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신도시 임대아파트 분양 첫날이었던 지난 3월29일, 청약 창구가 마련된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은 희귀 청약통장의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오전 11시 분당에 사는 주부 이모씨(66)는 매달 10만원씩 총 243회, 기간으로 따지면 20년3개월 간 부은 청약저축통장을 들고 나왔다. 꼬깃꼬깃 세월의 때를 고스란히 간직한 노(老)청약저축통장이다. 뿐만 아니라 성남에 사는 최창식씨(49)는 15년 넘게 184회나 부은 통장을 가지고 나와 24평형을 신청했다. 최씨는 “판교만한 곳이 따로 없을 것 같다”며 “이 통장이 ‘조커’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교신도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대변하는 장면이다.수도권 아파트 분양의 노른자위였던 판교신도시 1차청약이 끝났다. 판교신도시 분양은 투기와 투자의 경계가 모호한 현 주택 시장의 단적인 모습을 잘 보여줬다. 수십만 명의 청약자들이 몰려 역대 아파트 청약 기록을 모두 갈아 치웠다. ‘판교 광풍’으로 요약되는 높은 청약 경쟁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첨만 된다면 확실한 ‘잭팟’을 터트리는 셈이었지만 그러기에는 경쟁률이 너무도 높았다. 애초부터 투자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가까웠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다. 일산신도시에 사는 김모씨는 “모두들 청약하는데 나만 빠질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모델하우스나 은행 창구에 갈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되는데 안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당첨만 되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억원의 프리미엄을 거둘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청약을 주저하겠느냐는 반응이다.어쨌든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판교신도시 분양은 끝났다. 당첨의 꿈만 키워 왔던 청약자들에게는 ‘탈락’이라는 소식과 함께 허탈감이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시작한 주(住)테크 여정을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아직도 유효하며 판교를 능가하는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아파트는 주위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투자에 대한 기대감은 아직도 높다. 증시 대망론이 건재하지만 올 들어 횡보세를 보이면서 무게중심을 증시로 옮기기에는 아직 불안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차원일 뿐 ‘부동산>증시’라는 투자 구도를 ‘부동산<증시’로 바꾸지는 않고 있다는 게 은행 PB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시장은 어떤가. 수년간 계속된 저금리 기조는 부동산 시장의 군불을 지펴주는 불쏘시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직도 막대한 부동자금이 부동산 시장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으며 이번 판교신도시 분양 시장에서 그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러나 투자환경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정부가 잇따라 규제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8·31대책’을 발표한데 이어 최근 ‘3·30대책’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꽁꽁 걸어 잠그고 나섰다.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을 사실상 묶은 데다 주택 담보대출 규모를 축소했다. 부동산 시장에 투기성 자금이 몰리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에서다. ‘정부와 싸우지 말라’는 투자 격언을 떠올릴 만큼 주택 시장은 서서히 얼어붙고 있는 분위기다. 우선 호가 위주로 거래되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이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다. 상가, 땅, 오피스텔 등 여타 부동산 시장도 8·31대책의 효과가 발휘되는 하반기부터는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그렇다면 이대로 부동산 시장은 주저앉을 것인가. 물론 이 부분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 정부의 주택 시장 규제가 단기 투기 수익 차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접근한다면 은행 금리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은 주변에 많다. 