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피에몬테 알바는 매년 9월 마지막 주 일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전 세계 와인 마니아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2006년 9월 24일에도 마찬가지였다. 피에몬테 알바에 있는 지아니 갈리아도의 와인셀러(와인을 저장하는 창고)에 최고급 승용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는 인사들은 너나없이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을 대표하는 명망가들이다. 얼굴에는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다. 3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서 와인셀러는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지금부터 2006년 바롤로 와인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싱가포르와 홍콩에서도 참여했습니다. 홍콩 싱가포르 고객님들 잘 들립니까.” 누드와인인 ‘빌라M’으로 유명한 지아니 갈리아도의 인사말로 2006년 이탈리아 바롤로 와인 경매의 막이 올랐다.바롤로 와인 경매가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게 된 데는 갈리아도 와이너리의 최고경영자(CEO)인 지아니 갈리아도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탈리아 와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고심했던 그는 1997년 피에몬테 주정부에 와인 경매를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 키안티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단점을 만회하기 위해 기획된 바롤로 와인 경매는 해를 거듭할수록 권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06년에는 싱가포르 홍콩에서도 화상 중계를 통해 경매를 진행했다.바롤로 와인 경매에 출품되는 품목은 45~50여 개 수준. 20여 개 생산자들이 2개씩 와인을 출품하며 일반인들이 출품하는 경우는 1~2건에 불과하다. 바롤로 와인 경매는 비싼 와인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와인 경매의 목적이 수익 창출보다는 저변 확대에 있기 때문이다. 올해 경매에 출품된 와인 총액은 5만 유로(6000만 원)이며 병당 평균 100유로(12만 원)였다. 바롤로 와인 경매는 일반 와인 경매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낱개 판매보다는 2~3병을 한데 묶어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이 주를 이루며 오크통이나 포도밭 하나가 통째로 경매에 부쳐지기도 한다.패키지가 일반적인 주식 투자라면 오크통, 포도밭은 선물투자에 가깝다. 병입 후 어떤 맛을 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28리터 오크통 1개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300병가량 된다. 올해 바롤로 와인 경매에도 오크통 한 개가 통째로 경매에 나와 높은 경쟁률을 뚫고 1만 유로(1199만 원)에 최종 낙찰됐다. 오크통 투자에 대해 지아니갈리아도사의 스테파노 갈리아도는 “일반적으로 오크통 와인은 5년 뒤에 5배 이상 값이 뛴다”면서 “숙성된 와인을 병에 담는 과정과 판매까지 모두 대행해 주기 때문에 오크통 투자야말로 저위험 고수익 투자상품”이라고 말했다. 포도밭 투자 역시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경매가 열리기 전까지 바롤로 지방의 와인들을 시음하는 시간이 있는데, 긴장감이 흐릅니다. 유찰되는 품목이 전혀 없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죠. 이들의 머릿속엔 어떤 와인을 살까라는 생각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해는 홍콩 싱가포르 쪽도 신경을 써야 해 경쟁이 더욱 치열했습니다.”바롤로 와인 경매를 주도하고 있는 갈리아도는 행사 규모를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며 수입 규정 등이 문제되지 않는다면 일본 한국 중국 등의 참여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이번 경매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와인은 단연 갈리아도 와인이다. “우리 집안의 와인은 바롤로 최고의 와인이라고 자부합니다.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빌라M이 바로 우리 집안에서 만들고 있는 대표적 와인입니다.”갈리아도 와인이 생산되는 곳은 바롤로에서도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몬티첼로 달바다. 이곳은 모스카텔과 파보리타 품종이 유명하다. 프랑스산 오크통에다 모스카텔 품종의 포도를 숙성해 만든 빌라M 모스카텔이 생산되면서 갈리아도는 피에몬테의 대표 와인으로 성장하게 됐다. 빌라M은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에서 무려 8만4000병이 판매돼 와인나라가 선정한 히트 와인 부문에서 종합 판매 성적 1위를 차지했다. 갈리아도 집안은 피에몬테 내 라모라, 바롤로, 몽포르테, 세라룽가, 몬티첼로 달바 등에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으며 연간 30만 병을 생산해 이중 70%를 전 세계 25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번에 국내 처음 소개되는 바티에와 프레베 바롤로는 갈리아도 집안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품이다.‘우리만의 고유한 맛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것은 그가 부친인 지아니 갈리아도로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이다. “아버지는 항상 세상 사람들의 입맛에 와인을 맞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대중화를 추구한다면 돈은 많이 벌겠지만 와인 고유의 특성이 사라지게 된다고 늘 강조하셨죠.이탈리아 와인만의 맛을 잘 보존하면서 우수한 품종을 육성하는 것이 세계화의 첫걸음이라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와인 경매를 매년 성대하게 여는 것도 이탈리아 와인의 세계화에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하루 빨리 한국에서도 바롤로 와인 경매가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