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코드’ 설문 분석 ② 행동 방식

ONEY는 ‘부자 코드’를 파악하기 위해 은행 프라이빗 뱅커(PB)를 통해 부자들로부터 설문지를 수거하면서 뜻하지 않은 수확을 거뒀다. 설문지의 대부분은 부자들이 직접 대답해야 하는 내용이었지만 마지막 난에 PB들에게 부자들과 만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 이 에피소드는 부자들의 성향과 관련해 통계 수치가 제시하는 양적 분석보다 훨씬 흥미로운 질적 분석 자료를 제공했다. MONEY는 가감 없이 이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부자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그들만의 독특한 성향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부자들은 냉정하다. 인정이나 감정에 치우쳐 손해 보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사람이 좋은 것과 돈 버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판단해도 좋을 정도다. 알만한 집안의 장녀인 A씨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A씨의 부모는 몇 해 전 손자(A씨의 자녀)들에게 아파트를 증여했다. A씨는 이 아파트를 담보로 3억원을 대출받으려 했다. 전세 계약을 월세로 전환하려면 보증금을 돌려줘야 했는데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금리에 대단히 민감한 A씨는 주거래 은행을 찾았다. 해당 은행 PB는 이전에 부동산 증여세 납부와 관련한 오류를 수정해 줘 A씨의 세금을 1000만원 이상 절감해 줬기 때문에 이 공로를 인정해서라도 당연히 자사의 대출 상품을 이용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A씨는 놀라울 만큼 냉정했다. 경쟁 은행의 금리가 연 0.1% 낮으니 무조건 여기에 맞춰 달라고 요청한 것. 하지만 이 은행은 도저히 이 금리에는 맞춰 줄 수가 없었다. 이 PB는 1000만원이 넘는 돈을 아껴준 공이 있는 데도 냉정하게 금리 0.1%(연 30만원) 때문에 다른 은행으로 간다고 하자 자존심도 상하고 약도 올랐다고 한다. 물론 다행히(?) 이 PB는 경쟁 은행 대출 방법의 문제점을 찾아내 막판에 겨우 대출을 유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부자들의 냉혹함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신문이나 방송에는 부자들의 헤픈 씀씀이가 자주 도마 위에 오른다. 백화점 명품관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사치품을 싹쓸이하거나, 해외에서 명품 구매에 혈안이 된 부자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접하곤 한다. 하지만 부자 고객들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은행 PB들은 물 쓰듯 돈을 쓰는 사람보다는 검약하는 부자들이 훨씬 많다고 전한다. 이와 관련, 소비 생활과 관련한 설문을 분석해 본 결과 검소한 생활을 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44.83%로 절반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수준의 소비를 한다는 대답은 20.69%였다. 소비 중심의 생활을 한다는 25.86%로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잣집에 초대받으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없다’거나, ‘푼돈을 아껴야 부자가 된다’는 옛 격언이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 한 은행 PB는 금융 자산만 20억원이 넘는 B씨와 점심을 할 기회가 있었다. 금융 자산만 20억원이 넘기 때문에 부동산 등 다른 자산을 합한 총자산이 70억원 대는 될 것이란 게 PB의 설명이다. 이 고객은 자신이 개인적인 고민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점심을 먹자고 말했는데 식사 후 계산할 때 너무나 망설이더라는 것이다. 결국 PB는 2만원 정도였던 밥값을 자기 돈으로 계산했다. 이 PB는 자신이 먼저 밥을 먹자고 한 것도 아니고 고객이 요청했음에도 푼돈 사용에 벌벌 떨었던 이 부자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하지만 부자들을 구두쇠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A은행의 김모 PB는 “부자들 중 일부는 1000원짜리 한 장도 잘 쓰지 않고 군색하게 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돈에 대한 확실한 철학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일례로 1000원이나 1만원을 쓰면서 마치 재산이 크게 줄어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담을 느끼는 부자들도 일단 써야겠다고 판단했을 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과감하다는 것이다. 투자할 가치가 있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는 에누리 없이, 푼돈에 연연하지 않고 대범하게 결정한다. 한 은행 PB는 “부자들이 돈을 써야 할 시간과 장소를 잘 결정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설명한다.부자들은 명품을 좋아한다. 