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업분야나 마찬가지로 자동차에서도 브랜드 네이밍은 사업의 성패와 직결돼 있다. 사람들의 귓가에 쏙 들어오는 이름을 지으면 날개 돋친 듯 팔리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폐기처분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마다 브랜드 네이밍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 회사마다 브랜드 뜻을 살펴보면 회사의 역사와 마케팅 전략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 면에서 브랜드는 자동차의 이미지와 직결돼 있다.최근 세계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고급화다. 고유가의 파고 속에서 기름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듣고 있지만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들마다 고급 SUV를 출시하며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가 베라크루즈를 럭셔리 SUV로 개발한데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개발 후에는 작명이 고민거리였다. 럭셔리 SUV라는 점에서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주는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수많은 이름들을 검토한 끝에 현대차는 베라크루즈로 결정했다. 멕시코 중동부에 있는 카리브해 최대 항구도시이자 휴양도시, 고대 마야문명의 숨결이 깃든 베라크루즈는 영화 드라마 CF촬영지로 유명하다. 여기에는 현대차 미국 현지법인인 HMA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베라크루즈에는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북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메이커 볼보의 창업자인 경제학자 아서 가브리엘슨과 구스타프 라슨은 스웨덴 예테보리에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회사 이름을 라틴어로 ‘나는 구른다’라는 의미를 가진 볼보로 지었다. 그러면서 엠블럼은 이름처럼 볼베어링을 형상화했다.독일 자동차 기술의 결정판인 아우디 역시 라틴어에서 착안된 케이스다. 1988년 어거스트 호르히는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호르히사를 떠나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다. ‘새 술은 새 부대’라는 심정으로 회사를 설립한 그는 새 회사 이름을 ‘들어봐’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아우디(Audi)’로 짓는다. 이후 아우디는 독일 삭소니 지방의 4개 자동차 제조회사인 아우디, 반더러, 호르히, 데카베가 1932년 아우디 유니언 AG 켐니츠라는 회사로 합병하면서 새로운 기틀을 마련했다. 현재 아우디의 엠블럼인 4개의 링은 이들 4개 회사가 하나로 뭉친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전통적인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이 라틴어에서 이름을 따왔다면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설립자의 이름이 브랜드로 명명된 케이스가 많다. 이는 실용성과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미국 자동차의 분위기와 맥을 같이한다. 포드자동차 설립자인 헨리 포드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경영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붙여 자동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다임러 벤츠와 합병한 크라이슬러 역시 설립자 월터 P 크라이슬러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크라이슬러를 설립하기 전 제너럴모터스에서 뷰익의 사장과 관리담당 임원을 거쳤으며 이후에는 제너럴모터스의 부사장을 역임했다. 크라이슬러는 사업수완이 뛰어난 최고경영자(CEO)로 명성이 자자했다.5000만 달러의 빚을 지고 폐업 위기에 몰렸던 윌리스 오버랜드사의 재건을 직접 진두지휘해 2년 만에 부채를 1800만 달러까지 줄여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한 일화는 미국 자동차사에 너무도 유명하다. 크라이슬러 산하의 닷지(Dodge)도 1913년 회사를 설립한 닷지 형제의 이름에서 브랜드 이름을 따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닷지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유행을 선도하는 자동차로 유명했었다. 1914년에 등장한 닷지 1호는 전기 헤드라이트를 달고 승차감이 좋은 스프링을 장착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메르세데스벤츠는 1900년 12월 다임러가 설립한 ‘다임러 모토른 게젤샤프트’가 모태가 됐다. 그러던 것이 1926년 벤츠와 합병하면서 오늘날까지 메르세데스벤츠로 불리고 있다. BMW와 사브는 항공기 엔진 회사 이름의 앞 글자를 조합해 오늘날의 이름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16년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항공기 엔진 회사를 운영하던 칼 라프, 막스 프리츠, 구스타프 오토는 세계 최고의 항공기 제조회사를 만들기 위해 ‘도원결의’를 맺었다. 이들이 함께 만든 바바리아 모터주식회사(Bayerische Flugzeug Werke AG)가 1917년 바이에리셰 모토렌 베르케(Bayerische Motoren Werke)를 인수하면서 약자인 BMW로 불리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BMW 엔진은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공군기의 주력 엔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BMW의 엠블럼은 항공 프로펠러를 형상화하고 있다.스웨덴의 명차 사브는 스웨덴 항공기회사(Svenska Aeroplan Aktie Bolaget)의 약자로 1990년 제너럴모터스의 지분 참여로 자동차 부문과 항공기 부문이 나눠진 이후에도 여전히 이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사브의 엠블럼은 신화 속 동물인 그리핀을 의미한다. 그리핀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동물로 상반신은 독수리, 하반신은 사자로 모든 새와 짐승의 왕이다.