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선 스탠다드차타드은행 강남PB센터장

조희선 스탠다드차타드은행 강남PB센터장의 경력은 그야말로 ‘글로벌’하다.

국내 하나은행에서 프라이빗뱅킹(PB) 업무를 처음 시작한 그는 2000년 당시 미국 내 최대 증권사였던 메릴린치에 스카우트된다.

이후 2004년 그는 영국계 글로벌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다시 한 번 자리를 옮긴다. 국내 은행은 물론 미국계 증권사와 영국계 은행 등을 두루 거치며, 선진 금융기법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PB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Dinner with PB­­­] “더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덜 잃는 게 관건이죠”
“터프한 경험, 참 많이 했죠.” 은행과 증권을 넘나들며 글로벌 금융사를 두루 거친 조희선 스탠다드차타드은행 강남PB센터장은 자신의 경력을 이 한마디로 축약했다. 한때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원형탈모증마저 생길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나 조 센터장은 한번도 그 시절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쓰디쓴’ 경험으로 인해 얻은 게 더 많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쯤 되자 슬슬 궁금해졌다. 도대체 얼마나 ‘터프’한 경험을 겪었기에 그러는 걸까. 조 센터장으로부터 냉혹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경험과 더불어 그만의 투자 원칙을 들어봤다.


조 센터장님 경력 중 메릴린치 서울지점 이사를 지냈다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국내 은행에서 PB 업무를 처음 시작했는데 어떻게 미국계 증권사로 가게 된 건가요.
“파란만장한 사연이 있죠.(웃음) 아마 그때가 하나은행에서 PB 일을 시작하고 그다음 해니까, 1999년쯤이었어요. 당시 은행에서 실적이 좋은 프라이빗뱅커(PB)들을 3명 정도 선발해 메릴린치에 해외 연수를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당시 메릴린치는 하나은행과 업무 제휴를 맺고 PB 서비스에 자문을 해 주던 파트너였거든요. 운이 좋았던지 제가 그 세 명 중에 한 명으로 선발된 거예요. 그 덕분에 뉴욕 메릴린치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을 배울 기회를 얻게 된 거죠. 2000년에 연수를 다녀와서 3~4개월쯤 지났는데, 메릴린치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거죠. 고심 끝에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그 파장이 적지 않았죠. 은행 입장에서는 믿었던 파트너사에 직원을 위탁교육 시켰더니 오히려 인력을 빼간 셈이 된 거니까요. 저 역시도, 기껏 회사가 키워 주려고 하는데 배신하느냐는 따가운 눈총을 많이 받았고요.”


마음고생이 심했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릴린치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뭔가요.
“말도 마세요. 당시 제 이직과 관련된 얘기가 신문지상에도 오르내릴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개인적으로도 국내 은행에 있었으면 보다 안정적인 앞날이 보장됐을 거예요. 스스로도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라는 고민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그럼에도 편안한 길에 ‘안주’하기보다 ‘도전’을 택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외국계 투자은행(IB)에 대한 막연한 선망 같은 게 있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서 보다 넓은 시야를 키우고 싶은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실제로 글로벌 금융기관에서 일을 해 보니 국내 은행과는 무엇이 가장 많이 다르던가요.
“가장 놀랐던 건 어떤 금융상품도 제한 없이 거래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모든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을 자체 투자 시스템 안에서 볼 수 있도록 해 놓고, 이 중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는 상품을 담당 PB들이 직접 찾아내고, 트레이더를 통해 거래를 성사시키는 거죠. 그러다 보니 같은 PB 업무라도 보다 전문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서울지점에서 근무했지만 미국과 실시간 거래가 가능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국내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금융시장을 경험한 거죠. 그 덕분에 터프한 경험도 참 많이 했습니다.(웃음)”


터프한 경험이라면 어떤 건가요.
“제가 메릴린치에서 근무했던 게 2000년부터 2004년까지예요. 당시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정보기술(IT) 버블이 한창이던 때였거든요.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IT기업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때였고, 당시 세계적인 애널리스트들 역시 이와 같은 흐름이 더 길게 갈 것이라고 내다봤죠. 저 역시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을 한 거죠. 고객들과 상의 끝에 상당히 많은 자금을 IT 관련 주식에 끌어넣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2002년 무렵부턴가, 이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니까 정말로 무시무시하더라고요. 하루 만에 주가가 50% 폭락하고, 그다음 날엔 또 30% 폭락하는데. 생각해 보세요. 10억 원을 투자했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5억 원이 돼 있다면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더욱이 그 모든 책임을 PB인 제가 져야 하는데, 그야말로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더라고요.”


