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학 전도사 다치바나키 도시아키 교수 인터뷰
부자가 되려면 리스크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한 번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일본에서 부자학 연구 권위자로 꼽히는 다치바나키 도시아키 교토대 경제학과 교수(62)는 MONEY와의 신년인터뷰에서 “아시아에서 다른 국가보다 앞서 경제발전을 이룬 일본의 경험으로 볼 때 새로운 부자들은 시대 변화를 앞서 읽고 과감하게 신규 사업에 도전한 사람들이었다”고 강조했다.다치바나키 도시아키 교수와 그의 제자 모리 다케시 고난대 교수는 2005년 상반기 ‘일본의 부자 연구’란 단행본을 출간해 화제가 됐었다. 이 책이 일반인의 관심을 모은 것은 연간 1억엔(약 10억원) 이상의 수입을 수년 간 유지하고 있는 고소득자 2000명을 전수조사해 집필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일본 부자들의 실태와 인식을 리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두 교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부자들의 대표적 2대 직업은 기업가와 의사로 나타났다. 이중 기업가의 직종 변화가 두드러진 게 눈길을 끈다. 20년 전만 해도 중후장대한 제조업, 토목건축, 유통업, 부동산 임대업, 교통관련 회사 경영자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정보통신, 화장품, 음식체인, 컨설턴트, 소비자금융업 등을 경영하는 기업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로 조사됐다.도쿄대와 함께 일본의 양대 국립대로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교토에 위치한 교토대 연구실을 찾아가 다치바나키 교수로부터 일본의 부자와 일본 경제의 변화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본에서 부자들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가.“그렇다. 일본에서 전통적인 부자들은 전력, 철강 등 중후장대한 업종의 경영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젊고 새로운 부자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 비즈니스와 정보기술(IT) 업종을 중심으로 당대에 사업을 일으켜 성공한 신흥 갑부들이 잇따라 출현하고 있다.”? 부자 가운데 의사가 많은 것으로 소개됐는데. “사업가를 제외하곤 직업군으로는 의사들이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집계됐다. 의사 중에서도 대형 병원의 월급쟁이 의사가 아니라 자신의 병원을 운영하는 개업의 가운데 부자가 많았다. 한국도 비슷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최근 대학 입시에서 의대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전통적인 부자와 신흥 부자의 차이점을 꼽는다면.“전통적인 부자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성공한 사람들이 주류다. 그러나 신흥 부자의 경우 학력과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았다. 학력보다는 자신이 비즈니스 기회를 잡아 사업에 성공한 케이스가 많다.”? 그렇다면 일본 사회에서 ‘부자’와 ‘학력’과는 연관성이 적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돈벌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출세’라는 측면에서도 ‘학력’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고 판단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관료들의 힘이 약해지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예전엔 도쿄대 출신들이 공무원을 가장 선호했으나 지금은 비즈니스맨이 되길 원하고 있다. 고이즈미 정권의 구조 개혁 핵심도 관료 조직을 약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 의대로 인재들이 몰리는 현상은 어떻게 보는가.“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다른 분야에선 ‘학력’의 영향력이 줄어든 반면 의약계에는 반동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교토대의 경우에도 최근 몇 년 전부터 의대 입학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에 몰리는 것은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사이언스 등 다른 이공계 분야로 인재들이 진로를 바꾸기를 제안하고 싶다.”? 부자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부를 세습받지 않고 당대에 부자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사업가들이다. 따라서 사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리스크’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실패해도 물러서지 않는 강인한 용기가 필요하다.”?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일본의 부자들은 어떠한가.“부자들에게 ‘저소득자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한 결과 ‘사회에 책임이 있다’는 답변은 10%에 불과했다. 반면 ‘본인이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40%나 됐다. 집단 의식이 강한 일본에서도 장기 불황과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가난은 개인 책임’이라는 자본주의적 인식이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부모의 재산에 대한 부자들의 가치관은 어떠한가.“부자들은 부는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기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경제적 성공에 부모의 유산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 부자들은 거의 없었다. 60%가량의 사람이 유산이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부자들은 불황기에 어떻게 재산을 불렸는가.“‘5년 전과 비교해 재산이 늘었는가’란 질문에 60% 이상이 ‘그렇다’고 답변해 일본 부자들은 불황 속에서도 꾸준히 재산을 늘려 온 것으로 조사됐다. 불황 여파로 일반인들은 적금 통장까지 깨는 현실에 비춰볼 때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고이즈미 정권 아래서 서민층이 늘어났다는 지적이 있다. 향후 일본의 사회계층 구조에 대한 전망은.“고이즈미의 구조개혁은 민간 주도의 경제 개혁을 기본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다. 글로벌화 외에 시장 경제의 가속화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중산층이 두터웠던 일본의 사회 구조가 깨지고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어 빈부 격차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 9월 예상되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누가 당선돼 다음 정권을 이끌어 갈지에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