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대리 고길동씨 종자돈 5천만원 굴려 돈방석
고길동씨(가명)는 35세의 모 대기업 대리다. 젊은 나이지만 맨손으로 시작해 벌써 20억원 가량을 벌어들인 ‘신흥부자’다. 부동산투자로만 이 같은 거액을 모았다. 주식에도 손을 댄 적이 있지만 큰 손해를 본 뒤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다.햇살이 좋은 5월의 점심 무렵 서울 종로에 있는 복집에서 고씨를 만났다. 평소 친분이 있는 편이었지만 재테크 얘기를 꺼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돈 번 얘기를 묻자, 예상대로 ‘과거는 다 잊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조금씩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고씨는 투기가 아니라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주로 전세금과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구입한 뒤 시세차익이 발생하면 되파는 방식을 이용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의 소득수준에 맞춰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대출을 받았다.고씨는 모 대기업의 대리다. 때문에 부동산투자를 위해선 철저하게 주말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고씨는 오는 2008년께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이 다시 한번 폭등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때에 대비해 ‘실탄’을 준비 중이란다. 그의 속내를 들여다봤다.부모에게 상속 받은 5000만원대학 4학년이던 지난 90년대 중반의 어느 날,아버지가 취업준비생이던 고씨를 조용히 불렀다. 아버지의 반대로 유학의 꿈을 막 접은 뒤였다.“너도 이제 다 컸으니 마지막 용돈을 주마.”아버지가 내민 돈은 자그마치 5000만원이었다. 고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넉넉하다고 할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거금 5000만원이라니…. 아버지의 말이 이어졌다. “미리 상속하는 셈 치고 주는 것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가 알아서 써라.”아버지는 더 이상 어떤 용도로도 자금을 지원해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돈이 결혼자금이 될 수도 있는 셈이었다. 이후 고씨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멋진 차를 살까. 여자친구와 해외여행을 다녀올까. 아니면 접어두었던 유학을 결행할까….’고씨는 이때 다소 ‘특이한’ 결심을 했다. 이 돈을 굴려 목돈을 만들겠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바빠지기 시작했다.우선 서울지역의 아파트 값 조사에 착수했다. 잠실주공1단지 13평짜리 급매물이 눈에 띄었다. 친척이 살던 동네여서 친척으로부터 ‘살기 좋다’는 조언도 들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미혼이어서 책임질 식구도 없었던 터라 비교적 쉽게 매입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또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나중에 직접 살면 되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당시 가격은 9500만원. 고씨는 전세를 끼고 이 아파트를 샀다가 3년간 보유한 뒤 1억4500만원에 되팔았다. 3년 만에 5000만원을 1억원(1억4500만원-전세보증금 4500만원)으로 불린 것. 아파트 값은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줄곧 상승했다. 수요가 꾸준한 곳이어서 전세를 내놔도 쉽게 나갔다. 여기까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한 달 뒤 다시 송파구 오금동의 26평짜리 아파트(26평형)를 1억2000만원에 구입했다. 전세 7000만원을 끼고 샀기 때문에 실제로 들어간 돈은 5000만원뿐이었다. 그는 남은 돈 5000만원으로 강원랜드 인근의 농지를 매입했다. 아르바이트 삼아 일하던 주유소 사장이 소개한 땅이었다.강원랜드 입주를 예상한 게 아니라 남북통일이 되면 이곳의 땅값이 오를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투자했다. 남북통일 문제와는 관계 없이 전국에 토지 투자 붐이 일면서 이곳 땅값이 2년간 두 배로 뛰었다. 약 1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취업이 여의치 않으면서 경영학과 대학원에 등록한 고씨는 부동산투자와 함께 2000만원을 주식에 투자했다. 운이 좋았던지 1년 남짓 만에 4400만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대학원 등록금과 용돈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주식과는 악연 투자때마다 손해하지만 주식과는 인연이 깊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큰 손실을 보고 말았으니 말이다.고씨는 주식으로 돈을 좀 벌자 더 큰 욕심이 생겼다. 부동산과 달리 따로 ‘발품’을 팔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면에서 효율적인 재테크 수단이란 점도 매력이었다. 주식투자는 전적으로 ‘감’에 의존했다. 짭짤한 재미를 보던 90년대 말 고씨는 갖고 있던 모든 종목을 현금으로 바꿔 차익을 실현했다. 당시 밀레니엄 버그로 우려됐던 ‘YⅡK’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고 주식시장의 요동도 없었다.고씨는 2000년이 밝기 무섭게 다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IT(정보기술) 대표주에 소위 ‘몰빵’ 투자를 했다. 주가가 잠시 오르는 듯하더니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손절매하기 도 겁날 정도였다.해당 종목은 5~6개월 만에 껍데기만 남게 됐다. 