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부동산 시장 르포
로스앤젤레스(LA) 한인들의 사무실이 몰려 있는 윌셔를 지나다 보면 ‘세놓음(Rent)’, ‘기다려 주세요(Coming soon)’ 등의 팻말이 서 있는 빈 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세상이 변해도 윌셔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개발이 더딘 윌셔의 최근 모습은 매우 이례적이다.최근 LA에 사는 한인들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한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로 LA시장에 당선된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가 부시장에 한국계 2세인 서민호(미국명 모리스 서) 씨를 임명하는 등 한인들이 LA시 요직에 중용되고 있다. 미 주류사회로 빠르게 편입되면서 코리아타운의 변화도 점차 가속화하고 있다. LA코리아타운은 남쪽 올림픽 블루버드에 자리 잡고 있는 한인 밀집지역으로 차이나타운(중국인 밀집지역), 리틀도쿄(일본인 밀집지역)를 합친 것보다 5배나 큰 LA의 명소다.코리아타운을 지나다 보면 모질고 고단했던 이민 1, 2세대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곳곳에 담겨 있다. 그러나 요즘은 LA시 당국의 코리아타운 재개발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경제력이 성장한 한인들은 행콕파크나 베벌리힐스 등 부촌으로 터전을 옮겼고 그 빈자리는 히스패닉계가 차지했다. 코리아타운은 히스패닉계에겐 한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다. 경기 침체가 심해지면서 미 전역의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되고 있지만 코리아타운 만큼은 한국으로부터의 부동산 투자 증가와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인해 히스패닉들의 고용 환경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오히려 최근의 상황만 놓고 보면 한인 윌셔가는 LA의 중심부인 다운타운을 능가할 수준이다. 한인 상권의 급성장이 윌셔 부동산 값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지난해까지 콘도 아파트 등 주택 값이 최고의 호황을 기록했다면 올 들어서는 사무실 호텔 등 상업용 부동산으로 옮겨가고 있는 양상이다. 그 중에서도 호텔 등 숙박업은 특수일 정도로 호황을 기록 중이다.LA를 비롯한 미국 내 상당수 대도시는 최근 각종 국제회의 등이 열리면서 서둘러 예약하지 않으면 방을 잡기가 불가능하다. 이러다 보니 객실 이용료도 큰 폭으로 인상되고 있어 숙박 관련 전문 매체인 ‘스미스 트래블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9월 현재 뉴욕 맨해튼의 경우 평균 객실 이용료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2% 인상된 304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스턴이 6% 오른 208달러, 시카고는 14% 인상된 203달러, 워싱턴은 1% 오른 198달러였으며 LA는 4%나 뛴 평균 140달러를 기록했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지난해까지 LA 부동산 시장은 마치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집값이 한두 달 사이 1~2%씩 뛰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 코리아타운과 가장 인접한 고급 주택 단지인 행콕파크만 해도 전년도에는 평균 64만 달러였던 것이 올해 초에는 76만 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베벌리힐스도 한국인들의 투자가 늘면서 집값이 전년도 대비 평균 8% 이상씩 뛰었다는 분석이다.이러한 투자 열기는 LA시 외곽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여 랜초쿠카몽가의 경우 2002년 11월 210번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미 상류층과 한인들의 인기 주거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2년 전만해도 방 3개, 화장실이 2개 딸린 167평짜리 주택이 30만~35만 달러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50만~55만 달러로 치솟았다. 한인들이 선호하는 지역 중 하나인 빅토빌은 대규모 물류센터들이 속속 건립되면서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건평 70평짜리 주택이 40만 달러, 83평짜리 주택은 45만 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뉴스타부동산 제인 양 에이전트는 “가장 미국 같은 분위기가 나는 곳이 한인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라면서 “그러기 위해선 백인들의 비율이 높고 범죄율은 낮으며 학군도 잘 형성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부동산 값이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는 9월 중 단독주택 중간가격이 21만9800달러(2억480만 원)로 1년 전보다 2.5%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NAR가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수치다.NAR 조사 결과와 현지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LA 현지 중개업자들도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10% 이상씩 가격이 떨어졌다며 앞으로 2~3% 정도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재반등을 주장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개발 가능성이 높은 곳은 여전히 가격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미 가격이 조정 받았기 때문에 지금이 매수 타이밍이라는 것이다.한편 현지 교포들은 한국에서의 섣부른 투자가 LA 한인타운의 집값만 끌어올린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단기 차익을 겨냥한 투기 자금이 LA 전역의 집값을 끌어올려 히스패닉계와 한인들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났다는 게 현지 교포들의 설명이다. 윌셔가 8550번지 패러마운트 플라자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이미경 씨는 “최근의 집값 급등은 투기꾼들이 조장한 측면이 강하다”면서 “가격이 조정돼 매수자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된 것은 오히려 반길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또 “단기 투자자들에겐 지금의 상황이 매우 불안정하게 느껴지겠지만 5년 이상 중장기 투자를 생각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집값이 조정된 지금이 투자 적기”라면서 “최근 한인 투자자들이 내놓은 매물을 이재에 밝은 유대인들이 사들이고 있는 것만 봐도 LA 부동산 투자는 장기적으로 매우 밝다”고 전했다.“한국인들이 유대인들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파는’ 투자 원칙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어깨에 판 물건을 막차 탄 한국인들이 사서 피해를 보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정말 답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대인들은 지금의 상황을 무릎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코리아타운 내 식당에서 만난 김경순 씨는 LA 부동산 시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코리아타운은 외부에서 투자되는 금액이 여전히 많아 상업용 부동산 값은 아직도 가격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앞으로 몇 년 후면 코리아타운이 LA의 중심권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는 전망마저 내놓는다. “LA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아직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베벌리힐스에서 다운타운까지 예전에는 차로 20분 정도 소요됐다면 요즘은 40분 이상 걸립니다. 차가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인구가 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번 중간선거 결과로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도 미국 부동산 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외치보다는 내치에 중점을 두는 민주당이 집권하면 부동산 시장이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이 같은 기대감을 낳고 있습니다.”(부동산 에이전트 다이앤 주)©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