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과 열정 챔버 오케스트라 지휘자 이정선

술가에게 영감과 열정은 비타민 같은 것입니다. 악보에 생명의 힘을 불어넣는 기폭제가 되는 영감과 열정을 오케스트라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도 그 때문이죠.”‘영감과 열정 챔버 오케스트라(IPCO:Inspired Passion Chamber Orchestra)’의 지휘자이자 대표인 이정선 씨는 음악과 결혼한 정열의 예술가다. 그녀는 목소리만 듣고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중성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 작은 체구에 남자 같은 짧은 머리, 금테 안경에 화이트 재킷과 정장 바지, 그리고 남성용 정장 구두까지….“저 스스로도 여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보통 여자들처럼 일부러 꾸미려 하지도 않으니까요. 음악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섬세하고 감성적이죠. 남자들도 음악을 하다 보면 여성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지휘자는 다릅니다. 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는 역할이 여성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여성 지휘자가 드물기 때문에 성(Gender) 측면에서 부각이 많이 되는데 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실력으로 주목받고 싶기 때문이죠.”이런 바람대로 그녀는 실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많은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젊고 촉망받는 지휘자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얻고 있다. 2004년부터 이끌고 있는 영감과 열정 챔버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 겸 지휘를 맡고 있는 그녀는 지휘와 플루트 양쪽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면서 경희대 음대를 다녔던 그녀는 졸업 후 미국 남가주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플루트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또 독일의 거장 브루노 발터의 부지휘자였던 존 바넷과 앤드루 로빈슨에게 지휘를 사사했다. 그녀는 ‘NFA Young Artist’ 부문에 입상했고, 로스앤젤레스 ‘핸콕 오디토리엄(Hancock Auditorium)’ ‘알프레드 뉴먼 홀(Alfred Newman Hall)’ 등에서 수차례 독주회를 열었다. 2003년 귀국해 영감과 열정 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 첫 연주에서 모차르트와 스트라빈스키를 아우르는 참신한 레퍼토리로 갈채를 받았다. “20세기 음악을 좋아해요.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느끼지만 현대를 살기 때문에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음악 장르이기 때문이죠. 저는 특히 스트라빈스키 음악과 같은 현대적인 곡들을 즐겨 연주합니다. 새로운 음향을 즐길 수 있는 데다 변 박자가 많습니다. 음이 수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들이 모두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음악을 편식하지 않고 모두 아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규모인 ‘챔버 오케스트라’의 장점은 다양한 연주곡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이지요.”그녀는 처음부터 지휘를 한 것은 아니다. 음악과 정식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원래 역사학자가 되려고 했어요. 역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취미로 해 오던 플루트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바로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다행히 집에서는 반기는 분위기였어요. 말수도 적고 역사에 관심이 많던 제가 대학 가서 운동권 학생이 될까봐 내심 걱정이 많으셨다더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은 제 음악 활동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습니다.”그녀의 부친은 반도체와 LCD 장비업체인 신성이엔지 이완근 회장이다. 이 회장은 여태껏 그녀가 걸어오고 있는 음악 인생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대학 동기들이 뜻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창단할 때 후원 업체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죠. 그때 아버지가 도움을 주셨죠. 국내에서 예술을 하기에는 아직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직접 운영해 보니 절실히 느낄 수 있더군요. 공연을 한번 하더라도 75% 정도가 초대권 관객일 정도니까 악단 운영이 힘들 수밖에 없죠. 우리나라는 예술 문화를 후원하는 세제 혜택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 부분만 해결된다면 ‘뉴욕 필하모닉’ 같은 유명한 오케스트라도 나올 법합니다. 국내 음악가들의 실력은 세계적으로 뛰어납니다.”영감과 열정 챔버 오케스트라는 봄, 가을 두 번 정기 연주회를 갖고, 청소년 연주회, 특별기획 연주회 등을 3차례 정도 연다. 오케스트라를 꾸리느라 경영인이 다 된 그녀는 문화도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저도 클래식을 연주하는 음악인이지만 연주자들도 이제는 음악 하나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산업적인 모델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클래식도 경제적 가치를 산출할 수 있는 ‘문화 산업’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을 주고 티켓을 구입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외국에서 유명 오케스트라가 오면 표가 동나는 데 비해 국내 클래식 공연은 초대권으로도 객석이 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가격 차이도 큰 데 말이죠. 예를 들어, 바그너 오페라의 티켓이 25만 원 하는 데 반해 국내 클래식 공연의 티켓은 고작 1만~2만 원일뿐입니다. 터무니없는 가격차이죠. 하지만 장담하건대 두 공연의 음악의 질에는 많은 차이가 없습니다. 선입견 차이일 뿐이죠.”그녀는 음악에 모든 열정을 다 바치고 있지만 주식 투자를 하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다.“음악과 주식은 세계가 달라도 너무 달라요. 주식 투자를 하려면 제 생각의 모드를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스위치를 돌린다’는 기분으로 합니다. 주식 투자는 음악과 현실 세계를 연결해 주는 다리와도 같죠. 중용을 지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인 셈입니다. 펀드에도 투자하고 있지만 직접 투자도 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꾸준히 해 왔죠. 한국 장이 열리는 아침 9시가 미국에서는 방과 후인 오후 4시였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잘 맞았죠. 처음에는 투자해서 재미를 많이 봤습니다. 대형주와 소형주에 균형 투자하는 편이죠. 저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음악가들이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은 무얼 하든 열심히 파는 성격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웃음)”그녀의 올해 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8월 20일로 예정된 청소년 음악회 ‘클래식 나들이’를 지휘하는 것과 11월에 있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지휘를 맡는 일이다. 앞으로는 플루트 연주보다 지휘에 보다 큰 비중을 실을 생각이다.“지휘를 하면서 음악적 희열을 많이 느껴요. 지휘나 연주를 할 때 늘 내가 100을 즐기면 현장에서 듣는 관객이 40을 즐기며 감상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합니다. 음악 하는 현장과 관객과의 호흡, 그게 제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