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법은 정의(justice)를 지향하고 경제는 효율성(efficiency)을 추구하기 때문에 외견상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효율성을 도외시하고 법적 정의를 실현할 수 없고, 정의롭지 않은 사회질서 속에서 효율성을 달성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하이에크(Friedrich A Hayek)는 각국의 법적 전통이 그 국가의 경제적 효율성의 실현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고 주장하며 법과 경제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법과 경제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실증연구가 있다. 예컨대 채권자와 소수 주주를 제대로 보호하는 법제도 하에서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성이 더 높이 고양될 수 있으므로 그렇지 못한 국가에 비해 투자가 더 잘 이뤄진다거나, 전통적으로 정부의 역할보다는 사적 부문의 자유와 창의를 강조하는 영미법계(common law)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대륙법계에 비해 금융시장 발달에 더 성공적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뿐만 아니라 법제도의 차이 때문에 유럽 대륙 국가보다는 미국에서 자본시장이 훨씬 잘 발달할 수 있었고 이는 결국 기업의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법적 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이 항상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최근 중요성을 더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상의 재벌 규제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면 법과 경제의 상호작용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경제적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출자총액제한 제도와 같은 재벌규제 제도는 조속히 폐지되어야 하지만 법적 정의의 관점에서는 그 평가가 간단한 것이 아니다. 최근의 방송·통신 융합과 관련한 구조개편 논의도 법과 경제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대상이다. 종래 방송과 통신은 그 성격이 다른 것으로 이해돼 왔으며 특히 방송의 공공성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에 따라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급속도로 진전되자 규제 체계의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방송과 통신에 대한 법적 규제의 차이를 둘 필요성이 점차로 사라지고 있다.기업의 관점에서 볼 때 경영판단에 있어서 법적 고려를 해야 하는 경우도 급속하게 늘어가고 있다. 증권거래법에 따라 준법감시인 제도를 둔다든지 공정거래법에 따라 공정거래 자율 준수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과 같이 내부통제 제도가 점증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증권집단소송제도의 도입으로 법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업법무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커졌다. 이러한 내부통제 제도를 강화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기 마련이므로 어떤 수준에서 법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비용·편익 분석상 해당 기업에 최적의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 검토해야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 법과 경제의 관계에 대한 충분한 성찰 없이 논의가 이뤄지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 법의 핵심 개념인 정의 관념을 좁은 의미의 배분적 정의로만 이해하고 효율성의 추구를 도외시할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 극심한 비효율이 만연하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물론 법의 정의는 민주사회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보다 성숙한 민주국가와 선진 경제로 나아갈 수 있는 기로에 서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의 각 분야에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을 경계하고 법과 경제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차원 높은 성찰을 바탕으로 국민적 지혜를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