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일푼 노씨의 재테크 비밀노트 엿보기

노용환씨(37·경기 일산)를 만난 곳은 경기도 일산의 한 대형 아울렛 커피숍이었다. 평일 오후였는데도 캐주얼한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일반 회사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혹시 휴가 중이냐”고 물었다. 노씨의 대답이 걸작. ‘백수’라서 1년 365일이 모두 휴가라고 되받는다. 그러나 백수는 절대 아니다. 현재 ‘재테크’를 위해 직장생활을 모두 정리한 것은 사실. 재테크 관련 서적을 세 권 출간했고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평소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재테크 환경을 분석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반 지하 800만원에서 지상 1억원짜리로노씨는 ‘은수저(silver spoon)’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상경한 케이스. 막상 기거할 곳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외국 의료기기 회사의 마케팅 담당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노씨는 회사에서 가까운 경기 성남시의 반 지하 주택을 전세 800만원에 얻었다. 지난 95년 초. 노씨가 28세 되던 해였다. 반 지하 주택에 살면서 ‘주거환경이 나은 곳으로 빨리 옮겼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여름엔 곰팡이 때문에, 겨울엔 보일러가 터져 골치가 아팠기 때문이다. 공대 출신이어서인지 재테크엔 관심조차 없었지만 일단 ‘공부’를 시작했다. 서점에서 재테크 서적을 사두는 것으로 재테크에 입문했다. 경제신문을 꼼꼼히 챙겨 읽는 버릇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외지생활 1년 만에 결혼하면서 전세 2800만원짜리 다가구주택으로 이사했다. 일단 반 지하 생활을 탈출한 게 첫 번째 성공인 셈. 결혼 직후부터 ‘집을 장만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노씨는 주변 아파트부터 물색하기 시작했다.우선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것이냐, 기존 아파트를 살 것이냐를 선택해야 했다. 하루 빨리 좀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옮기기 위해선 아파트 입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분양’은 마땅치 않았다. 기존 아파트를 사기로 결심했다.여러 곳을 다니며 발품을 팔아보니 용인 수지1지구의 1억원짜리 아파트와 분당의 1억3000만원짜리 아파트가 좋아보였다. 둘 다 25평형이었는데, 분당의 아파트가 좀 더 낡은 것이었다. 노씨는 당시 거주하고 있던 다가구주택의 전세금에다 대출 2000만원, 부모님이 주신 2000만원, 1년간 맞벌이로 모은 자금 등을 보태 용인의 아파트를 샀다. 분당 아파트를 구입하면 대출액이 커질 게 두려웠다. 이렇게 노씨는 첫 재테크로 내집 마련을 선택했다.샐러리맨 생활 접고 창업의 길로노씨는 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직장생활에 회의가 들었다. 사표를 냈다. ‘샐러리맨의 비애’를 느꼈다고나 할까. 막상 회사를 그만두니, 노씨에게는 세 갈래 길이 있었다. 첫째 이민을 가는 것이다.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한 데다 영어소통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내가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교사 일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었다.다음으로 좀 더 나은 조건의 직장으로 옮기는 방법이 있었다. 대형 외국계 회사에서 마케팅과 컨설팅 관련 일을 했으니 전직(轉職)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 자체가 이전과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마지막 선택은 창업. 고민을 거듭할수록 이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일단 퇴직금과 여윳돈 등을 합해 7000만원의 창업자금을 확보했다. 지역과 아이템을 택하는 문제가 남았다.우선 남성 헤어컷 전문점을 창업대상으로 고려했다. 성남시를 비롯 잠실 한양대 경희대 홍익대 등 각 대학 주변을 훑으면서 상권을 연구했다. 하지만 수익구조에 대한 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업종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홍대 앞의 10평짜리 가게를 임차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 100만원씩 내는 조건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날 새벽부터 개성 있고 소비성향이 강한 홍대 앞 상권지도를 그리며 정밀분석에 나섰다. 홍대 앞에서 가게를 낼 수 있는 업종은 제과점 또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란 결론을 내렸다. 제과점을 차리자니 예산이 1억3000만원가량 들어가 대출이 과다하게 발생하는 단점이 있었다.창업자금 총 1억원을 들여 생과일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차렸다. 무엇보다 브랜드 인지도가 없어도 맛이 있다면 충분히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창업 첫 해 은행 대출금 3000만원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본격적인 부동산 재테크 시작홍대 앞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던 중 99년 10월 서울 성산동 시영아파트(22평)로 이사했다. 전세 6000만원짜리였다. 수지1지구의 아파트는 당시 세입자에게 1억650만원에 넘겼다. 외환위기 여파로 아파트 값이 급락하던 때였음을 감안하면 손해 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가게가 잘 굴러갔고 아내의 수입도 있었기 때문에 여유가 생겼다. 2000년 말부터 다시 투자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투자금은 약 1억원. 노씨가 후보로 꼽은 것은 목동3단지 27평형과 일산 강촌마을 32평형. 시세가 1억5000만원으로 엇비슷했다. 노씨는 은행에서 5000만원을 대출받아 일산의 32평형 아파트를 선택했다. 아내의 직장, 가게와의 거리 등을 따져봤을 때 일산이 낫다고 판단했다. 일산 아파트 시세가 현재 3억5000만~4억원인 반면 목동 아파트는 5억원을 넘고 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역을 잘못 고른 셈이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고 있다. 무일푼으로 출발해 32세의 젊은 나이에 32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했으니 말이다. 2001년 11월 가게가 세 들어 있던 빌딩 주인이 임대료를 대폭 올려버렸다. 노씨는 장사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가게를 모두 정리하고 나니 무형의 이익이 7000만원 생긴 것을 알게 됐다. 