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kt Peterburg
1392년 새 왕조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는 천도(遷都)문제로 마음이 급했다. 즉위한 지 한 달도 안돼 한양 천도 교시를 내렸고, 2년여의 논란 끝에 자신의 의중을 관철시켰다. ‘왕조를 바꾸고 천명을 받은 군주는 반드시 도읍을 옮기게 마련’이라는 그의 말 뒤에는 ‘한양에서 이씨의 기운이 살아난다’는 도참설에 대한 믿음과 함께 개경에 뿌리를 둔 고려의 지지 기반을 무력화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 수도 이전 논란이 한창이던 때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18세기 초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천도했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4대 황제 표트르 대제도 왕도 이전을 통한 지배세력의 새판 짜기를 염두에 두었을 법하다. 표트르 대제는 1703년 핀란드만 깊숙한 네바강 삼각주에 말뚝을 박고 새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조선에서는 19대 왕 숙종 재위 27년 그러니까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는 등 광풍이 휘몰아쳤던 해의 이태 뒤 일이다.최전방에서 스웨덴의 침략에 맞서고,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여 러시아를 혁신시키겠다는 게 천도 이유였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보아온 배다른 형들과 누이 그리고 그들을 등에 업은 왕실 세력 간 죽고 죽이는 궁중 암투에 대한 기억이 그가 모스크바에 등을 돌리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를 지지하지 않는 세력이 잔존하는 한 언제 등 뒤에서 칼을 맞을지 알 수 없었던 게 당시 현실이었던 만큼 천도에 대한 생각이 깊을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아무튼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1712년 공식 천도 이후 200여년간 로마노프 왕조의 수도로 번성했다. ‘유럽으로 향한 창’이라는 푸시킨의 말대로 러시아와 유럽 색채가 절묘히 어울려 지금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네바강 삼각주에 산재한 섬들을 연결하는 500여개의 다리, 거미줄처럼 얽힌 수로를 보면 ‘북방의 베네치아’라는 별칭이 딱 어울린다. 예술품 300만여점 소장한 에르미타주박물관상트 페테르부르크 여행은 대개 넵스키 대로를 기점으로 시작한다. 고골리가 ‘사람들은 넵스키 대로에 볼일이 있어 오지만, 넵스키 대로에 들어서는 순간 그 일을 잊어버린다’고 표현한 그 길이다. 폭이 서울의 세종로보다 훨씬 넓은 이 길의 양편에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에르미타주박물관이 으뜸이다.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사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에르미타주박물관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의 역사는 남편 표트르 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대제라 칭했던 예카테리나 2세 때부터 시작한다. 예카테리나 2세는 문화적 소양이 높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왕국의 보물들을 전시해 보여주기를 즐겼다고 한다. 베를린 회화상인 요한 골츠코우스키로부터 225점의 작품을 구입하는 등 작품 수집에 열을 올렸다. 현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300만여점. 조각 1만2000점, 회화 1만6000점, 판화와 드로잉 60만점, 응용예술품 26만6000점, 각종 동전과 메달은 100만개 이상을 헤아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 2점을 포함 티티안, 미켈란젤로, 루벤스, 렘브란트, 반다이크, 르누아르, 고흐, 고갱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이들의 진품 작품들이 350개의 방에 걸려 있다. 사실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관람객이 많은 데다 방과 방으로 연결된 동선만 10㎞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 코너에서 나가는 길이 세 갈래여서 자칫 길을 잃기도 쉽다. 화장실도 적다. 마실 물도 갖고 들어갈 수 없다. 100kg 순금 입힌 황금돔의 이삭성당에르미타주박물관은 왕조의 겨울궁전이기도 했다. 황제의 통치행위가 이루어졌던 게오르기홀이 그 중심이다. 황금옥좌와 쌍두독수리 문장을 볼 수 있다. 황제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꾸며놓은 방도 있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가 1917년 3월 혁명 때 숨어 있다가 잡힌 서재, 게렌스키를 중심으로 구성한 임시정부가 10월 레닌의 볼셰비키에 의해 전복되기 직전 회의를 했던 방 등에서는 러시아 혁명사를 짚어볼 수 있다. 박물관 앞 궁전광장은 1905년 러시아혁명의 불씨가 됐던 ‘피의 일요일 사건’이 터졌던 곳. 함포 발사로 볼셰비키 혁명을 지원했던 순양함 오로라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호텔 건너편에 정박해 있다. 배에 올라 내부를 볼 수 있다. 에르미타주박물관 인근에 ‘피의 사원’이 있다.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붉은 광장의 바실리 사원을 연상케 하는 사원이다. 사원은 곧게 뻗은 수로 끝에 서 있는데 바로 알렉산더 2세가 폭탄테러를 당했던 장소다. 당시 횡행했던 급진사상을 받아들인 러시아 인텔리겐차들이 농노 해방 등의 개혁이 먹혀들지 않자 시찰 중이던 알렉산더 2세에게 폭탄을 던졌던 것. 사원 정중앙 모자이크 장식이 된 부분이 폭탄이 터졌던 장소다. 이삭 성당은 규모가 엄청나다. 