이러한 전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시장의 기대감 때문이다. MONEY가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인 부동산114(www.r114.co.kr)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3·30부동산 대책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응답(53.9%)했고 ‘조금 안정된다’는 30.7%, ‘많이 안정된다’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은 각각 7.8%와 7.6%를 기록했다. 3·30대책 이후에도 서울 강남권 부동산에 투자하겠느냐는 질문에는 ‘하겠다(45.0%)’는 응답이 ‘안하겠다(35.6%)’보다 약간 높게 나타나 강남에 대한 일반인들의 투자 수요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한편 하나은행과 대한투자증권이 프라이빗뱅커(PB) 1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1.8%가 3·30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에 대해 ‘당분간 보합 후 상승’이라고 응답했고 12.7%는 ‘지속 상승’이라고 답해 네티즌과 비슷하게 전망했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볼 때 아직 부동산에서 발을 빼기가 시기상조인 것만은 분명하다. 입주 후 5년 이후를 생각해 투자하면 최소한 연 10% 매매가 상승률을 기록하는 물량이 수두룩하다. 강서구 화곡동 우장산 롯데캐슬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2000년 10월 분양한 이 아파트는 분양 당시만 해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과잉 공급 등의 여파로 상당수 가구가 미분양됐었으나 지금은 지역 내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아파트로 변신했다. 1억8500만원에 분양한 33평형이 5년8개월 지난 지금 5억5000만원으로 178%나 값이 뛰었다. 연간 상승률로 환산하면 30%에 육박한다.서울만 이런 것은 아니다. 남양주시 덕소 두산위브의 경우 한강 조망권이 형성됨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 때문에 1999년 12월 분양 당시 미분양에 허덕였다. 입주한 지 6년이 흐른 지금 덕소 두산위브는 남양주시 호평 평내지구 분양과 제2영동고속도로 개발 등의 호재를 힘입어 가격이 급상승했다. 1억5565만원에 분양해도 좀처럼 미분양을 해소하지 못했던 34평형은 현재 5억1500만원으로 230%나 값이 뛰었다. 연간 상승률만 놓고 보면 무려 38.5%에 이른다. 이러한 대박 수익은 IMF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이 두 단지의 공통점은 미래의 가치가 값을 끌어 올렸다는 것이다. 화곡동 우장산 롯데캐슬은 9호선과 발산 마곡지구 개발이, 덕소 두산위브는 제2영동고속도로 개통 등이 값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지역이 유망한 곳으로 부상할까.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개발 호재다. 신도시나 택지지구로 개발되면서 광역교통망이 개선되는 곳이 단연 1순위다. 돈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강남권과의 연계성을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은 지역이 낙후돼 있지만 강남과 연결되는 도로망이 신설되거나 확장되면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된다. 또 올 분양 시장의 핵심이었던 판교와 가까운 곳일수록 대체 투자처로 고려해 볼만 하며 직주근접형 지역은 실수요 측면에서 도전해 보는 것이 좋다. MONEY가 부동산 전문가 3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전문가들은 △하남 풍산지구 △용인 성복·신봉지구 △의왕 청계지구 △성남 도촌지구 △송파신도시 △김포 장기지구 △은평 뉴타운 △마포 상암지구 △동탄신도시 △발산 마곡지구 등 10곳을 판교를 능가할 곳으로 선택했다. 이들 지역을 좀더 세분화해 살펴보면 용인 성복지구와 성남 도촌지구는 판교신도시와 인접해 있다는 점을, 송파신도시와 하남 풍산지구, 의왕 청계지구는 강남 대체지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또 김포 장기지구와 동탄신도시는 정부가 개발 중인 제2기 신도시라는 점과 직주근접형 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마포 상암지구와 은평 뉴타운, 마곡 발산지구는 서울시가 주도하는 택지지구로 체계적인 개발과 지리적인 이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대형 주택 건설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주택협회가 ‘올해 수도권에서 청약하고 싶은 지역’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52%가 판교·도촌지구를 선택했고 25%는 서울 뉴타운을, 12%는 김포 장기지구를 꼽았으며 하남 풍산지구(7%)와 파주 운정신도시(4%)가 그 뒤를 이었다. 실제로 이들 지역 중에서는 올 초부터 분양에 들어간 곳이 상당수 있으며 분양 결과는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지난 3월말 분양된 김포 장기지구의 경우 제일건설의 제일 풍경채 34평형이 수도권 1순위 접수에서 27.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이지건설의 이지 더 원 33평형은 1.23 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비슷한 시기에 분양한 하남 풍산지구에서도 분양 열기가 뜨거웠다. 