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철 위더스스포츠 대표의 사업 다이어리

년 5월23일 자정 무렵. 박영철 위더스스포츠 대표(36)는 전화 벨 소리에 잠을 깬다. 수화기 저 편에서 숨가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놀라지 마세요. 지성이가 해냈어요. 지금 영국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성이와 계약하기로 했답니다.” 위더스스포츠에서 분사한 FS코퍼레이션 이철호 대표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한국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흥분할 만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것과 비견되는 경사가 아닐 수 없다.“퍼거슨 감독이 지성이에 대해 좋게 말할 때부터 왠지 느낌이 좋았어요.”“계약 조건은 어때. 우리가 제시한 만큼 주겠대. 아무리 프리미어리그라도 헐값에는 안 되잖아.” “형. 조건도 괜찮아요. 이적료 387만파운드(73억6000만원)에 연봉 200만파운드(38억8000만원)예요. 계약기간은 4년으로 정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박 대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에이전트 수수료’ 따위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성취감과 허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박 대표의 ‘프리미어리그 입성기’는 이렇게 대미를 장식했다.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 화려하게 데뷔하면서 박 대표와 위더스스포츠의 위상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슈퍼 에이전트로 부각되면서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언론 앞에 나서는 것을 극력 꺼려 왔다. 아직 내세울만한 게 없다는 논리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핑크빛이라는 게 업계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박 대표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큰 시장에 물꼬를 텄기 때문에 앞으로 ‘대어급’들이 줄줄이 위더스스포츠를 노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한국이 출전하는 2006 독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이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시장 규모는 어마어마합니다. 세계적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인 SFX나 KAM을 보십시오. 가령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아드보카트 감독을 비롯해 히딩크 코엘류 본프레레 감독도 모두 KAM 소속이었습니다. 이들 메이저 업체들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선수들을 한곳에 모아 축구 이벤트를 벌여 수익을 내기도 합니다. 이벤트와 매니지먼트 마케팅 업무를 한꺼번에 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밖에요.”박 대표는 ‘준비된 경영자’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것은 26세 때. 그는 일본에서 스티커 사진기 10대를 수입해 국내에 처음 판매했다. 액수로 따지면 200만원어치. 스티커 사진기는 당시 일본에 막 선보여 히트를 치고 있는 기기였다. “사업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았죠. 일본에 갈 기회가 많았는데 거기에서 스티커 사진기나 DDR(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 오락기계)를 처음 봤어요. 보는 순간에 ‘저걸 국내에 수입하면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구체적인 금액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 나이 때 쉽게 만지기 힘든 금액을 벌었다”고 말했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2000년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 고등학교 친구 5명과 함께 모바일 게임회사를 만들었다. 그가 주도적으로 설립한 ‘소프트엔터’는 모바일 게임의 효시인 ‘날아라 슈퍼보드’ ‘여고괴담’ 등을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시장이 꽤 전망 있어 보이더군요. 1년 만에 매출이 5억원으로 늘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7억원, 지금은 자본금이 10억원으로 커졌습니다. 지금이야 모바일 게임이 보편화해 있지만 당시만 해도 휴대폰으로 게임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모바일 게임에 주목하게 된 것 역시 일본에서였다. 앞으로 이동통신사업이 핵심 산업으로 부상할 것을 정확하게 예측했던 그는 소포트엔터를 국내 모바일 게임의 선두주자로 성장시켰다.박 대표는 스스로를 ‘경영을 잘하기보다는 사람 관리를 잘하는 편’이라고 평가한다. 두터운 네트워크를 활용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쓰는 데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선진 흐름을 예의 주시하는 것이 경영자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한다. 