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마니아인 정순도씨(58·가명)는 지난해 5월 일본 여행 중 우연히 보물을 발견했다. 20여년 가까이 친분을 쌓은 일본인과 고급 와인 전문점을 둘러보던 중 부르고뉴(Bourgogne) 와인인 86년산 로마니콩티(Romanee-Conti)가 눈에 띄었다. 로마니콩티는 보르도(Bordeaux)와 함께 프랑스 와인 생산지의 양대 축인 부르고뉴 지방에서도 최고의 맛을 가진 와인으로 그중에서도 86년산은 20세기 최고의 빈티지(생산 연도)로 꼽힌다. 하지만 이 와인은 장식용일뿐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씨는 귀국 일정까지 늦추고 주인에게 애걸복걸하다시피 매달려 결국 62만7000엔(53만원)에 구입했다. 만약 이 와인이 정상적으로 세금이 부과돼 국내에서 판매됐다면 120만원은 넘었을 것이라고 정씨는 설명했다. 희소성 등의 이유로 매매값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씨의 와인은 현재 150만원 이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술은 소비 성향이 강한 상품이다. 아무리 술로 재테크를 한다고 해도 밑바탕에는 소비가 전제돼 있다. 그렇지만 수요공급의 특성상 찾는 사람이 많으면 값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마련이다. 술의 경우 숙성이 오래됐거나 맛이 깊으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그렇다면 어떤 술이 재테크에 유리할까. 수요층이 넓은 위스키와 와인이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투자 방법은 정반대다. 위스키의 경우 숙성 연도와 희소성 여부가 가격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반면, 와인은 생산 지역과 빈티지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지난해 12월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서울옥션의 와인 경매에서 97년산 ‘샤토 무통 로스차일드(Chateau Moton Rothschild)’는 110만원에 낙찰됐다. 이 와인이 높은 값에 낙찰된 것에 대해 서울옥션 측은 97년에 생산된 데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작황이 좋은 해에 생산된 와인들은 수요가 폭발적이어서 가격 상승폭이 높다. 한 해 차이로 값이 100만~300만원 이상 차이 나는 게 부지기수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빈티지는 1961, 1982, 1984, 1990, 1995, 1996, 2000, 2003년산이다. 물론 희소성 때문에 1961년산 와인이 가장 비싸다. 지난 2004년 경매에 나온 61년산 에르미타주 라 샤펠르(Hermitage La chapelle)는 지난 2004년 국내 와인 경매에서 990만원에 선보이기도 했었다. 45년 빈티지도 유명하지만 현재 시장에 거래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10병 남짓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1961년에 생산된 와인의 매매값이 상한가를 치리란 보장은 없다. 와인 업계는 되레 2003년 빈티지가 붙은 와인이 상승률 면에선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와인은 당해 기후가 어떠냐에 따라 값이 큰 차이를 보인다. 질 좋은 와인이 생산되기 위해서는 습도가 적고 계절이 뚜렷하며 수확기인 늦여름과 초가을에 일조량이 풍부해야 한다. 이러한 기후 환경은 와인의 당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유럽은 사상 최고의 폭염을 기록했다. 때문에 이때 유럽의 와인 생산 농가에서는 가뭄에 따른 흉작을 우려해 와인을 조기 수확했다. 조기에 포도를 수확하다보니 포도주로 담근 양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 같은 이유로 거의 모든 와인 전문가들은 2003년산 와인을 최고의 와인으로 꼽는다. 이 밖에 1982년과 2000년 빈티지가 붙은 와인도 상한가를 기록 중이다. 1982년 빈티지가 붙은 부르고뉴 1등급 와인은 84년 평균 50~100달러(5만~10만원)에 출시됐지만 지금은 한 병이 700달러(70만원)를 호가하고 있다. 아트옥션 조정용 대표는 “이러한 제품들을 국내에서 구입하면 각종 세금이 붙어 외국보다 70%나 비싸게 구입해야 한다”면서 “일부에서는 아예 와인 투어를 가질 좋은 와인들을 대거 사들일 정도”라고 말했다.지역별로는 프랑스, 독일 북부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와인 생산 최적지로는 북위 45도 선으로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부르고뉴, 보르도 모두 북위 45도 선에 위치해 있다. 