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품목은 다이아몬드 반지입니다. 5.03캐럿 F/S12이며 경매가는 8000만원부터 시작합니다.”지난 달 16일 강남구 신사동에서 열린 A회사 7차 경매 현장. 50여 평 공간에 40여 명의 경매 참여자가 경매사의 설명을 들으며 출품된 다이아몬드 반지를 응시하고 있다. 긴장감 속에 몇 차례 응찰이 오가던 중, 50대 여성이 자신의 12번 번호판을 들었다. “12번이 8500만원에 응찰했습니다. 경매가를 50만원 더 높여 보겠습니다. 8550만원에 응찰하실 분 번호판을 들어주십시오. 8550만원 없습니까?” 응찰자가 나오지 않자 경매사는 “12번 고객께 최종 낙찰됐습니다”라고 발표했다. 순간 경매장의 다른 한 쪽에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의 위탁 판매자 김모씨(50·여)의 얼굴이 환해졌다. 1년 전 보석상을 통해 6000만원에 구입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8500만원에 팔렸기 때문이다. 최상급 다이아몬드를 사서 1년 간 착용하는 즐거움을 맛보고도 연 41.7%의 높은 수익까지 내며 되판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일반 제품과 달리 명품 보석은 이처럼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남기기도 한다.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이곳 보석 시계 경매장에서는 매달 첫째, 셋째 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경매장 관계자는 “다이아몬드 반지는 자산으로도 가치 있는 보석”이라며 “앞으로 보석이나 시계 등 고가 명품의 경매는 지금보다 더 활발해질 전망” 이라고 말했다. 고용 불안과 고령화, 저금리 등으로 노후 대비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자산을 효과적으로 불리기 위한 재테크는 전 국민의 지상 과제가 됐다. 특히 전통적 재테크 수단이었던 주식과 부동산, 금융상품 외에 새로운 대안 투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부동산 투자에 대해 강력한 규제정책을 펴고 있는 데다 금리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최근에는 미술품과 함께 자기만족과 감상의 대상이었던 보석이 새 재테크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금과 다이아몬드는 오랜 전통을 가진 투자 수단이었다. 특히 물가 상승이 예상되고 경제 전체에 불안이 증폭될 경우 안정적으로 가치가 유지되는 금 수요는 크게 늘어난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현금 자산이나 유가증권 모두 가치가 하락할 공산이 커지지만 금은 오히려 수요 증가로 가치가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금은 환금성도 뛰어나다. 실제 최근 금 시세는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금 한 돈쭝(3.75g)당 소매가는 7만1300원. 고객이 금을 갖다 팔 때 받을 수 있는 금액도 돈쭝당 6만7000원 선으로 많이 오른 상태다. 보석은 불변성, 영구성, 희소성 등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재테크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보석을 샀다 팔면 무조건 손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따라서 재테크 수단으로 보석을 구입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이와 관련, 보석 시계전문 ㈜KSJ옥션(대표 최준환)의 한지수 과장은 “중간 유통 업자들이 소비자에게 시세를 기준으로 팔 때 높게, 살 때는 낮게 매매하면서 생긴 근거 있는 불신”이라며 “그러나 보석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과 정보가 있다면 투자 상품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물론 모든 보석이 재테크 수단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른 모든 투자와 마찬가지로 보석에 투자할 때에도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보석은 크게 다이아몬드와 유색석으로 분류된다. 현재로서는 일반인들이 투자하기에 적합한 보석은 가장 안정적인 공급과 수요가 있는 다이아몬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 일반적으로 20년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이아몬드 투자를 계획하는 게 바람직하다. 2~3년 정도의 단기 투자를 목적으로 다이아몬드를 구입할 경우 일반 보석상보다는 직거래 형식의 경매를 통해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유색석 재테크도 해볼 만하다. 점차 자원이 고갈됨에 따라 좋은 품질의 원석들이 갈수록 희귀해지고 있어 천연 보석의 가치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보석감정사협회는 “천연 유색석은 자원의 고갈 정도가 심해 앞으로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며 특히 루비는 현재도 희귀한 보석으로 각광받고 있는 만큼 보석 재테크의 ‘꽃’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희소가치가 있는 보석은 본인이 충분히 즐기고 난 후 되팔 때 경제적인 보상까지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투자 상품이다.현재 보석 경매는 투명성과 합리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뒀다. 실제 고객이 경매를 위해 보석을 위탁하면 경매 업체의 위탁감정을 맡고 있는 전문 감정 위원들이 제품 등급을 평가한다. 보석은 흠집과 보관상태, 원석 등급에 따라 가격차이가 난다. 이어 해당 물품은 보석 가공공장을 통해 수정 작업을 거친 후 경매에 올라간다. 경매 당일 최초 경매가격이 매겨진 뒤 경매사가 물건을 소개하는 동안 해당 제품은 경매 참가자들에게 일일이 선을 보인다. 모든 경매 물품은 공인감정서와 보증서가 첨부된다.보석과 함께 컬렉션 재테크의 백미로 꼽히는 제품이 바로 시계다. 명품 시계의 가격은 동일한 브랜드 안에서도 수십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다양하다. 명품 시계 가격은 그 시계의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척도가 된다. 