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을 드로잉한다

상상해 보자. 르네상스시대 돌가루와 먼지가 가득한 미켈란젤로의 작업장.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의뢰받은 그는 천지창조를 그리려고 마음먹고 세부적인 인물들을 스케치하고 있다. 손의 제스처, 인물들의 표정, 천지를 창조하고 아담에게 숨을 불어넣는 하나님의 손가락, 아담과 하와의 추방, 노아와 그 아들들…. 그 수많은 인물들을 창조해내기 위해 수천 장의 드로잉을 한 그는 필요 없는 드로잉들을 추운 겨울 난로 속에 땔감으로 집어넣으며 다시 새로운 스케치를 시작하고 있다. “안돼”라고 외쳐보았자 이미 늦은 일, 그는 500년 전의 인물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지금 그가 남긴 몇 점의 드로잉들만을 볼 수 있다. 과거 미술의 시대적 시류는 미술작품의 영역에 드로잉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드로잉은 작품을 하기 위한 밑그림의 연습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작품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미술이라 인정받지 못했던 부분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드로잉이다.드로잉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채색을 쓰지 않고 주로 선으로 그리는 회화 표현’으로 요약된다. 최근 드로잉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소마미술관’이 드로잉센터 개관전을 열어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제5회 ‘바젤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는 웰렘 드 쿠닝의 드로잉이 200만 달러(약 19억 원)에 팔리기도 했다. 또한 파리에서는 2006년 11월 22일부터 2007년 3월 18일까지 로댕의 드로잉 전시회가 열리는 등 세계적으로 드로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대가의 드로잉 작품은 소장가치가 완성된 회화 작품 못지않다. 작가의 일차적 생각을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자료로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미술작품은 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발전해 왔다. 그림이 곧 믿음의 전파를 위한 수단이었던 시절, 작가들은 교회를 위한 작품을 제작했다. 내용은 당연히 성경의 이야기나 혹은 성직자들의 순교, 순례여행에 관한 것들이었다. 미술가들은 교황이나 왕실 귀족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었고 그들의 지원 없이 독립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교회와 왕족, 귀족들이 그들의 후원자가 됐지만 대신 작가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작가들은 작품 제작 의뢰를 따내기 위해 애썼으며 때로는 후원자로 인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의 시대적 흐름이 변화하면서 미술은 새로운 영역에 눈을 뜨고 작가들은 스스로의 생각대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에 이른다. 현재를 살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눈길을 돌려 새로운 화풍들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영역들이 합쳐지고 발전되면서 미술은 점차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고 발전했다. 오늘날 미술의 영역은 그야말로 방대한 역사의 영역을 통과하며 다듬어지고 더해진 것이다.실제로 화가들이 남긴 드로잉 덕택에 우리는 그 작품이 어떻게 기획되고 당시 작가가 어떠한 고민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그림을 컬렉팅할 때 회화나 조각 등 전통적으로 인정받아온 장르에만 시선을 두지 말기를 권한다. 고만고만한 작가들의 회화작품들보다 가능성 있는 작가의 드로잉이 나중에 투자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유명 작가의 회화 작품에만 투자 가치를 두지 말라는 것이다.특히 미술품을 처음 사는 사람에게 드로잉은 좋은 투자 대상이 된다. 원로 작가의 그림을 가질 수 있는 기회도 되며 회화보다 시가가 낮으면서도 그 작품성과 투자 가치 면에서 충분히 가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시류는 늘 변해가고 그 시류를 타고 모든 문명이 발전해 간다. 우리는 항상 역사가 돌고 돈다고 말하지만 사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다른 창조물들의 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술작품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사회의 시류를 타고 존재되고 발전되는 것이다.작품의 컬렉터가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동시대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읽을 줄 아는 것, 그것이 투자이고 올바른 컬렉터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