그래도 당시의 경험이 지금까지 PB 업무를 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요.
“그때 깨달은 것이 있는데, 아무리 수익성이 높아 보이는 좋은 상품이라도 자금을 몰아넣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처절하게 배웠죠. 파생상품이나 환리스크에 대한 공부도 그 시절에 다했던 거 같아요. 당시만 해도 외국계 증권사엔 원화 상품이 없었거든요. 2000년대 초반쯤으로 기억하는데,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서 1100원으로 단기간에 대폭락 한 때가 있었어요. 개별 주식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채권 상품 등에서는 수익이 난 곳이 적지 않았죠. 그런데 속상한 게 달러를 원화로 환산하기만 하면 손해가 나는 거예요. 당시엔 고객들도 환리스크를 이해하기 힘들었으니까 이를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달러 투자는 달러 수요가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거였죠.”
[Dinner with PB­­­] “더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덜 잃는 게 관건이죠”
가장 힘든 시기를 꼽으라면 2007~2008년 금융위기 때를 언급하는 PB들이 많은데, 어떻게 보면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네요.
“맞습니다. 한 2~3년 정말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그러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금융시장을 몸으로 부딪히면서 이해하는 과정을 겪은 거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저는 2007~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는 하나도 힘든 게 없었어요.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에서 현재 겪고 있거나 최근 3~4년 사이에 닥친 어려움들을 저는 10년 전에 미리 경험할 수 있었던 거죠. 워낙 변동성이 큰 시장을 한번 겪고 나면 투자할 때도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적정 수익은 언제나 정기예금의 2배. 그 이상을 원한다면 후에 손실이 나더라도 마음이 건강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분에게만 권해드리는 편이에요.”


외국계 증권사 출신이라고 해서 공격적인 투자를 선호할 줄 알았습니다.
“아뇨. 반대예요. 만약 투자자가 30~40대의 젊은 층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는 공격적인 투자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장에서는 투자처가 워낙 없기도 하고요. 저평가된 우량주를 오랫동안 들고 있으면 결국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덴 확신이 있거든요. 하지만 50대 이상의 고객들은 굳이 높은 수익을 위해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없는 겁니다. 아무리 여유 자산으로 투자를 한다고 해도, 몇십억 손해를 보면 속상하지 않을 사람이 없거든요.”


2004년 증권사를 떠나 다시 은행으로 돌아온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외국계 증권사에서 일하는 게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아요. 각자 자신의 업무에 대해 독립적인 문화가 강하잖아요. 당시엔 국내에서도 미국과 직접 거래하는 투자자들이 별로 없던 시기라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더라고요. 어느 순간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욱이 저는 조직이 주는 안락함을 경험해 본 사람이잖아요. 마침 당시에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서울에서 소매금융을 처음 시작하며 지점을 내면서 저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그 후 1년 반쯤 지나서 제일은행 인수를 발표했고, 2006년 통합이 된 거죠.”
[Dinner with PB­­­] “더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덜 잃는 게 관건이죠”
스탠다드차타드의 조직 분위기는 어땠나요.
“(웃음) 은행 전체적인 분위기는 잘 모르겠고요, 적어도 제가 센터장이 되면서 우리 센터만큼은 두 가지가 적절히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2008년 삼성PB센터를 맡으면서 처음으로 센터장이 됐고, 올해 강남PB센터장으로 옮겨 왔거든요. 저는 너무 독립적이거나 혹은 너무 끈끈한 양 극단의 조직을 모두 체험해 본 셈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나름의 기준으로 두 가지 요소의 ‘적정선’을 찾아낸 것 같아요. 회식은 최대한 줄이고 직원들의 독립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는 대신, 직장 내에서 되도록 동료들과 많은 얘기를 주고받으려고 해요.”