그동안 주식으로 벌었던 돈은 물론 투자원금까지 상당부분 까먹었다. 고씨는 주식투자 실패 요인으로 ▲투자 위험이 높다는 점을 간과했고 ▲분석 대신 순전히 감에 의존했으며 ▲손절매를 무시한 점을 꼽았다. 고씨는 이후 단 한 번도 주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역시 부동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투자 실패의 쓴 맛을 본 뒤 부동산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됐다. 우선 고양시와 강남구 일원동의 주공아파트 두 채를 사들였다. 1년여 만에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지방의 소도시 아파트에도 관심을 가졌다. 강원도의 한 아파트를 9500만원에 매입한 뒤 3년여 만에 1억6000만원에 되팔았다. 전세 6000만원을 끼고 샀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투자할 수 있었다. 인구가 50만여명에 불과한 소도시지만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아파트 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대로 맞아떨어졌다.부동산투자 끝없는 ‘돈빛 찬란’이후 그는 이런 식으로 수차례 아파트를 사고 팔면서 20억원 가까운 돈을 모았다. 현재는 서울 강남의 대형 아파트 한 채로 보유자산을 단순화해 놓았다. 고씨는 지금까지 세 차례 땅을 사고 팔았다. 강원랜드 인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수도권이었다. 현금이 부족할 땐 지인들과 펀드를 만들어 공동으로 투자했다.고씨가 부동산으로 돈을 번 데는 ‘단골 부동산’의 코치도 큰 역할을 했다. 친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 ‘고 대리, 땅 하나 나왔는데 능력이 되면 하지….’ 이런 식이다. 고씨는 단골 부동산업소에서 연락이 오면 현금을 싸들고 달려갔다. 그만큼 신뢰가 쌓였고 그곳에서 전해주는 정보가 믿을 만하다는 얘기다. 물론 수수료는 넉넉하게 준다.고씨는 아파트를 고를 때면 50평 이상의 대형 평형을 선호한다고 했다. 어차피 실거주보다 투자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집값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더라도 대형 평형의 가격은 가장 늦게 떨어진다는 게 고씨의 지론이다. 지금까지 고씨의 최고 투자수익은 원금 대비 2.5배였다. 2008년께 부동산시장 폭등고씨는 3년 후인 2008년께 부동산시장이 다시 한번 폭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감’이 그렇다고 했지만 상당한 근거도 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동산시장의 자연 증가분까지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결국 폭발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노 정권이 100년 가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게 고씨의 얘기다. 특히 노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조금만 나타나더라도 부동산시장은 상상 이상의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부동산시장이 ‘용암처럼 밑바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씨가 폭발의 도화선 역할을 할 수 있는 재료 중 첫 손에 꼽는 지역은 ‘판교’다. 고씨는 오는 11월 일괄분양 때가 아니라 입주시점인 3년 후 이 같은 폭발이 가시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고씨는 3년 후 부동산 값 폭등의 또다른 근거로 ‘IMF형 사이클’을 들었다. 98년을 기점으로 경기의 새로운 10년 주기가 생겼다는 것. 2002년은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의 통상적인 ‘10년 상승주기’였고, 오는 2008년은 IMF체제로 인해 생긴 새로운 ‘10년 상승주기’란 설명이다.고씨는 이런 예측을 바탕으로 현재 자산 현금화작업을 하고 있다. 부동자산을 가급적 예금 등 유동자산으로 바꿔가는 중이다. 여윳돈은 상호저축은행 종금사 등 금리를 연 1%포인트라도 더 주는 금융회사에 분산 예치해 놓고 있다.1가구 3주택자에 대한 세금 중과가 이어질 것이지만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투자수익이 그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고씨는 확신하고 있다.●투자노트고 대리의 투자전략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바로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다. 출발부터 자기자본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의 돈을 최대한 활용했다. 우선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구입했다. 전세가격이 보통 아파트 값의 40~60% 수준이기 때문에 나머지 자금만 있으면 집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다. 그래도 현금이 부족할 땐 은행 대출을 활용했다. 고 대리가 금융사에 다녔던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는 또 현장을 중시했다. 사실 부동산투자에 성공한 사람치고 현장을 중시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 대리는 주말마다 분양현장을 돌아다녔다. 여행을 가거나 볼일이 있어 지방에 가더라도 모델하우스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이렇게 하면서 그는 아파트에 관한 한 자연스럽게 고수 대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고 대리의 투자 7계명1. 기회가 왔을 땐 과감해야2. 일단 투자했다면 인내하라3. 세금을 무서워 하지마라4. 자린고비가 돼라5. 핵심 정보원을 만들어라6. 건강해야 투자성공도 높다7. 자신만의 감을 키워라©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