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처리기 ‘루펜’으로 성공한 이희자 사장

림을 하는 주부라면 누구나 음식물 쓰레기 처리 문제가 골칫거리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원칙적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특히 고층 아파트에 사는 주부의 경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수시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부들은 역한 냄새를 걱정하면서도 일정량이 모일 때까지 주방 구석에 음식물 쓰레기를 방치해 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루펜비아이에프와 ㈜삼오엔케이 이희자 사장(51)은 주부들의 이런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사업에 뛰어들어 ‘대박’을 터트리고 있는 여성 기업인이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생산하는 두 회사는 2005년 총 80억원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올해는 300억원을 올릴 것으로 이 사장은 전망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전업주부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한 케이스다. “음식물 쓰레기에 버려지는 돈이 연간 15조원, 그 처리비용은 10조원에 달합니다. 또 2005년부터 음식물 직매립이 금지돼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제 자신의 고민거리를 덜어낸다는 자세로 수년 간 개발에 매달려 왔기 때문에 품질에는 자신 있습니다.”환경 분야 비즈니스를 하던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던 덕분에 이 사장은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가 사업전선에 본격 뛰어든 것은 IMF 외환위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맞아 남편의 회사가 부도 처리되면서 이 사장이 집안을 회생시킬 구원투수로 나선 것. 그녀는 평소에 염두에 뒀던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문제는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악취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없애느냐는 것이었다. 백방으로 해결방법을 찾던 이 사장은 일본 마루이치사 제품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다. 그는 무작정 일본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술을 들여오기 위해서다. 그러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국의 여성 기업인을 마루이치사 회장이 쉽게 만나줄 리 만무했다. 하루 종일 회장 비서실에서 버티고 있던 그는 어렵게 일본인 회장을 만나 마루이치사가 개발한 음식물쓰레기 처리기의 한국 내 독점 판매권을 달라고 요청했다.“일단 200대만 현찰로 구입해 한국 시장에서 팔아보겠다고 말했더니 놀라더군요. 우리 돈으로 7000만~8000만원에 해당하는 물량인데 과연 해낼 수 있겠느냐 하는 눈빛이었습니다.” 대형 건설사를 공략해 신규 분양되는 아파트 싱크대에 설치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무모하리만치 당당한 이 사장의 열정에 마루이치측은 결국 100대를 무상으로 지원해 주기로 한다.1998년 이 사장은 일본 마루이치사와 건조기를 생산 판매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하고 국내 시장에 제품을 본격 출시했다. 그러나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이 제품의 기술력은 당시 국내 실정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국물이 별로 없는 음식을 소량 섭취하는 일본인에 비해 한국인들은 짜고 매운 국과 찌개를 주로 먹어 건조 과정 자체가 불완전했던 것이다. 물이 많은 음식을 악취 없이 완전하게 없애는 방법을 자체적으로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가정용 음식물 처리기 ‘루펜(Loofen)’이다. 2000년 루펜을 출시하면서 ㈜삼오엔케이 간판을 내걸었다. 루펜은 쓰레기의 종류에 관계없이 뚜껑을 열고 넣기만 하면 열풍 자연 공기순환 방식으로 섭씨 50도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바싹 말려준다. 투입구에 한 번 넣으면 두 번 다시 냄새를 맡거나 손으로 만질 필요가 없다. 기존의 분쇄압축 방식이나 미생물발효 방식과 비교해 고장이 없고 추가 관리 비용이 들지 않는 게 장점이다. 말려진 쓰레기는 소각하거나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리면 된다.서울 강남구 논현동 경복아파트 사거리 인근에 위치한 루펜비아이에프의 쇼룸을 방문하면 다양한 제품과 그 기술력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싱크대 안에 설치된 빌트인(built-in) 음식물 처리기의 뚜껑을 열고 불을 붙인 담배를 갖다 대면 연기는 마법처럼 처리기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수분과 냄새가 집 안으로 역류하지 않고 강제 배출되는 특허기술 덕분이다.음식물 찌꺼기의 수분은 맑은 물로 변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간다. 오·폐수로 인한 하수 오염이 전혀 없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바짝 말려진 쓰레기는 분량이 최대 5분의 1까지 줄어들어 손으로 만져도 불쾌함이 없다.처리기의 외관은 마치 와인 냉장고나 미니 냉장고처럼 세련되고 색상도 초록 빨강 등 다채롭다. 버튼도 전원과 건조, 고속건조 등으로 간단하다. 가격은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형(6~7ℓ)이 설치비와 부가세를 포함해 49만9000원.이 사장은 “20여년 이상 주부로 살아왔는데 왜 소비자들의 마음을 모르겠느냐”고 말한다. 그는 “음식물 찌꺼기를 한 번 버리고 나면 그냥 잊어버릴 만큼 편리하다”고 말했다. 종류에 따라 건조되는 데는 4~12시간으로 각기 다르지만 4인 가족 기준으로 1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 꼴로 내다 버리면 될 정도라는 것. 