돈의 흐름을 잘 읽어 일반 투자자에 비해 앞서 포지션을 변경해 높은 수익을 기록하는 투자자를 총칭하는 용어다.

최근 인플레 논쟁의 핵심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목표치를 상회한 것이 단순한 ‘통계적 잡음’인가는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들은 특정국이 기준금리를 변경할 때 준칙(monetary rule)에 의할 것을 주장해 왔다. 이를 테면 한국은행의 목표 상한선이 3%일 때 이보다 물가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통화준칙의 핵심이다.

하지만 옐런 의장은 오래전부터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 이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화론자들이 주장하는 ‘통화준칙’보다 ‘최적통제준칙(optimal control rule)’이 더 적합하다는 주장을 해왔다. 최적통제준칙이란 Fed의 양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해 두 목표로부터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정책금리 경로를 산출해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방식을 말한다. 특히 고용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면 물가가 일시적으로 목표치를 벗어나는 것, 즉 통계적 잡음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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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런 의장이 버냉키 전 의장보다 경기 부양과 고용 창출을 지향하는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버냉키 시절까지 Fed는 ‘테일러 준칙’과 ‘수정된 테일러 준칙’에 의해 산출된 적정 금리를 토대로 통화정책을 운영해 왔다. 두 준칙도 물가상승률에 성장률을 더해 금리의 적정성을 따지는 피셔 공식과 달리 중앙은행이 물가와 성장 등 여타 거시경제 목표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에는 양적완화와 같은 비정상적인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음에도 경기 회복과 고용 창출이 한계를 맞고 정책금리도 ‘제로’ 수준에 묶여 왔다. 이 상황에서는 종전의 ‘테일러 준칙’과 ‘수정된 테일러 준칙’은 한계가 크게 노출되는 만큼 ‘최적통제준칙’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옐런의 주장이다. 즉, 물가 이외의 고용 등 다른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기준금리 변경을 안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적통제준칙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 방식이다.

앞으로 옐런이 ‘최적통제준칙’에 따라 통화정책을 운용할 경우 ‘제로’ 금리를 바탕으로 한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을 가능한 장기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가 정상화된 뒤에도 종전의 ‘피셔 방식’과 ‘테일러 준칙’보다 더 오랫동안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6월 FOMC 위원들과 마찬가지로 시장참여자들도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 내년 1분기에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으로 보고 있으나, 그 폭은 완만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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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과 유사한 미국 증시
다우존스 지수도 1만7000선 내외에서 전형적인 ‘워블링 장세(wobbling market)’가 재현되고 있다. 워블링 장세란 정책과 경기, 시장의 흐름이 바뀌는 변곡점에 놓여 있을 때 그때그때 발생하는 호재와 악재에 따라 주가가 비교적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현상을 말한다. 거품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증시 앞날에 대해 방향성을 뚜렷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미국 증시 앞날과 관련해 벌이는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논쟁’이 시작된 지도 2년이 넘었다. ‘비이성적 과열’이란 1996년 들어 주가가 거침없이 오를 때 당시 Fed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이 처음 사용해서 유명해진 용어다. 이 발언 직후 미국의 다우존스 지수는 20% 폭락했으며, 이 과정에서 ‘마진 콜’이 발생한 미국 금융사들의 디레버리지로 아시아 외환위기에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현재 미국 증시는 1996년 상황과 유사하다. 1만7000선 내외에서 움직이는 다우존스 지수는 올 1분기 성장률은 -2.9%까지 떨어짐에 따라 대부분 월가의 시장참여자들은 주가 상승세가 경제 여건에 비해 빠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만큼 월가의 시장참여자들은 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올라가는 유동성 장세의 성격이 여전히 강하다는 의미다.

앞으로 미국 증시는 경기, 실적, 유동성 간 3박자가 충족되는 ‘황금률(golden rule)’이 달성돼야 추가적으로 오르는 칼날 위를 걷는 국면이 예상된다. 거품과 조기 금리 인상 논쟁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 요소가 충족되지 않아 칼날 위에서 흔들리면 의외로 큰 상처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