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층 시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건희 삼성 회장이 꼽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그 뒤를 이었으며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과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공동 3위를 차지했다.이 회장은 조사 대상자의 15.0%의 지지를 받아 ‘가장 존경하는 부자’로 꼽혔으며, 이례적으로 빌 게이츠 회장(13.2%)이 정 명예회장, 유 박사(각각 11.2%)를 제치고 선호도 2위에 올랐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4.0%), 미국의 록펠러와 카네기(각각 1.0%) 등도 중산층의 뇌리에 남아 있는 부자들인 것으로 조사됐다.이 회장은 60세 이상(18.8%)의 45~54평짜리(37.9%) 아파트 거주자(36.3%)에게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서울 강남(16.3%)과 분당(20.0%) 지역에 사는 중산층의 선호도도 비교적 높았다. 이 밖에도 이 회장은 여성(31.4%)보다는 남성(33.5%) 응답자들이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연령별로는 39세 이하(16.3%)와 55세 이상(18.8%)에서 가장 높게 나왔다.이 회장이 가장 존경받는 ‘부자’로 손꼽힌 사실은 적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해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파일로 촉발된 반(反)삼성 기류가 유난히 거셌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그렇다. 일부 극단적인 비판론자들은 이 회장을 정점으로 한 삼성 경영구조를 해체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던 터다. 이 회장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인색한 혹자들은 삼성은 탄탄한 전문 경영인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이 회장이 없어도 경영에 별다른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지금까지 삼성이 거둬들인 눈부신 경영 성과가 이 회장의 리더십에서 비롯됐다는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결과는 경영자는 실적으로 평가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일깨우고 있다. 또 이 회장과 삼성이 비록 ‘삼성공화국론’이라는 이름의 역풍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기업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부자’로서도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회장은 어떤 점을 인정받고 있는 것일까. 좀처럼 대외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언론과 인터뷰도 하지 않아 가끔 ‘침묵의 경영자’로까지 묘사되는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국내외에 비쳐지는 이미지와 경영 실적에 따라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은 국내보다는 전자산업의 종주국인 일본에서 더 존경받는다. 일본 재계에서 이 회장은 거의 ‘경영의 신’으로 칭송받는다. 1980년대 산요로부터 반도체 기술을 얻어 쓰고 도시바로부터 중급 전자기술을 받아 연명하던 삼성전자가 오늘날 세계 초일류의 기업으로 도약한 데는 이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평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역시 지난해 초 특집기사를 통해 ‘삼성의 약진은 오너 경영인이 선두에서 위험성 있는 투자를 과감하게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삼성의 강력한 리더십과 신속한 결단은 일본 경영자들이 배워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대 경영학에서 경영자의 능력이나 역할이 갖는 비중이 늘면 늘었지 줄어드는 추세는 결코 아니다. 물론 근로자들의 피와 땀, 고객들의 사랑이 오늘날 삼성의 성공을 견인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또한 삼성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 속에서 모든 것을 동일한 조건으로 놓고 봤을 때 어떤 기업의 성공은 경영의 성공, 경영자의 업적으로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국내의 바람직한 기업상으로 유한양행을 든다. 지배구조가 우수(?)하고 사회공헌 활동을 많이 하며 기업의 바탕이 견실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유한양행은 좋은 기업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유한양행에 비해 덜 윤리적이라고 해서 유한양행이 삼성전자보다 더 좋은 기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80년대 삼성전자는 유한양행과 엇비슷한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었다. 국내에서 차지하는 기업의 위상 또한 서로 비슷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거쳐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고 매출의 90%를 수출로 올리고 있다. 반면 유한양행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두드러지게 달라진 것이 없다. 국내 제약업계의 수입 대체를 다소 약화시키는 데 기여한 정도랄까. 만약 이 회장이 1987년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을 물려받아 현상을 유지하고 총수로서 ‘즐기는’ 경영을 했다면 결코 오늘날과 같은 성취는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현 상황에서 삼성의 지배주주를 해체하면 어찌될 것인가. 즉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미래는 어느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대안세력에 대한 문제점은 생각해볼 수 있다. 혹자들은 삼성을 ‘국민의 품’으로 되돌려주라고 한다. 극단적으로 국민기업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누가 어떤 능력과 자격으로 과연 리더십을 행사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2005년 9월 삼성전자가 오는 2010년까지 반도체 사업에 총 33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경우를 보자. 이 사업은 분명히 리스크가 크다. 한 라인에 3조~4조원씩 들어가는 반도체 사업이 삐걱거리면 제 아무리 우량기업을 자처하는 삼성전자일지라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만약 반도체 사업 실패로 인해 회사의 경영 성과가 곤두박질치게 되면 외국인을 비롯한 주주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신뢰와 성원을 보내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한편 빌 게이츠 회장에 대한 선호도는 분당에서 25.0%를 기록해 이건희 회장(20.0%)을 오히려 앞질렀다. 39세 이하 응답자 중 17.4%가 빌 게이츠를 가장 존경한다고 답해 연령대가 적을수록 선호도는 컸다. 이 밖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50대에서 17.3%의 지지를 얻어 이 회장(10.2%)보다 높게 조사됐다. 고 유일한 유한양행 설립자는 60대 이상(14.1%) 응답자들에게 높게 나타났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평균 4.0%의 선호도를 보였으며 일산(5.9%) 60세 이상(7.8%) 남성(6.3%) 응답자들의 지지도가 높았다. 이건희 회장과 합산하면 ‘삼성가 최고경영자’는 총 19.0%의 지지도는 얻은 셈이다. 반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지지도가 0.2%에 불과했다. 이 밖에 경주 최 부잣집과 남강 이승훈 선생은 0.2% 만이 선택했으며 연예인으로는 유일하게 가수 조용필이 0.2%의 지지도를 얻었다. 경영에 대한 찬반 양론이 일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0.2%의 지지도를 얻는데 그쳤다. 눈여겨 볼 것은 이번 조사에서 ‘존경하는 부자가 없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32.2%에 달한다는 점이다. 강남(26.8%)보다는 비 강남(33.2%)에서 높게 나타났고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상대적으로 수치가 높았다. 이는 아직까지 부자에 대해 존경보다는 사돈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한국적 정서가 존재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 가장 존경하는 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