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백 한국투자신탁운용 본부장

올해 금융계 히트상품을 꼽으라면 단연 적립식펀드일 것이다. 적립식 펀드는 주식투자자들이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오버 1000 시대’의 버팀목이 됐다. 지금은 적립식 펀드가 일정 수익률을 내고, 그에 따라 돈이 더 몰리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김상백 주식운용본부장(40)은 올 상반기 베스트 펀드 펀드매니저에 오르며 적립식 펀드 시대를 활짝 열어 제치고 있는 주인공. 그가 운용중인 ‘TAMS거꾸로주식A-1’는 올 상반기 중 35.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김 본부장이 이룬 수익률 35.1%는 설정액 100억 원 이상의 주식형 펀드 가운데 발군의 1위다. 강남구 아파트의 상반기 상승률이 평균 17%인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 투자 부럽지 않은 수익을 낸 것이다. 펀드 가운데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디스커버리’ 펀드와 세이에셋자산운용의 ‘세이고배당주식형’ 펀드 등이 각각 25% 수준의 수익률을 올려 적립식 펀드시대를 실감케 했다. 김 본부장이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지난 해 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맘이 아픕니다. 펀드 수익률이 저조할 때 주변에서 수익률이 시장과 거꾸로라 펀드 이름을 들어 시장과 거꾸로 가느냐는 농담 반 진담 반섞인 이야기를 들을 땐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습니다. ‘TAMS거꾸로펀드주식A-1’펀드는 2003년 12월부터 운용됐다. 당시 외국인이 주도하던 시장은 모멘텀에 의해 철강주, 화학주, IT주가 많이 오르던 장세였다. 김 본부장은 생각이 달랐다. 유행을 쫓기보다는 펀더멘털에 입각해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 김장 김치 담그듯 묻어두는 전략을 고집했다. 이른바 ‘가치투자’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펀드자금이 모이질 않았다. 거꾸로 펀드에 당초 기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00억원 정도가 유입됐다. 그러나 김 본부장은 실망하지 않았다. 1년 뒤에는 10배가 넘는 펀드 자금이 들어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1년 뒤 그의 확신은 현실로 나타났다. 김 본부장이 운용하는 거꾸로 펀드가 꾸준한 수익률을 내면서 투자자들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 야금야금 펀드 자금이 몰려들어 그가 예측한 대로 현재 1000억원으로 불어났다.“펀드운용 초기에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지는 않았지만 다른 펀드에 비하면 시원치 않았습니다.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 매수하다 보니 수익률이 바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죠. 그 땐 정말 밤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수익률이 낮다며 항의하는 투자자들의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한때 자포자기 심정까지 생겼으나 저를 믿고 투자한 많은 투자자들을 생각하니 그냥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평소 월 2~3회 다니던 기업탐방을 주 1~2회 이상으로 늘려가면서 저평가된 종목을 찾는데 더욱 매달렸다. 더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30분 회사에 출근해 미국시장을 모니터링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후 3시30분 시간외거래까지 매매를 마치면 새로운 오후를 준비한다. 기업탐방에 나서거나 리서치팀과 머리를 맞대고 투자종목을 숙의한다. 하늘이 이런 노력을 알아준 걸까. 시장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반부터 모멘텀에 의해 이미 많이 오른 종목들에 대한 고평가 인식이 퍼지면서 개인과 기관 주도의 저평가 종목 찾기가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한 것.“다른 사람들이 뒤늦게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 나서느라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들이 고른 종목 대부분이 제가 미리 골라 선점해 놓은 종목이었다는 것입니다. 길목을 지키고 있었던 셈이지요.” 이 때부터 김 본부장의 가치투자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카프로, 한국카본, 한국프랜지, 동부건설, 한진중공업, 하림 등의 종목에서는 50~100%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이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종목은 하림. “지난해 10월 말경 회사를 방문할 당시 공장에 화재가 난 뒤라 어수선했습니다. 그런데 공장을 방문해서 알고 보니 닭 가격이 많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시장에서는 닭 가격이 오르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닭 회사에 닭 가격이 오르는 것만한 호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1000원 초반이던 주식을 매수하고는 두 달 만에 두 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습니다.”김 본부장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치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김 본부장 외에도 가치투자를 원칙으로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는 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수익을 낸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리서치 능력이다. “저와 함께 12명의 애널리스트가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성우 팀장이 이끄는 리서치팀은 평균 5년 경력의 쟁쟁한 애널리스트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펀드매니저 경력이 있는 애널리스트도 있습니다. 