또 명품을 많이 구매하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매일 부자들과 접하며 살고 있는 은행 PB들은 명품과 부자와의 관계에 대해 색다른 견해를 들려준다. 일례로 50억원이 넘는 금융 자산을 가진 부자 최모씨는 환경미화원 제복처럼 보이는 주황색 조끼를 입고 다니며 몸에는 어떤 명품도 착용하지 않는 검약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 부자의 집에 가면 확실한 명품이 있다고 한다. 한 PB는 이 고객이 금고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수천만~수억원 대로 보이는 고서화와 골동품을 갖고 있더라는 것. PB들은 명품 소비와 관련해 부자들을 두 부류로 구분한다. 한 부류는 집안 대대로 부자여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명품을 소비해 온 그룹이다. 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자연스럽게 명품을 소비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상당한 안목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명품이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소비 생활의 하나다. 강남지역에 근무하고 있는 한 PB팀장은 “강남권에 명품을 소비하는 부자들이 많다”며 “고급 옷을 입다가 허름한 옷을 입기 어렵듯 이들은 명품을 일상 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들은 명품에 대한 높은 안목을 갖고 있으며 과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향과 필요에 맞는 제품을 구매하는 합리적 소비자라고 PB들은 설명한다.다른 종류의 부자는 자수성가형으로 이들은 명품 소비에 큰 관심이 없다. 물론 한두 가지 명품을 갖고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때만 명품을 착용한다. 이들은 의류나 액세서리보다는 자신의 독특한 취미와 관련한 한두 가지 분야의 명품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한다. 하지만 일부는 대중과 반대로 행동할 줄 아는 용기가 있고 이 가운데 이런 행동을 지속할 수 있는 끈기를 가진 일부만이 부자가 된다. 일반 대중들이 모두 주식을 팔아치울 때 주식을 샀다가 남들이 주식을 다시 살 때까지 끈기 있게 보유하고 있던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당장 눈앞에 이익이 있더라도 끝까지 팔지 않고 버티다가 수백억원 대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실제 한 PB 고객은 외환 위기 직후 일반인들이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던 땅을 사놓았는데 팔라는 유혹을 끈질기게 뿌리친 결과, 땅값이 수십배 올라 큰돈을 벌었다. 한 부자는 1970년대 초 강남 나대지를 매입했는데 80년대 강남이 개발되면서 땅값이 폭등했지만 팔지 않고 보유해 결과적으로 수백억원의 자산을 갖게 됐다. 한 출판사를 운영하는 부자는 소설을 만화로 만들기 위해 작가를 설득하려고 무려 60차례나 찾아가는 끈기를 보이기도 했다.위대한 조직은 컬트(cult)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독특하고 강한 개성의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부자들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금리에 민감한 한 고객이 있었는데 PB가 실세 금리를 0.1% 틀리게 말하자 크게 화를 낸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자신이 매우 중요시하는 경제 지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크게 역정을 냈다는 것. 강남지역의 한 PB는 고객과의 약속 시간에 10분 정도 늦었다. 죄송하다며 여러 차례 사과하려 했지만 이 고객은 무려 10일 넘게 PB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시중은행 이모 PB가 들려준 일화다. 부자 D씨의 금융 자산은 100억원이 넘는다. D씨의 형제와 자녀 모두 100억원 대 자산가다. 하지만 D씨는 생산된 지 15년이 넘은 콩코드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물론 운전사는 별도로 있다. 사는 집은 24평형이고 아파트도 아닌 빌라다. 세간도 별로 없는 초라한 집이라고 한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D씨가 이런 집에서 살기 때문에 다른 형제나 자녀들 모두 30평형대 아파트에 주로 살고 있다. 다만 형제나 자녀들은 자동차의 경우 목숨과 관련이 있다며 D씨를 설득, 모두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D씨는 ‘돈이라는 것은 살아생전에 하늘이 잠시 나에게 맡겨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따라서 그는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이 없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엔젤 투자’를 많이 한다. 부동산에도 투자하지만, 망해가는 기업의 부동산을 사들여 회생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이 부동산을 나중에 되파는 형태로 돈을 번다고 한다. D씨는 손자들 교육도 유별나게 시킨다. 곱게 자란 아이들에게는 힘겨운 영업사원 같은 험한 일을 손자들에게 시켜 세상을 배우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