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과 같은 만성병을 ‘소리 없는 암살자’ 라고 한다. 병이 증상 없이 진행되는 기간이 길어 일단 증세가 나타났을 때는 회복이 어려울 뿐더러, 갑자기 죽음이 닥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심각한 만성병은 인구 고령화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돈 버는 사람은 줄어들고, 돈 쓰는 사람은 많아진다는 뜻인데, 이 만성병의 진행을 늦추는 방법은 결국 돈 벌어서 세금 낼 사람을 늘리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는 듯 하다. 고령화의 진전으로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의 지출을 충당하기 위한 세금과 각종 부담금은 연일 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경기침체에다 고령화의 인구폭탄이 터지는 와중에 세금폭탄까지 터지고 있는 격인 지금의 상황은 자칫 우리 공동체 유지를 위한 근간을 훼손할 수도 있어 우려된다.올 들어 20~30대 취업자 수는 전체적으로 3만명이 줄어들었다. 반면 보수가 적고 세금을 적게 내는 임시직이나 아르바이트가 중심인 50, 60대의 신규 취업자는 크게 늘어났다. 이는 청장년 인구비중 감소로 고용시장이 양적으로 위축되는 가운데, 그나마 생겨나는 일자리는 하향 취업하는 고령자가 차지하는 형태로 납세자 구성의 질적 저하 현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노동인력의 양적 감소는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25~39세 인구가 1980년대에는 30만명 증가했지만, 2010년대에는 180만 명이 감소하는 반면 60세 이상 인구는 400만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와중에 한국전쟁 직후인 1955~63년에 출생한 베이비 붐 세대 810만명이 이제 곧 퇴직을 시작할 것이다.반면 국민 세금 부담은 연일 기록을 경신 중이다. 지난해 국민 한 사람이 세금과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 기여금으로 납부한 ‘국민부담금’ 은 398만원이었고, 올해는 435만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래 납세자들의 부담인 국채발행 잔액은 지난 6월 말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어섰다. 2003년 3월 100조원을 돌파한 뒤 불과 2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 지금처럼 세금은 계속 늘어나고 공공부문의 비효율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정당하게 축적한 부에 대해서조차 ‘배 아파’ 하는 사회 일각의 분위기를, 돈 많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세금 뜯기는 것은 참아도 목소리 큰 사람들에게 뺨까지 맞는 것은 참기 어렵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는 동네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싱싱한 노르웨이산 연어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실감나지만, 그 본질은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비용 대비 효용이 가장 큰 곳에서 활동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뜻한다. 애국심에 대한 호소만으로 혜택 없는 정부에 세금 내면서 살아가라고 설득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능력 있는 사람은 자신이 내는 세금보다 사회적 혜택이 크다고 생각하는 국가를 선택해서 살아가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 시대의 정부란 납세자에게 세금납부에 상응하는 실질적 혜택을 주지 않고서는 양질의 납세자를 자국에 잡아두기 어려움을 의미한다.만성병에는 특효약이 없는 법이다. 꾸준한 관리와 치료만이 만성병을 치유하듯이 고령화 대책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을 계속 늘려나가고, 세금 내는 것보다 우리사회에서 살아가는 혜택이 크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신이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어도, 자식까지 그 짐을 지고 살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기에, 공공부문의 비효율이 계속된다면 인구가 감소하는 와중에 미래세대의 납세자는 더욱 빠른 속도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아우구스투스에 이어 로마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에게는 악화되는 국가재정이 고민거리였다. 어떤 사람이 황제에게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세율을 인상하자고 주장했을 때 “여러분은 양을 죽여서 고기를 먹으려 하지 말고, 털을 얻는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물리쳤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는 늙어가고 힘 빠져 털을 계속 뽑히는 것도 힘에 부치는 양에 비유된다. 털 뽑기가 아니라 아예 껍질을 벗기려 들 때, 과거의 양은 울타리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1세기 글로벌 시대에는 껍질이 벗겨지기 싫은 힘 있는 양이 울타리를 넘어서 도망칠 수도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