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SILICON VALLEY] 로펌에서 스타트업 ‘펀딩’을 돕는다고?
윌슨 손시니 굿리치 & 로사티(Wilson Sonsini Goodrich & Rosati)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로펌 중 하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해마다 특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사무실을 직접 내주어 세쿼이아캐피털(Sequoia Capital)의 투자자들을 초청해 투자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것이다. 세쿼이아캐피털은 유투브, 구글, 야후 등의 기업들에 투자한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털(VC)이다. 평소에는 만나기도 힘든 투자자들과의 만남에 수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지사. 로펌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이곳에서 투자자들로부터 좋은 결과를 맺은 스타트업들이 로펌의 새로운 고객으로 계약을 맺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스타트업들에 변호사는 웬만해선 피해야 할 대상이다. ‘소송’과 같은 불상사에 얽혀들지 않는다면 창업 과정에서 변호사를 만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는 다르다. 실리콘밸리의 윌든인터내셔널 벤처캐피털에서 이사를 지낸 윤필구 빅베이신캐피털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꽃은 누가 뭐래도 스타트업 창업자들”이라며 “하지만 그 주위를 도와주는 여러 주체들이 위성처럼 빙빙 돌며 생태계의 일부를 이룬다는 것이 우리와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한다. 회계사나 엔젤투자자, 그리고 로펌의 변호사들 역시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파트너인 셈이다.


실리콘밸리 로펌 ‘벤처지원팀’ 증가
따라서 국내 기업들의 실리콘밸리 창업을 지원하는 홍상민 넥스트랜스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는 로펌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미국은 스타트업들이 법인을 설립하고 창업투자회사로부터 투자를 받는 전 과정에 변호사의 역할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약관 하나에서부터 특허를 신청하는 등의 모든 과정에 이르기까지 법률이 아주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로펌의 입장에서도 실리콘밸리는 놓칠 수 없는 시장 중 하나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수조 원의 시가총액을 가진 벤처기업들만 수백 개가 넘어서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과 로펌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누이 좋고 매우 좋은’ 상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

윤 대표는 “로펌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당연히 법률 프로세스”라며 “다만 실리콘밸리의 경우 로펌 역시 많은 스타트업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종종 투자자와 창업자를 연결해준다든지, 컨설팅을 지원해주는 경우도 있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홍 대표는 “실제로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주요 로펌의 경우 벤처지원팀을 따로 두고 움직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벤처지원팀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에 컨설팅을 제공하거나 펀딩에 도움을 주는 경우를 흔치 않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로펌의 이 같은 적극적인 역할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홍 대표는 “한국에서도 최근 벤처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창업자들만이 생태계를 꾸려갈 순 없다”며 “그런 점에서 로펌 변호사와 같은 다양한 직군에서도 생태계의 일부로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지금의 실리콘밸리를 키운 핵심이나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