현재 맡고 있는 강남PB센터는 주로 어떤 고객들이 많이 찾나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금융 자산이 최소 10억 원 되는 분들이 PB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요. 그중에서도 저희 강남PB센터는 금융 자산 50억 원 이상의 최고 등급 고객들을 관리하는 센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50대 이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회장님들이 많죠. 물론 가끔은 30~40대의 젊은 분들도 있지만 비중이 크진 않아요. 젊은 분들 중에는 자수성가한 분들도 있고 재벌 2~3세들도 적지 않죠. 그런데 인상적인 게 있어요. 예전에는 재벌 2세라고 하면 사실상 부를 물려받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달라요.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계획 아래 교육을 받는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우리 은행에도 PB센터 고객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GFLP(Global Finance Leadership Program)가 있어요. 여기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이력서를 받게 돼 있는데, 그걸 보면 놀라울 정도예요. 초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다니다가, 미국에서 나머지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학교 과정을 다녀요. 이후에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은 영국에서 다니는 거죠. 이런 과정이 아무 이유 없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게 아니거든요. 미국-중국-유럽, 말하자면 중요한 순서대로 그곳의 문화를 익히고 네트워크를 쌓는 과정인 겁니다.”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할 때 조 센터장님만의 투자 원칙이 있나요.
“제가 판단이 빠른 편이에요. 특히 좋다고 해서 들어간 투자처라고 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는 빨리 나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금융시장이라는 건 외부 요소로 인해 얼마든지 그 흐름이 바뀔 수 있는 곳이에요. 더욱이 요즘엔 그 사이클이 굉장히 짧잖아요. 지난달에 좋다고 해서 어떤 종목에 투자금을 넣었는데 이번 달에 보니 그 흐름이 좋지 못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PB들은 이런 경우 고객들에게 면구스러워서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버티다가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는 거죠. 자산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더 많이 버는’ 게 아니에요. 결국은 ‘덜 잃는 게’ 관건이죠. 수익이 날 것 같은 곳을 찾아서 들어가는 것도 PB의 능력이지만, 아니다 싶을 때 과감하게 빠져나오는 결단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 PB들에게 가장 중요한 소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콘래드 서울 ‘37 그릴앤바’에서 맛보는 ‘테이스팅 메뉴’
[Dinner with PB­­­] “더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덜 잃는 게 관건이죠”
서울 여의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콘래드 서울 꼭대기 층인 37층에 위치한 ‘37 그릴앤바’는 한강과 서울의 아름답고 세련된 전망을 자랑하는 그릴 레스토랑이다. 엄선된 식재료로 오픈 키친에서 요리가 완성돼 고객의 시각과 후각을 자극한다. 프리미엄 등급의 소고기, 유기농 가금류와 해산물, 그리고 최고 품질의 신선한 채소를 그릴, 오븐구이, 그리고 삶기 등 단순한 조리 방법으로 식재료의 풍미를 최대한 살리는 것을 콘셉트로 하고 있다. 두 개의 프라이빗 룸을 갖추고 있어 비즈니스 미팅에 적합하다. 이곳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조지 라보스 다 코스타(Jorge Lavos Da Costa)는 아르마니 두바이 호텔을 비롯해 세계 굴지의 호텔에서 경력을 쌓은 그릴 전문 셰프다. 이곳의 대표 메뉴라 할 수 있는 ‘테이스팅 메뉴’는 제철 음식을 기본으로 최대한 식감을 살렸으며, 최고급 호주산 와규 스테이크가 일품이다.



매칭 와인 2010 앙리 부르주아 + 2011 투 핸스
[Dinner with PB­­­] “더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덜 잃는 게 관건이죠”
2010 앙리 부르주아(2010 Henri Bourgeois)는 프랑스산 뮈스카데(Muscadet) 품종의 와인이다. 뮈스카데는 프랑스 루아르(Loire) 강 하류 지역의 백포도 품종으로 무더운 여름 가볍지만 상쾌한 목 넘김이 유명한 와인이다. 테이스팅 메뉴인 레몬의 마리네이트된 새우와 크리미한 칵테일소스의 피니시를 깨끗하게 잡아 준다. 호주산 와규 스테이크와 함께 맛볼 수 있는 2011 투 핸스(2011 Two Hands)는 호주산 시라즈(Shiraz) 품종의 와인이다. 뜨거운 태양의 강렬함을 닮은 풍부한 과실 맛이 인상적이다.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으로 붉은 육류의 메인 요리와 좋은 궁합을 이룬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요리 및 와인 협찬 콘래드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