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픽 디자이너로 멀쩡하게 회사 생활을 하던 김혜옥씨는 지난 1998년 돌연 사표를 던졌다. 과장으로 진급해 디자이너로 한창 물이 오를 때였지만 그는 과감하게 새 인생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디자이너라고 하면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지만 야근과 밤샘 근무를 밥 먹듯이 해야 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무척 힘들었어요. 또 같이 입사해 더 큰 능력을 발휘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은 경우도 있었죠.”직장을 그만둘 당시만 해도 그는 재무설계사(FP)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FP란 직업에 대한 편견이 있었고 때로는 혐오감마저 느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그의 인생 항로는 완전히 뒤바뀐다. 매일 사무실을 찾아왔던 FP와 인연이 돼 교육을 받으면서 보험이 고객에게 큰 가치를 주는 사업이란 점을 체험한 것이다. 결국 그는 보험업에 투신하기로 결정했다.물론 가족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디자이너란 직업을 바꾼 것에 불만이었던 가족들이 FP란 일을 용인해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 후에 들통이 났다. 대가는 혹독했다. 허리까지 길게 길렀던 머리카락이 잘리고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 당시 29세 미모의 딸을 영업 전선에 내맡길 수 없다는 게 부모님의 완강한 뜻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부모님도 뜻을 꺾고 말았다.영업 현장에서는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디자인 작업을 해 왔던 게 사회생활의 전부였던 그에게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나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성과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둘지 여부를 고민하던 즈음 한 고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상해 보험에 가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고객을 찾아가 온 힘을 다해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을 따냈다. 이 고객은 다른 지인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었고 다시 한 번 해보자며 이를 악물었다. 대개 보험 영업사원들은 직장인을 만날 때 껌이나 과자 등과 함께 보험 상품을 소개하는 유인물을 나눠준다. 그는 여기에 의구심을 가졌다.‘왜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상품 소개 정보를 줘야 할까?’‘고객들은 이 유인물 때문에 사탕이나 과자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상품을 소개하는 유인물 대신 재미있는 유머나 생활정보를 미리 준비해 고객에게 이야기해 줬다. 매일 매일 새로운 얘깃거리를 준비해 고객을 즐겁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객과의‘신뢰’가 쌓여 갔다. 보험 가입을 권유하기 위해 상담할 때에도 그는 세상 사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김 FP는 고객들과 허물없는 친구가 됐다. 한 번 맺어진 인연은 또 다른 인연으로 연결됐고 결국 뛰어난 실적을 바탕으로 그는 억대 연봉자 반열에 올라섰다.그에게는 열정이 있다. 선천적으로 에너지가 넘쳐난다. 보험 상품을 설명할 때 그는 열변을 토한다. 월 3만원을 납입하는 작은 규모의 계약이라 하더라도 그는 두 시간에 걸쳐 혼신의 힘을 다해 상품을 설명한다. 그가 처음부터 말을 잘했거나 웅변에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객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그는 상품 설명 과정을 스스로 녹음해 놓고 직접 문제점을 분석했다. 또 새로운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책도 열심히 읽었다. 결국 열정이 담긴 그의 설명에 대부분의 고객들은 마음을 빼앗겼다.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열정은 상품 설명에만 그치지 않았다. 7년 전 한 남자가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을 때의 일이다. 이 남성은 자신을 담당했던 설계사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약속한 것도 처음과 달라졌으며 회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질책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이 고객에게 김 FP는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리고 직접 고객을 찾아 나섰다. 한여름 무거운 수박 한 통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상계동에 살던 고객을 만났다. 이 고객은 무더위 속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김 FP의 모습을 대견하게 여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고객은 큰 청과물 사업을 하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신뢰가 쌓이면서 이 고객은 매달 700만원씩 보험금을 넣는 우량 계약자가 됐고 지인까지 소개해 준 덕에 김 FP는 무려 22건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어떤 고객은 어머니가 보험에 들었는데 김 FP의 권유로 아버지까지 함께 가입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고, 보험금 1000만원을 수령했다. 나중에 그 고객이 상품권을 들고 와서 인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상품권을 끝내 받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 한 끼도 대접했다. 그 고객은 이런 모습에 더욱 신뢰를 느꼈는지 주위 사람을 4명이나 더 소개해 줬다. “제가 그냥 돈만 생각했더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상품권을 받았겠지요. 그러나 저는 보험 상품을 파는 영업사원이 아니라 고객에게 신뢰를 팔고 삶을 설계해 주는 FP입니다. 그래서 상품권보다는 고객의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매주 2건 이상씩의 종신보험 계약을 체결하고 한 해에 100건 이상 새 계약을 맺으며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시련이 찾아왔다. 2004년 4월 뚜렷한 원인도 없이 쓰러지고 만 것이다. 잠시 몸이 좋아졌지만 그해 말 그는 또다시 쓰러졌다. 2005년 여름에도 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스트레스 등으로 신장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 급성 신우신염이란 진단이 나왔다. 병원에 들락날락 하는 과정에서 고객도 많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다시 힘을 내 영업 현장에 복귀했다. 작년에는 결혼하면서 더 힘을 얻었다. 좌절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병술년 개띠 해를 맞아 개띠인 김씨의 의지는 남다르다.“병으로 인해 깊은 슬럼프에 빠졌었지만 격려를 아끼지 않은 가족과 고객 덕분에 다시 힘을 얻게 됐습니다. 올해 고객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최고의 한 해로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