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쓰느라 조용한 시골에 내려간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럴 때마다 내 기억에 남은 시골생활은 과히 유쾌하지 않았다. 시골 특유의 텃세와, 궁금증이 지나쳐 고까운 눈초리로 일거일동을 주시하는 시골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쑤군대는 소리도 불쾌하고, 그러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갑자기 말이 뚝 끊어지는 정적도 신경에 거슬렸다. 수상한 사람이라고 신고해서 조사를 받은 경우도 몇 차례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시골은 도시에 비해 폐쇄적이고 텃세가 심하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생김새를 한 나도 시골에 가면 따돌림을 당하는 판인데 외국인이 만일 우리나라 시골에 갔다면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생활뿐 아니라 생각이나 사고방식도 자신과 같아야 안심을 하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 다른 주장을 펼치면 용납하지 못한다. 심지어 배울 만큼 배우고 학식깨나 있는 유명인사들이 나온 토론회에서조차 자신과 다른 관점에서 얘기를 하면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 토론문화가 저급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도 폐쇄적이고 단일화한 국민성에 있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관점이면 더욱 경청하고 존중하는 선진 토론문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요즘은 이런 기질이 익명을 담보로 한 사이버 세상의 인터넷 댓글로 옮아가서 이슈가 생길 때마다 무차별 융단폭격을 퍼붓기도 한다. 그 바람에 개인이나 조직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한다. 부정확한 정보 때문에 수십 년 쌓아온 공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하고, 심할 경우 폐인이 되거나 자살을 하는 안타까운 불상사까지 일어난다.이런 폐단을 고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지구촌의 변방이고 시골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겨온 순수 혈통주의는 스스로 고립만을 추구할 뿐, 국가와 민족의 앞날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여태껏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외국인이나 혼혈인은 백안시, 터부시하면서도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스타와 유명인에 대해선 사돈의 팔촌까지 한국계(韓國系)를 따지며 호감을 표시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해 왔던 게 사실이다. 아울러 혼혈(混血)이라는 표현도 차제에 수정돼야 마땅하다. 혼혈은 헌혈과 수혈을 할 때나 쓰는 의학용어로 더 적합하다.단일민족이란 자긍심과 긍지는 그동안 유난히 탐욕적인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국토와 민족을 지켜내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된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서 돌아보면 철지난 의복이다. 하물며 단군 이래 5000년 간 단일민족이란 주장도 따지고 보면 허구다. 지금 우리 민족이 형성된 시기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무렵이다. 그때 부여족, 예맥족, 흉노족, 말갈족 등이 삼한 토착민과 어울려 지금 우리 민족을 만들었다. 이제 단일민족이라는 폐쇄적인 편견의 옷을 벗을 때가 왔다. 정부에서도 한국계 프로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 선수의 방한을 계기로 혼혈인과 결혼이민자 등 국내 소수인종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키로 했다고 한다. 2020년엔 신생아 3명 가운데 1명이 코시안(코리아+아시안)이라는 기사도 났다. 고립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사고와 생각을 진취적으로 활짝 열어야 한다. 사람이 중요하지 피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는 소통이다. 우리가 닫아걸면서 남에게 빗장을 열라고 강요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도 다른 문물이 들어왔을 때 국력이 향상되고 민족이 번성해졌던 이치를 곰곰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