처음 임차계약을 하면서 전 세입자에게 권리금 2000만원을 줬는데, 장사가 잘되면서 9000만원으로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대출금을 모두 갚고 나니 일산 아파트 한 채와 현금 1억원이 남았다. “1억원으로 뭘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선택은 두 가지였다. 아파트 값이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는 때였으니 전세를 끼고 아파트 한 채를 더 살 수 있었고, 아니면 월세가 나오는 상가에 투자할 수도 있었다. 노씨는 당시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고정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후자를 택했다.용인 수지2지구의 단지 내 상가가 매물로 나왔다. 시세는 대략 2억1500만원. 보증금 3000만원에 월 200만원의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를 담보로 9000만원의 대출을 받아 이 상가를 계약했다. 매달 임대료를 받으니 대출이자를 충당하고도 많이 남았다. 딱 1년6개월을 소유한 뒤 3억1000만원을 받고 이 상가를 되팔았다. 차익은 또다시 1억원이었다.대지 지분 넓은 주공 재건축만 노려일정 직업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재테크 공부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다는 뜻. 노씨는 재건축 아파트가 부동산 재테크의 ‘핵’이란 점을 간파했다. 특히 주공아파트 가운데 재건축이 예정된 곳만 골라 집중 연구했다. 주공아파트는 보통 입지가 좋은 핵심지역이나 택지개발지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대지 지분이 넓은 주공아파트를 고르기 위해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열람했다. 이렇게 모은 등기부등본만 수백 통에 달할 정도였다. 같은 평형의 아파트라도 대지 지분이 넓을수록 주거 쾌적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재건축이 진행되면 투자수익도 높다는 게 노씨의 지론이다.우선 2002년 10월 수원의 16평짜리 주공아파트를 전세 4500만원을 끼고 1억3500만원에 매입했다. 당시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이어서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다. 이 주공아파트는 16평짜리지만 대지 지분이 27.3평으로 넓은 편이었다. 재건축이 시작되기만 하면 가격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해 보였다. 예상대로 재건축 진행과 함께 현재 2억4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2003년엔 같은 방식으로 대지 지분이 넓은 경기 성남지역의 18평짜리 주공아파트를 1억1400만원에 샀다. 전세금 6900만원을 끼고, 대출 없이 4500만원의 현금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현재는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른 상태다.알짜 부동산 고르는 법노씨는 아파트를 고를 때는 특히 ‘땅’을 잘 봐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노후화된 아파트를 매입할 때 대지(땅) 지분이 넓은 곳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또 같은 지역 안에서도 단지별 차별화가 크기 때문에 반드시 선도 단지를 골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남도 같은 강남이 아니란 얘기다. 단지별 차별화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상가에 투자할 땐 특히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가는 ‘투명하지 않은’ 부동산 상품이기 때문이다. 상가에 투자하고 싶다면 쇼핑몰이나 근린상가보다 우선 단지 내 상가에 접근하는 게 쉽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 지역 가구의 소득 수준이나 규모, 상권의 독점성 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초보 투자자일수록 조금 비싸더라도 1층 목 좋은 곳을 선택해야 실패율을 줄일 수 있으며, 업종도 부동산중개업소나 슈퍼마켓 외에는 쳐다보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밝혔다. 투자 10계명① 절약하라. 노씨는 아내와 맞벌이하는 수입의 60~70%를 저축하고 있다.② 분석하라. 몇 가지 대안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라. 집중하면 답이 나온다.③ 주공아파트를 노려라. 주공아파트는 시세가 저렴하고 입지가 뛰어나다.④ 대지 지분이 넓은 재건축 아파트를 찾아라. 재건축 후 분양면적이 넓어 투자수익이 높다.⑤ ‘무조건 강남’을 지양하라. 자기 수준에 맞는 투자대상을 발굴하라.⑥ 내재가치에 주목하라. 아파트를 고를 때는 건물보다 땅이 더 중요하다.⑦ 지역 선도 아파트를 골라라. 단지별 차별화 현상이 더욱 심화한다.⑧ 상가에 투자할 땐 비싸더라도 1층의 목 좋은 곳을 골라라. 그래야 되팔기도 쉽다.⑨ 과다한 대출은 금물. 기댈 곳 없는 서민은 가격이 떨어지면 더욱 조급해진다.⑩ 아내를 재테크 동반자로 삼아라. 투자노트노씨의 특징은 ‘고민’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두 번 세 번 분석한다. 투자하기 앞서 제1안, 제2안, 제3안을 가상하고 장단점을 체크한다. 재테크의 실패율을 줄일 수 있는 좋은 습관이다. 노씨의 재테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우뚝 선 비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반 투자자들이 따라할 수 있는 좋은 역할모델(Role Model)이 될 만하다. 노씨는 무리하지 않았다. 대출이 과다하지 않으니 서둘러 ‘손절매’할 이유가 없었다.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70~80% 이상 서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았다. 이 같은 확신이 꼼꼼한 분석력에서 나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고 여기면 주저하지 않았다. 상가와 아파트 두 채를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사들이기도 했다. 이때도 철저한 수입ㆍ지출 분석을 통해 월 임대료로 대출이자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했다. 노씨의 재테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아내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의 맞벌이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했고 무엇보다 남편을 믿고 격려해줬던 게 성공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맞벌이하면 재테크 기회의 폭이 훨씬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