전기소비량은 형광등 하나를 24시간 켜 두는 정도로 별 부담이 되지 않는다.GS건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유수의 건설사에 납품한 실적이 기술력을 대변해 준다. 삼성주택전시관과 부산 해운대 센텀파크 등에 제품을 들여놓으면서 지난해부터는 지방 아파트 건설사로부터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2003년부터 약 5만대를 판매했지만 현재 수주받은 물량만 30만대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해 80억원 정도였던 매출도 올해 3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1990년대 초반 이 사장은 조안리의 ‘스물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이라는 책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일군 저자가 부러워서 눈물이 났단다. 그만큼 인생에 대한 야망과 욕심이 컸던 그였다.서울신탁은행에서 6년 간 근무했던 경력 이외에는 결혼 이후 주부로만 살아온 이 사장은 무엇보다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소 보수적인 경상도 출신 남편의 바람대로 ‘조신하게’ 살림에만 몰두해 왔지만 그에게는 결정적인 인생의 전환점이 다가왔다.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남편이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가 난 것. 수십억원 대의 빚더미에 앉으면서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하루아침에 가족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사업자금을 빌려다 쓴 가족과 친인척들마저 모두 피해를 보고 은행과 카드사, 사채업자로부터 빚 독촉을 받는 힘겨운 나날이 이어졌다. 담보로 잡힌 친척들의 아파트만 5채였을 정도다.그에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그래서 입술을 깨물며 사업 구상에 나섰다.“어려서부터 언젠가 꼭 돈을 많이 벌어 재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건조기 사업을 구상하면서 이 사업으로 반드시 집안을 다시 일으킬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자신도 있었고요.”그러나 이 사장의 사업이 평탄한 길을 걸어온 것만은 아니다.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이 서서히 소문이 날 무렵 2002년께 중견 기업인 R사, H사 등으로부터 다량의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계약을 제의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샘플만 가져가고 실제 물건은 가져가지 않은 것. 대금결제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자금난에 허덕일 즈음에는 제조권을 아예 팔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샘플로 가져간 물건과 흡사한 복제품을 시장에 내놓기도 했다.안팎으로 시련이 닥쳐왔다. 이때 이 사장은 새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40년 전통의 가구업체 BIF보루네오와 합작법인인 루펜비아이에프를 설립한 것. 보루네오가 20%의 지분을 투자했다. 제조와 기술개발, 건설사 특판과 수출은 루펜비아이에프가 맡고 대신 보루네오의 유통망을 통해 루펜을 파는 내용이었다. 기존의 화성공장 이외에 안성 일죽에 루펜비아이에프 공장을 설립했다.음식 자재 유통업을 하던 친정어머니를 지켜보며 자란 이 사장의 경영능력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특허등록 2건을 바탕으로 가정용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제품을 주로 생산해 오던 이 사장은 2003년 업소용 처리기 시장에도 뛰어든다. 대형 식당과 급식 시설이 있는 학교, 기업, 공공기관을 겨냥한 이 제품은 이 사장의 아들이 직접 디자인해 산업자원부가 주는 ‘2004 우수산업디자인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큰 아들의 디자인 덕분에 마치 색상이 아름다운 김치냉장고처럼 보인다. 실내외 어느 공간에 배치해도 인테리어를 전혀 해치지 않을 만큼 미관에 신경을 썼다.이 사장은 최근 들어 건설사를 중심으로 한 B2B 이외에 일반 판매 유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보루네오와의 합작이 주는 가장 큰 혜택도 이점이다. 보루네오의 전국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국내 최대 가전제품 업체인 S사와도 계약을 앞두고 있다. 이 경우 대형 가전제품 매장에서 ‘루펜’이라는 브랜드로 루펜비아이에프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가 진열될 예정이다. 2006년 초에는 획기적인 소재와 디자인의 신제품이 나올 예정이다.루펜비아이에프는 벤처기업 인증과 이노비즈 인증을 획득한 데 이어 국제적인 품질경영시스템(KS A ISO 14001:2004), 친환경표지인증 등을 받았다. 또 지난해 하반기 한국전자파연구원 산업기술시험원 한국건자재시험연구원 등으로부터 각종 제품 테스트를 받고 기술력을 확인받았다.이 사장은 “아직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시장은 완전히 성숙한 것은 아니다”며 “그동안 강남과 경기도권의 신규 중·대형 아파트에는 시공 단계부터 들어갔지만 아직도 음식물 처리에 고심하는 가정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베란다나 실내에 놓아도 마치 가전제품처럼 아름다운 제품, 미생물이나 각종 세균으로부터 자유로운 ‘루펜’은 국내 음식물 처리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 사장은 현재 처리기에서 배출된 건조 쓰레기를 수거해 농촌의 비닐하우스 농업 등을 위한 연료로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재활용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을 노리겠다는 취지다.또 현재 청계천과 중랑천 등에 시공된 풀이 자라는 친환경 시멘트는 공 모양의 건설자재로 하천의 물이 자동으로 정화되는 제품이다. 이 제품의 양산체제를 갖추기 위해 충남 공주에 공장을 건설 중이다.이 사장은 “처음에는 돈을 벌어서 빚을 갚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깨끗한 환경과 소비자들의 삶이 먼저”라며 “여태껏 소비자들로부터 큰 불평이나 사후관리(애프터서비스) 요청을 들어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