헌정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브랜드로는 미국의 럭셔리 자동차 링컨과 캐딜락이 있다. 링컨 브랜드를 만든 사람은 윌리엄 듀란트와 함께 제너럴모터스를 설립한 헨리 리랜드다. 1차 세계대전 후 리랜드는 듀란트와의 의견 충돌로 제너럴모터스를 떠나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새 회사의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까 고민하다가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인 에이브러햄 링컨을 자동차 이름으로 결정했다. 1917년 설립된 링컨은 불과 5년 뒤인 1922년 포드자동차에 매각됐지만 여전히 포드의 럭셔리카 부문의 한 축을 담당하며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리랜드의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북전쟁 후 디트로이트로 온 리랜드는 주물, 제철, 자동차 엔진, 섀시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세웠다. 하지만 당시 디트로이트에 있었던 디트로이트 오토모빌 컴퍼니의 후원자들이 회사를 정리하려고 하자 그는 이들을 설득해 함께 회사를 설립하게 됐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캐딜락이다. 리랜드는 캐딜락이란 이름을 디트로이트시를 세운 프랑스계 탐험가이자 육군 장교인 앙트앙 드라 모드 카디약에서 따왔다. 카디약은 훗날 루이지애나 주지사로도 활동했다. 그래서인지 캐딜락의 엠블럼은 십자군이 사용한 방패를 본떠 디자인해 카디약 장군의 위대함을 높이 기리고 있다.일본 자동차 산업의 총아인 도요타자동차의 렉서스는 고급스러움을 뜻하는 럭셔리(Luxury)와 기준을 뜻하는 라틴어 렉스(Lex)의 합성어로 안전하고 고급스러운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도요타자동차의 기술 철학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각 브랜드의 모델명은 어떻게 결정될까. 대부분은 영어 단어의 맨 앞 글자를 따 이름을 짓고 있는데 가령, 볼보자동차의 S시리즈는 세단(Sedan)을 상징하며 크로스컨트리 모델에 붙는 XC는 크로스를 형상화한 X와 컨트리(country)의 C에서 따와 이름을 붙였다. C시리즈는 컨버터블(Convertible)과 쿠페(Coupe)의 이니셜을 갖고 표현했다.뒤에 붙는 숫자는 보통 배기량과 관련이 있어 BMW의 320i를 예를 들면 맨 앞의 3은 크기에 따라 3, 5, 7시리즈 하나를 쓰며 20은 배기량이 2000cc급임을 의미한다. i는 가솔린 엔진이 장착된 것을 의미하며 만약 Li라고 명명됐다면 앞뒤 간격이 긴 롱(Long) 보디 차체에 가솔린엔진이 장착됐다는 것을 뜻한다.벤츠는 소형(Compact) 중형(Executive) 대형(Super salon)이냐에 따라 모델명을 C, E, S로 구분한다. 물론 뒤에 붙는 숫자는 BMW와 같이 배기량을 의미한다. M모델은 SUV에 주로 사용되며 역동성(Mobile)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2인승 로드스터인 SLK는 독일어 ‘Sportich Leicht Kurz’의 앞글자만을 따서 조합했으며 이는 영어로 민첩성(Sporty), 경쾌함(Light), 작은(Short) 자동차라는 뜻을 갖고 있다.프랑스 자동차 푸조는 크기에 따라 맨 앞에 숫자를 쓰는 것은 다른 유럽 차들과 비슷하지만 해당 자동차가 몇 번째 버전이냐를 넣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206이라고 하면 2는 해당 모델이 소형 자동차라는 것을 뜻하며 맨 뒤 6은 6세대 버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푸조는 모든 자동차 모델에 0을 넣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독특하다. 숫자 뒤에 붙는 영어는 CC, SW, RC, HDi 등이 있는데 이중 CC는 쿠페 카브리올레(Coupe Cabriolet)의 준말이며 SW는 미니밴과 SUV를 결합한 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자동차라는 뜻이다. RC는 세계랠리챔피온십(world Rally Championship)에 출전한 경주용 자동차를 바탕으로 제작된 차에만 붙는다. 디젤엔진을 장착한 모델은 고압 직분사(High Pressure Direct Injection) 엔진의 약자인 HDi라는 모델명을 사용한다. 현대차 베라크루즈처럼 지역 이름을 쓰는 경우는 다임러 크라이슬러에 많다. 크로스오버 자동차인 퍼시피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도시로 샌프란시스코 해안도로가 시작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프로드 자동차의 대명사 지프 체로키는 북미 인디언 종족의 이름에서 따왔고 닷지의 픽업 트럭 다코타는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다코타주에서 착안됐다.현대차의 투스카니는 고대 로마문명의 기원지였던 이탈리아의 지역명에서 유래했다. 또 싼타페는 레저문화가 발달한 미국 뉴멕시코주의 주도에서, 투싼은 미국 남서부에 있는 애리조나주의 시 이름에서 각각 따왔다. 쏘렌토는 ‘돌아오라 쏘렌토로’라는 칸소네로 유명한 이탈리아 나폴리항 근처의 항구 휴양지 이름이자 미국 샌디에이고 근처의 하이테크 단지 이름이다.독일어로 국민차를 뜻하는 폭스바겐은 브랜드 이름이 평범하지만 모델 이름은 기존 유럽 자동차와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폭스바겐의 모델들은 주로 바람과 연관된 것이 많다. 폭스바겐 판매량의 45%를 차지하는 골프(Golf)는 멕시코만에서 부는 강한 북남풍을 뜻하며 골프의 변형인 제타(Jetta)는 시속 250mph의 제트기류를 의미한다. 제타의 예전 이름인 보라(Bora) 역시 발칸반도 앞 아드리아해의 강한 하강풍에서 유래됐고 중형 세단인 파사트(Passat)는 지구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무역풍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후문이다. 시로코(Sciricco)는 북아프리카의 더운 사막에서 이탈리아 반도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벤토(Vento)는 라틴어로 ‘몰아치는 바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국내 자동차들은 대개 라틴어로 이름을 만든 경우가 많아 현대차의 에쿠스(개선장군의 말)와 GM대우의 라세티(젊음과 힘이 넘친다), 기아차의 카니발(사육제)과 오피러스(황금의 땅)는 어원이 모두 라틴어다. 또 라비타(풍요로운 삶)와 베르나(봄, 청춘, 열정) 및 리베로(자유로운, 능동적인 행위자), GM대우의 레조(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부는 그늘진 쉼터)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