삼각주 지역이라 땅이 물러 쇠말뚝을 박고 그 위에 올린 사원이다. 100kg의 순금을 입힌 황금 돔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 화가들이 그린 성서화와 조각품, 1만2000여개의 조각으로 만든 62점의 프레스코화 등이 성당 내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시내의 여느 관광명소와 같이 실내 사진을 찍으려면 별도의 표를 끊어야 한다. 돔 전망대에 오르면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성당 앞뒤로 청동기마상이 있는데 네바강 쪽에 있는 것이 영웅으로 표현된 표트르 대제의 동상이다.천혜의 요새 페트로파블로프스크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도 필수 코스. 북쪽 라도가 호수에서 흘러내린 네바강이 바실리에프스키 섬에 부딪쳐 둘로 갈라지는 지점을 지키는 천혜의 요새다. 표트르 대제가 상트 페테르부르크 건설의 첫 삽을 뜬 곳이다. 이곳에서 제일 높은 121m의 첨탑과 로마노프 왕가의 무덤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원이 중심을 잡고 있다. 18세기 중엽부터 형무소를 겸했다고 한다. 네바강 쪽을 향해 나 있는 ‘네바의 문’이 잘 알려져 있다. 사형을 앞둔 사형수들에게 자신이 살던 도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게 했던 문이라고 한다. 푸리에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했던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언도받고 집행 5분 전 특사로 풀려나 시베리아로 유형됐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모습이 그려진다.알렉산더넵스키 수도원의 묘에 가면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민들이 갖고 있는 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자긍심의 근거를 살필 수 있다. 이곳 주민들은 모스크바를 향해 ‘늬들이 문화를 알아’라고 할 정도라고 한다. 산책로처럼 꾸며 놓은 묘지를 한 바퀴 돌면 그 주장이 합당하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글린카,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등 작품 하나쯤은 읽고 들었을 러시아의 문호와 음악가들의 묘가 있는 것. 모두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공기를 마시며 작품 활동을 했던 이들이다. 황실의 음악과 무용을 담당했던 마린스키 극장을 포함한 50여개 극장 무대에 매일 올려지는 클래식 공연도 그 분위기를 대변한다. 여름궁전은 가볍고 즐겁다. 시내에서 30㎞ 떨어진 핀란드만 해변가에 있는 여름궁전은 러시아 황제와 귀족들의 휴양지. 대궁전과 그 앞의 계단식 폭포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데 화려하기 그지없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사자(스웨덴)의 아가리를 찢는 삼손의 모습을 형상화한 대궁전 앞 삼손분수 지역이 그 중심이다. 60여개의 분수, 그 앞에 뻗은 수로와 숲 전경이 아주 아름답다. 곳곳에 배치된 분수도 산책길의 재미를 더한다. 여행수첩대한항공 10월 29일까지 매주 화·토요일 직항편 운항▶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650㎞ 지점, 발트해 동쪽 핀란드만 깊숙한 곳의 네바강 삼각주에 자리하고 있다. 인구는 500만명.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크다. 제정 러시아 때 200여년간 러시아의 수도였다. 페테르스부르크∼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로 시대에 따라 바뀌어 불리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련 연방이 해체된 1991년 상트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푸틴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국문화와 한국어 연구에도 뿌리 깊은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역시 ‘러시아의 머리’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 최초로 ‘조·러사전’(1951년)을 편찬한 이 대학의 ‘한국어 및 한국문화센터’에는 현재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아나스타샤 구르예바 등의 교수진이 활동하고 있다.▶한국처럼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기압은 조금 낮고, 일교차가 10도 이상으로 심한 편. 한국보다 5시간(3월 말∼10월 말)늦다. 루블화를 쓴다. 현지 환전은 증권거래소에서 하는 게 유리하다.▶배배꼬인 쇠꼬챙이에 먹기 좋게 썬 고기를 꿰어 불에 구워낸 ‘샤슬릭’, 얇은 피자 형태의 빵 ‘블린’, 스트로가노프란 귀족이 엉망으로 만들어 먹었다가 유행이 되어버린 ‘스트로가노프 비프’가 별미. 맥주는 발티카 3번, 7번이 우리 입맛에 맞는다는 평. 아리랑, 코리아나, 서울가든 등 한국음식점이 많다.▶그랜드유럽, 아스토리아호텔이 고급스럽다. 규모가 엄청 큰 프리발티스카야, 200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묵었던 넵스키팔레스호텔 등도 있다. ▶음주운전은 절대금지. 개별 여행자는 도착 3일 이내에 거주 등록해야 한다. 등록은 호텔에서 대행해준다. 아무 물이나 사 마시지 말고 낯선 사람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말 것. 십중팔구는 소매점에 되판다고 한다. 소매점에서는 루블화로 지불하고, 돈을 내기 전에 물건에 손을 대면 치기배로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입국시 신고하지 않고 많은 달러를 들고 가다 세관에 적발되면 몰수당할 수 있다. 입국카드와 여권, 비자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한다. ▶대한항공이 10월29일까지 직항편을 띄운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출발. 비행시간은 9시간25분.©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