그중에서도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샤토 라피트 로스차일드(Chateau Lafite Rothschild), 샤토 무통 로스차일드(Chateau Moton Rothschild),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 Brion) 등이 투자 가치가 높다. 남위 30도에 위치한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의 유명 와이너리들도 좋은 투자 상품으로 평가받는다.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와인은 곧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다. 컬렉터들이 매점매석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4년 5월 국내 한 와인 업체가 2000년산 보르도 와인인 ‘샤토 페르뤼스’를 한 병에 180만원씩 총 6병을 판매한 결과 이틀 만에 동이 났다. 국내외 유명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봐도 이들 와인들은 ‘매진(Sold out)’이라는 표기만 붙어 있을 뿐이다. 위스키는 와인에 비해 투자 방법이 단순하다. 숙성기간이 오래되고 한정판매된 제품일수록 투자매력이 크다. 그러나 투자용으로 활용하려면 최소한 숙성기간이 40년은 넘어야 한다. 그 이하는 시중에서 100만원 이내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어 투자용으로 삼기에는 부적합하다. 스카치 위스키인 조니워커가 브랜드 창시자 존 워커(John Walker)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판매하고 있는 ‘애니버서리 팩(The Anniversary Pack)’은 조니워커 블루(750㎖)와 세계적인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Bacarrat)가 디자인한 병 마개, 가죽 케이스 등으로 구성돼 600만원에 판매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4000병, 국내에서는 100병만 한정판매되고 있다. 싱글 몰트 위스키인 ‘매캘란 1946’은 시중에서 55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위스키 원액을 하나의 오크 통에서 숙성한 제품으로 1946년산이다. ‘매캘란 파인 앤드 레어’ 1926년산은 지난해 6월 7000만원에 국내 출시됐다. 이 위스키는 현존하는 위스키 중 가장 오랜 숙성 연도를 자랑하는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40병만 생산됐다. 이 위스키는 애호가,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높아 지난 1991년 위스키 경매에서 6000파운드(1191만원)에 거래된 것이 2004년에 열린 매티어스 위스키 경매(Mc Tear's Whisky Auction)에서는 2만150파운드(4000만원)에 낙찰돼 13년 만에 약 3배 이상 가치가 상승했다. 이 외에도 파인 앤드 레어 1937년산과 1939년산은 각각 1100만원과 1200만원에 판매 중이다. 이 밖에도 로열 설루트 38년산은 170만원으로 병과 라벨이 모두 손으로 제작됐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적으로 255병만 생산한 로열 설루트 50년산은 지난해 1200만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코냑의 경우 레미 마르탱의 ‘루이 13세’와 카뮈의 ‘카뮈 트래디션’이 300만원 대로 코냑 브랜드 중에서 최고가에 팔리고 있으며 ‘헤네시 리처드 엑스트라’는 250만원에 팔리고 있다. 1400만원인 프랑수아 라벨레 후라팡 코냑은 병 전체를 24K 순금으로 도금했으며, 지난 1904년 코냑 공식협회로부터 일등급으로 인정받았다. 위스키는 원액이 어떻게 숙성됐느냐와 병입연도(원액을 병에 넣은 연도), 생산량에 따라서도 가격에 큰 폭의 차이를 보인다. 여러 지역 참나무로 만든 오크 통이 아니라 한 지역에서 위스키와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오크 통이라야 제맛을 낼 수 있다. 거래에 있어선 와인 시장이 더 체계적이다. 고급 와인들의 경우 와인 경매 등의 2차 시장도 활성화돼 있는데 비해 위스키 거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외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와인만 해도 소더비 크리스티 등에서 정기적으로 경매를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옥션과 아트옥션 외에도 각 백화점마다 정기적으로 경매 행사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