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파트 변천사 따라잡기

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형태의 주거단지가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 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산업이라는 건설회사가 서울 성북구 종암동 고려대 앞에 선보인 5층짜리 ‘종암 아파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넓은 거실에 벽난로가 있는 서구식 내부 평면을 적용했고 당시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했으며 아궁이에 솔잎이나 장작을 넣어 밥을 지어먹던 어려운 시절에 연탄보일러를 도입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60년대 들어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형무소의 농장터에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가 들어섰지만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마당이 없는 집‘이라는 인식과 위, 아래층 간 소음 등 공동생활의 불편함 때문에 빈민들의 주거 공간이라는 시각이 팽배했다. 사람은 흙과 땅을 밝고 살아야 한다는 고정 관념 때문에 분양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었다.그렇다면 ‘종암아파트’가 지어진 지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아파트의 위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전국 아파트 가구 수의 0.3%에도 못 미치는 판교신도시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부동산 시장이 출렁거리고, 땅을 밟기는커녕 땅을 내려다보기도 힘든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들이 강남 집값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지켜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뛰어넘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교육·경제의 중심코드를 형성하고 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는가 하면 어느 지역의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계층간 특수성이 결정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입주하기가 무섭게 유행이 지난 구식 취급을 받기 일쑤다. 그러나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가 변화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가장 큰 변화는 평면상 20년 이상을 지탱해 오던 이른바 2베이(2-BAY:전면 발코니에 거실+방이 접한 구조) 평면구조가 3베이(3-BAY:전면 발코니에 거실+두 개의 방이 접한 구조)로 옮겨가면서부터다. 60~70년대 선을 보인 초기 아파트는 주방 옆에 작은 평수의 방(혹은 가사실)이 딸려 있었고 창고가 따로 만들어졌다. 당시 유행 아이템은 복층형 구조로 지난 73년 준공된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62평형은 최초의 복층형 아파트로 기록돼 있다. 복층형은 상·하층으로 나뉘어져 부모와 자녀가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같은 평형대 단층 아파트보다 좁고 갑갑한 느낌이 들어 보편화하지 못했다.80년대에는 주택보급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아파트가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평면 구조도 일대 변화를 겪게 된다. 기존에 있었던 주방 옆 가사실(침실)과 창고를 없애고 거실의 기능을 강화하는 등 가족단위로 생활할 수 있는 평면이 인기를 끌었다. 신도시가 개발되던 90년대는 주택 200만호 건설 등 전국이 아파트촌으로 뒤덮이던 시기다. 짧은 시기에 많은 주택이 공급된 탓에 천편일률적인 평면구조가 정형화됐지만 주거 공간이 가족단위 중심에서 부부 공간을 독립해 부부의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존 중·대형 평형에는 욕실 수가 1개에 불과했지만 이때부터는 30평형대 이상 평형대에 거실 욕실과는 별도로 침실용 욕실이 따로 추가됐다.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형 평형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구조의 아파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방형으로 대표되던 아파트 평면에도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 드레스 룸, 서재를 비롯해 식당과 주방을 따로 두는 유럽풍 평면이 등장했다. 채광과 통풍을 중요시하면서 거실과 방이 일렬로 배치되는 3베이 구조의 아파트가 선보인 것도 이때다. 최근에는 직사각형의 판상형 아파트에서 탈피해 타워형 아파트가 속속 지어지면서 30평형대에도 4베이를 적용한 아파트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파트 내부 공간 못지않게 외부 공간에도 혁신이라고 불릴 정도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과거 다분히 형식적이던 건물 형태나 단지 배치, 주변 조경이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이제는 모든 게 주민들의 여가생활과 밀접한 관계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단지 배치나 조경이 아파트 가격을 좌우하는 경우도 많아 건설업체들도 ‘친환경 아파트’라는 점을 앞세워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아파트의 외부 공간이 변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바로 지하 주차장의 등장이다. 과거에 지어진 아파트는 외부의 지상 공간을 대부분 주차 공간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지어진 대부분의 아파트는 지상 주차장의 면적을 대폭 줄이고 주차 공간을 대부분 지하에 배치해 지상에 조경 면적과 녹지 공간을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아파트 외부 공간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른바 조망권이란 개념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라도 층별로 바라보이는 조망에 따라 집값이 수천만원씩 차이가 나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에 조망권이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70년대 후반 강남구 압구정동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한강의 매력이 소문으로 전파되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한강 조망권’은 아파트 값을 결정짓는 요인은 되지 못했고 단지 “살아보니 한강이 보여 참 좋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언론을 통해 한강 조망권이 소개되면서 서서히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해 지금은 엄연히 법적 보호를 받는 소중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첨단기술 덕분에 아파트 지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제는 ‘유비쿼터스’라는 정보통신상의 전문용어가 아파트에도 일반화하고 있다. ‘유비쿼터스’는 원래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을 말한다. 이 단어를 아파트에 적용한다면 ‘아파트를 통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휴대폰을 통해 가스와 난방, 조명은 물론 집안 가전제품을 조작할 수 있고 외출 시에도 휴대폰 영상을 통해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포스코건설은 작년 5월 인천 송도에서 분양한 더샵 퍼스트월드 주상복합에 ‘U-헬스케어 서비스’를 도입키로 했다. 입주민이 측정기기를 통해 혈압, 체지방 등을 재면 관련 데이터가 헬스케어 센터 서버에 저장된다. 축적된 데이터가 위급한 상황을 알리면 서울대 강남센터의 응급서비스에 연결돼 필요한 서비스를 받게 된다. 중견건설업체인 동문건설은 지난 1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파주 교하지구 내 3003가구에 홈네트워크 시설을 모두 설치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디지털 기기의 발전은 아파트 단지 내에 제한되지 않는다. 도시 전체와 연계되는 추세다. 올 하반기 분양에 들어가는 파주 운정신도시는 대한주택공사가 국내 처음으로 ‘유시티(U-city:유비쿼터스 도시)’로 건설하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