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전문성과 업무 분화를 강조했다. “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기업구조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투수 시스템입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선발과 중간 계투, 마무리의 역할이 명확합니다. 역할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죠.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지금까지 직원들의 업무에 일일이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기술 담당에게는 기술에 관한 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고 마케팅 담당에게는 영업에 관해서 절대적인 권한을 줌으로써 각자의 능력을 100% 이상씩 발휘토록 하는 게 제 경영 스타일입니다.” 그가 위더스스포츠를 설립한 것은 지난 2002년이다. “평소 체육계 인사들과 폭넓게 사귀어 왔는데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아 안타깝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선수들인데 이게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한국 스포츠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설립과 동시에 그가 처음 관리를 시작한 선수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박지성이다. 그가 박지성과 인연은 맺은 것은 친 동생 때문이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유학 중이던 동생이 박지성을 교토퍼플에 소개해 줬습니다.” 이후 박지성은 에인트호벤을 거쳐 꿈의 무대인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성했다. 박지성이 성공하자 위더스스포츠에 대한 축구계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5000만원이었던 자본금도 3년 만에 10억원으로 늘어났다. 아직 외형은 크지 않다. 그러나 그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이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해 투자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스포츠 스타들을 관리해 단시일 내 매출을 높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꿈과 가능성에 투자한다는 것이 맞는 말입니다. 꾸준한 선수 관리로 조금씩 내실을 다져가다 보면 매출도 크게 늘겠죠.” 요즘 그는 재능 있는 신인 유망주를 발굴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가 이사장으로 몸담았던 사립고교에 축구부를 설립한 것도 이 무렵이다. 현재 위더스스포츠는 FS코퍼레이션과 분사한 상태다. FS코퍼레이션에는 박지성 최태욱(시미즈 S 펄스) 안효현(수원 삼성) 등 선수 17명을 관리하고 있으며 위더스스포츠는 양동현(울산현대) 황규환(수원 삼성) 최원권(FC서울) 장준영(시미즈 유스팀) 등 16명의 축구선수가 소속돼 있다. FS코퍼레이션이 외국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면 위더스스포츠는 유망주를 찾아내 발굴하는데 치중한다.“우리 회사 소속의 강효(일본 류츠게이자이고) 김태연(장훈고) 선수가 내년 1월부터는 빗셀고베에서 뛸 예정입니다. 유망주들의 성장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도 놀랍니다. 유망주들에게 꿈을 심어 준다는 것이 스포츠 매니지먼트가 가진 가장 큰 매력입니다.”박 대표가 꿈꾸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은 어떤 모습일까. SFX와 KAM과 같은 사업모델이 최종 목적지다. 매니지먼트와 이벤트 마케팅을 결합한 거대 스포츠 마케팅 회사를 설립하는 게 목표다.“에이전트가 약간만 잘못해도 선수 생명은 거기서 끝입니다. 그런데 국내 매니지먼트 시장은 매우 척박합니다. 불공정 계약이 부지기수입니다. 해외 네트워크도 태부족입니다. 지성이를 맨유로 보내면서 저희도 SFX 에이전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럽 업체들끼리의 보이지 않는 카르텔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죠.” 미 프로야구계에서 슈퍼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는 모든 구단의 공적(公敵)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가 에이전트를 맡아 주기를 희망한다. 본인보다 선수들에 대한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는 보라스의 관리 노하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위더스스포츠의 외형을 줄어나갈 계획이다. FS코퍼레이션을 분사한 것처럼 지금의 위더스스포츠도 발전적으로 분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여러 개 회사로 나뉘어 선수들을 관리한 뒤 추후 하나로 합치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해외 거대 스포츠 마케팅 업체들과의 업무제휴를 강화해 경영 관리 노하우를 배워나갈 계획입니다.” 위더스스포츠는 현재 FS코퍼레이션과 지분을 교환하고 있으며 관리선수가 일정수준이 넘으면 다시 두회사를 합병키로 했다고 박 대표는 밝혔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독일월드컵에 출전하는 올해 그는 의미있는 목표를 설정했다.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 매니지먼트회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의 소망이 이루어질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