같은 재료와 기술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브랜드 가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 달라지기도 한다.유명 브랜드에서 특정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시계나 한정판 시계는 희소성으로 인해 가장 소장 가치가 높은 ‘보물’로 분류된다. 이런 시계들은 시계 경매장에서도 없어서 못 파는 귀한 물건으로 통한다. 얼마 전에는 스위스의 파텍 필립 시계가 60억원이라는 고가에 판매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제네바의 시계경매회사인 안티쿠오룸에서는 파텍 필립의 ‘Caliber 89’가 한 고객에게 660만스위스프랑(약 60억원)에 팔린 것. 이 시계는 파텍 필립이 지난 89년 창업 150주년을 기념해 만든 4개의 시계 가운데 하나로 매우 희귀한 제품이다. 한 유럽 왕실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경매에 붙여지게 됐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시계 거장들이 하나씩만 제작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스페셜 모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에 모나코 왕자인 프린스 알버트 2세는 근육병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 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를 위해 안트완 프레지우소 같은 뛰어난 독립 시계제작자들을 비롯해 프랭크 뮬러, 브뤼게, 파텍 필립, IWC, 해리 윈스턴, 예거 르쿨트르 등에서 시계를 기증했고 이 제품들은 어린이를 돕기 위한 경매에 붙여졌다. 시계들은 모두 하나뿐인 한정판 또는 새로운 시계 시리즈의 첫 번째 제품으로 구성됐다. 시계 장인 안트완 프레지우소는 운석으로 만들어진 2억여원의 메테오리테 시계를 기부했는데 이는 경매에서 4억여원에 팔렸다. 대체로 한정판이나 특별주문 제품은 희소성, 기술력, 미적인 매력으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현재 유명 브랜드의 시계들은 처음 만든 장인의 이름을 따서 부르고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과거 장인들이 직접 만들었던 시계 중 남아있는 제품의 가격은 천문학적 수준이다.국내에서도 명품 시계의 경매나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서울옥션이나 현대백화점 등에서는 VIP 고객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시계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에서는 영화 007에서 제임스본드가 직접 착용한 오메가 시계, 기능성을 강조한 브라이틀링의 파일럿 시계, 움직일 때마다 시계 속 다이아몬드가 움직이는 쇼파드의 해피 다이아몬드 시계, 마오쩌둥 탄생 기념 시계, 피아제 창립 120주년 기념 모델, 박정희 대통령 기념 시계, 롤렉스 한정판 시계 등을 경매에 올려 시계 수집가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서울옥션은 3월10일 청담동에서 제2회 마티네 경매를 실시하기도 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롤렉스, 카르티에, 티파니, 태그 호이어 등의 진귀한 명품 시계들이 한꺼번에 선보인 경매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원석의 가치에 많이 의존하는 보석에 비해 시계는 장인의 기술력, 브랜드의 가치, 제품이 가진 의미 등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만큼 시계만을 수집하는 ‘시계 전문 수집가’들도 많다. 이처럼 수요가 많기 때문에 명품 시계 재테크는 안정적이며 유망하다. 시계 수집가들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명품 브랜드보다 시계 분야에서만 두각을 보이는 특수한 브랜드들을 선호한다. 소위 재테크가 되는 시계 브랜드가 따로 있다는 얘기다. 롤렉스나 카르티에 등의 시계는 세계적으로 그 명성과 가치가 인정되지만 정교하게 가공된 모조품이 많아 상대적으로 희소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반면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프랭크 뮬러 등의 세계적 전문 시계 브랜드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부유층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 이들은 모두 수작업을 통해 시계를 제작하며 한정판을 즐겨 생산하기도 하는 최상급 브랜드들이다. 브랜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IWC나 파네라이 같은 브랜드들은 아시아보다는 미주지역에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브랜드다. 이렇게 지역별 차이가 나는 브랜드는 수요가 적은 지역에서 구입해 인기가 높은 지역에 내놓는 것이 좋은 재테크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럴 땐 세계적 유통망을 가진 대형 경매회사에 의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적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는 시계 경매를 주로 뉴욕에서 진행하며 보석은 제네바와 런던 등지에서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장충동에 있는 고급 사교클럽인 ‘서울클럽’에서 크고 작은 경매들이 열리고 있다.컬렉션의 역사가 긴 서구에서는 부동산, 보석, 미술품을 3대 실물 투자 대상으로 여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만큼 미술품이나 보석 투자가 활발하지 않지만 경제 발전이 지속되면서 이에 대한 수요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장기적 안목에서 명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은 권할 만한 일이다. 물론 안목을 제대로 키우지 않은 상태에서 대담하게 투자에 나섰다가는 실패할 공산도 크다. 명품 감상과 투자의 가장 큰 밑천은 높은 안목이다. 따라서 초기에는 투자 액수에 연연하는 것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르고 또 고르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 연애하는 심정으로 보석과 시계를 눈여겨보면서 안목을 키워나가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