분양가가 높게 책정됐다며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았던 동부 센트레빌이 수도권 1순위 청약에서 110 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고 제일 풍경채 42평형도 1순위 청약에서 5.03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들 단지는 비단 청약접수 결과만 호조를 보인 게 아니라 실제 계약률도 높게 나타나 청약 접수가 마감된 지 보름이 지난 4월 중순 현재 계약률이 90%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모든 분양 시장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과잉 공급 양상을 빚고 있는 지방 분양 시장은 미분양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DTI) 제도를 도입한 지난 4월5일 이후 지방 아파트 분양 시장은 악화일로를 겪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지난해 말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던 지방 아파트 분양 시장의 경우 계약률 높이기에 고심하고 있다. 대구 상인e-편한세상, 효성백년가약 등 인기 단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분양됐다. 범어동 두산위브 더제니스는 49평형이 1순위에서 마감되고 나머지 평형이 2순위에서 마감됐지만 전 평형이 아직 계약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기대감을 높여 왔던 충남 아산시 GS배방자이2차도 일부 평형에 미계약분이 남아 있다. 스피드뱅크 백혜정 분양팀장은 “건설업체들이 수도권 분양을 판교가 분양된 이후로 미루면서 대신 호재가 있는 지방에서 과도하게 분양했다”면서 “프리미엄을 노린 투기 세력들까지 가세하면서 청약 경쟁률은 높게 나타났지만 실제 계약으로는 많이 연결되지 않은 결과”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같은 결과를 놓고 볼 때 5년 이후 집값이 오를 지역은 개발 호재를 갖고 있되 가급적이면 수도권에서 찾는 것이 현재로선 유리하다. 수도권 내에서도 택지지구나 신도시 등 체계적으로 개발되는 곳을 중심으로 청약 대상지를 선택해야 한다. 세중코리아 김학권 대표는 “지방도 택지지구와 비 택지지구 간 양극화가 뚜렷하다”면서 “택지지구에서는 원가연동제가 실시되기 때문에 인근 지역에 비해 분양가도 저렴하다”고 인기 이유를 설명했다. 공단 개발 등 수요를 타개할 만한 특별한 요소가 없는 상태에서 이미 분양된 물량이 많은 곳은 과잉 공급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에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희망 평형은 지역 수요를 감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강남 대체 수요를 기대한다면 중대형 평형 위주로 선택하는 것이 가격 상승률 면에서 볼 때 유리하다. 부동산정보 제공업체인 뉴스타플러스가 조사한 서울지역 아파트 평형별 매매가 변동추이를 보면 지난해 10월말 대비 4월 아파트 매매값 상승률이 소형은 1.78%인데 비해 대형은 6.08%를 기록했다. 두 평형 차이가 무려 3.4배나 난다. 결국 평형을 늘리기 위해 청약증거금을 높이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부동산114 김규정 차장은 “아예 1년 후 유망 물량에 대비해 청약증거금을 높여야 한다”면서 “2~3년 이후 있을 발산지구, 송파신도시 등을 겨냥해 지금이라도 청약통장을 개설해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주변에 기업이나 공단이 들어설 곳은 실수요층이 두터운 중소형 평형대가 유리하다. 택지지구라고 하더라도 지역 내 공급되는 물량 중 임대주택과 20~30평형대 비율이 높은 곳은 가격 상승이 높지 않을 공산이 크다.유니에셋 이만호 대표는 “6억원 이상 아파트는 대출이 규제되기 때문에 분양 대금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아파트를 선택할 때도 5년 후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30명 대상 설문 + 네티즌 조사유망 지역 10곳은 부동산 전문가 30명을 설문조사해 선정했다. 우선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유망 지역 20여 곳을 추천받은 뒤 정보제공업체 관계자들과 건설업체 부동산 담당자들의 복수 선택을 통해 최종 10곳을 가렸다. 이번 조사에서 전문가들이 유망 지역으로 선택한 곳은 △성남 도촌지구 △동탄신도시 △발산 마곡지구 △마포 상암지구 △용인 성복·신봉지구 △송파신도시 △은평 뉴타운 △김포 장기지구 △의왕 청계지구 △하남 풍산지구 등이었다.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곳을 별표(5개 만점)로 구분해 표시했다. 이중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곳은 성남 도촌지구로 대다수가 분당과 바로 인접해 있다는 점을 선택 이유로 들었다. 행정 타운으로 개발되는 수원 이의신도시와 판교신도시 중간에 있는 용인 성복지구와 신봉지구도 많은 전문가들이 선택한 지역이었다. 부동산114 김규정 차장은 “중대형 평형의 매매값 상승률이 중소형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면서 “대형 건설업체가 건설하는 500가구 이상 단지를 선택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송파신도시와 은평 뉴타운을 가장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대표는 “쾌적한 주거환경이 강조되는 이 두 지역이 판교 다음으로 수도권 청약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왕 청계지구도 많은 전문가들이 꼽았지만 임대주택 구성 비율이 높아 강남권 대기 수요의 이목을 끌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