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네질도 제냐 (Ermenegildo Zegna)

르마니, 구찌, 베르사체, 휴고보스 등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슈트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제냐에서 양복 원단을 공급받고 있다는 것. 어찌 보면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유명 브랜드들이 왜 다른 경쟁사의 원단을 사용할까 의구심이 들 것이다. 하지만 품질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선택은 늘 제냐일 수밖에 없다. 현재 전 세계의 패션계에서 가장 각광 받는 최고급 원단을 만들어내고 있는 명품 슈트의 글로벌 팩토리, 제냐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892년 이탈리아 북부 산간지방인 트리베로의 작은 마을. 세기적인 전통을 이어갈 브랜드의 창업자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가 태어났다. 그는 20세가 되자 아버지가 경영하던 원단 공장을 물려받아 제냐 기업을 탄생시켰다. 이 모직 공장은 이탈리아 직물사에 길이 남을 존재가 된다. 영국의 직물공업 전통에 대적하려는 포부를 가졌던 제냐는 기존의 낡은 프랑스식 직조기를 새로운 영국식 기계로 바꾸고 최상의 원자재를 산지로부터 직수입해 최고의 품질을 지닌 제품만을 생산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실현해 간다. 품질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으로 1930년부터 자신의 이름인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원단 가장자리에 새겨 판매했는데 이 이름은 원단의 품질을 보장하는 대명사로 인정받게 된다.제냐의 기업은 원단 생산 노하우를 바탕으로 1960년대부터 남성복 시장에 진출한다. 명실 공히 멋쟁이 남성 패션의 대명사로 제냐의 입지를 굳혀가던 1966년,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세상을 뜬다. 이후, 제냐 기업은 그의 아들인 알도 제냐(Aldo Zegna), 안젤로 제냐(Angelo Zegna)로 이어졌으며 현재는 제냐가의 4세손인 파올로 제냐(Paolo Zegna), 질도 제냐(Gildo Zegna), 안나 제냐(Anna Zegna), 라우라 제냐(Laura Zegna)와 베네데타 제냐(Benedetta Zegna)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날 제냐는 원자재에서부터 완제품 생산, 그리고 마지막 판매 단계에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직접 관장하는 소위 ‘수직통합체계’를 구축한 세계 유일의 패션 기업이다.제냐 남성복의 품질 보증은 원자재에서부터 시작된다. 질 좋은 호주산 메리노 울, 내몽고산 캐시미어, 아프리카산 모헤어, 인도산 파시미나 캐시미어, 페루산 비쿠니아, 중국산 실크 원사 등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최고급의 천연원료만을 사용한다. 특히 제냐 원단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울의 품질을 유지 및 향상시키기 위해 제냐는 매년 호주의 양모 생산업체들에 그 해의 최고급 울을 선정해 상을 주고 그 울을 수입해 오고 있다.원단뿐만 아니라 기성복 생산 과정에 있어서도 최상의 착용감을 위한 연구와 노력은 끊이지 않는다. 또한 디자인 개발에 있어서도 사람의 손을 가장 중요시한다. 기계는 인간의 창조력을 반영하는 도구일 뿐, 결국 훌륭한 디자인은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다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제냐는 디자이너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특히 이탈리아적인 감각을 자랑하는 제냐 타이 공장에서는 계절마다 약 3000~4000개의 새로운 디자인이 개발된다. 제냐는 원단에서부터 디자인 및 색상까지 모두가 자체 개발되므로 원단을 공급 받아 쓰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33개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제냐 남성복은 4가지 라인으로 구성된다. 격조와 품위가 느껴지는 최상급 신사복 라인인 쿠튀르(Couture) 라인, 신사복의 디테일과 품질이 돋보이는 사토리얼(Sartorial) 라인, 도시적이고 젊은 감각의 Z 제냐 라인, 레저 캐주얼 제냐 스포츠(Zegna Sports) 라인, 그리고 이 외에도 타이, 슈즈 및 가죽 제품을 포함한 액세서리 라인이 있다.수 미주라는 이탈리아 말로 ‘당신의 사이즈’에 맞춘다’는 뜻. 제냐는 최상의 착용감을 위해 고객의 체형에 맞도록 기성복을 보완해 만드는 반 맞춤복 시스템이다. 제냐의 매장에서 치수를 재고, 옷감과 모델을 고르면 유럽에 있는 수 미주라 전용 공장에 보내져 내 몸에 딱 맞는 최고의 양복이 만들어진다. 한 번 주문했던 고객의 데이터는 공장에 보관되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세계 어느 제냐 매장에서나 패브릭과 모델만 고르면 된다. 주문부터 솜씨 있게 완성될 때까지는 5주 정도가 소요된다. 첨단 기계와 장인의 손이 합쳐져 재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140여 개의 원단 조각을 사용하며 200여 번에 이르는 재봉 및 가공 과정, 25번의 다림질, 10번의 품질 검사 등을 거쳐 마침내 몸에 딱 맞는 옷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옷 안쪽에는 ‘탈리오 엑스클루시보(Taglio Exclusivo)’라는 라벨과 함께 고객의 이름이 새겨진다. 진공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다림질된 옷은 24시간 동안 공장에서 습기와 온도에 대한 적응력을 검사한 후 세계 각국의 고객들에게 보내진다.김지연 기자 jykim@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