저도 애널리스트 출신입니다. 저희 회사는 펀드매니저가 전권을 갖고 운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리서치팀과 주기적인 회의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회의체 방식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가 돼 보유종목을 점검하고 신규 투자할 종목을 찾아 나섰던 것이 성공 요인이었습니다.”현 증시 과거와는 질적으로 달라김 본부장은 최근 주식시장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주식시장은 위험과 기회가 함께 존재하는 시장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주식시장은 위험보다는 기회가 더 많은 시장이 될 것입니다. 최근 주식시장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저금리에 의한 유동성입니다. 적립식펀드를 비롯한 간접 투자 상품으로 자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고 연금투자 확대, 퇴직연금 도입 등 유동성은 꾸준히 늘어날 것입니다. 또 다른 점은 기업 내용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높았습니다. 주가가 상승하면 유상 증자 등을 통해 부채비율 낮추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최근에는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하는 기업은 늘어도 유상 증자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기업들의 현금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그는 국내 주식시장이 과거 80년대 미국시장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1980년대 당시 미국 주식시장은 연기금투자 증대, 지속적인 금리 하향추세, 낮은 물가상승률 등 세 가지 호재가 어우러져 10년간 대세상승장을 연출했다. 국내 시장도 저금리, 연기금 투자확대와 퇴직연금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시장만 급등락 없이 안정된다면 완벽한 대세상승장이 연출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강세론을 펼치는 그지만 상반기 코스닥시장을 주도했던 바이오테마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나타냈다. “바이오테마주를 보면 과거 IT버블을 보는 것 같습니다. 수익성도 검증된 바 없고 기업의 이익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급등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버블이 빠질 때 행여 시장 전체에 나쁜 영향을 줄까 걱정입니다.”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서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오르는 부동산시장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김 본부장은 부동산시장은 버블이며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주위에 만나는 사람마다 부동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디가 올랐네 얼마 벌었네”하면서 부동산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사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투자자산 중 가장 고평가된 시장이 부동산입니다. 삼성전자가 저평가됐지, 타워팰리스가 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김 본부장은 부동산시장에선 더 이상 추가수익이 기대되지 않는다며 현재로는 주식시장이 가장 좋은 투자처라고 강조한다. 채권투자 역시 금리가 상승추세이기 때문에 당분간 수익을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그가 눈여겨보는 업종은 LCD업종 관련주와 반도체주이다. IT업종의 대표적인 휴대폰시장은 모토로라의 대대적인 저가판매 영향으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는 개인이 직접주식투자를 하기보다는 간접투자로 방향을 틀 것을 권한다. “개인투자자가 가치주를 찾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기업탐방하는 것도 쉽지 않고, 재무제표 분석 등도 전문가에 달립니다. 보통 기업분석할 때 PER(주가수익률), ROE(자기자본이익률), PBR(주가순자산비율)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많은 개인투자자는 과거 실적 데이터로 계산된 지표를 봅니다. 하지만 과거 수치로 계산된 지표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기업의 향후 실적전망치를 기준으로 계산된 지표가 중요한데 개인은 미래의 내다보는 능력에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배당주펀드, 가치주펀드, 선박펀드, ELS, ELF펀드 등. 펀드 종류만 해도 여러 가지다.어디다 투자해야할지 고민이다. 이에 대해 “100억이 넘는 펀드 중 1년 이상 수익률이 검증된 펀드에 투자하면 안전”하다고 김 본부장은 조언한다. 올 상반기 최고의 펀드매니저가 됐지만 김 본부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펀드 규모도 2000억원까지 늘릴 생각이다. 여름휴가도 반납했다. 1등을 하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며 수익률이 올라가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똑같다고 말한다. 김 본부장과 3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친 시간은 저녁 8시.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리서치팀과 회의가 있다며 자료를 챙기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의 워런 버핏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