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양화가 이한우 화백의 미술 세계
원로서양화가 이한우 화백(76)이 유럽의 심장부인 프랑스 파리에서 큰 일을 냈다. 최근 파리의 룩상부르크궁 내 오랑주리미술관에서 열린 ‘아름다운 우리강산’ 초대전이 대성황을 이루면서 현지 언론과 평론가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 3주간(7월13일~8월1일) 열린 전시회에 연인원 2만여명이 관람했다고. 이처럼 전시회가 성공리에 마무리되자 프랑스 상원이 이 화백에게 문화공로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이번 전시회가 열렸던 룩상부르크궁은 나폴레옹이 기거했던 유서 깊은 건물로 현재는 프랑스 상원이 사용하고 있다. 이 화백은 “프랑스 상원이 문화공로훈장을 수여하겠다고 전해 왔다”며 “개인은 물론 한국의 예술성을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게 역시 세계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걸 이번 전시회에서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 화백은 80년대 이후 시종일관 우리나라의 수려한 강산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의 전매특허는 ‘아름다운 우리강산’ . 왜 그는 한반도 강산에 매달리고 있을까. 이 화백은 “조상들이 살았던 이 땅을 아름답게 표현해서 후손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는 서양화가지만 동양화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라는 그의 소신 때문이다. 그는 나무 산 등 모든 사물을 평면으로 그린다. 그렇지만 보는 사람은 입체적으로 느낀다. 한국화의 전통을 살렸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 인(人)자의 획을 기본으로 삼아 산과 집 등을 그려낸다. 그가 즐겨 쓰는 컬러도 이젠 ‘이한우’를 상징할 정도로 미술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 화백은 복숭아꽃의 홍조 띤 연분홍 색깔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 주황색 계통을 즐겨 사용한다. 오랜 경험이 팔레트에서 그만의 보색을 만들어 낸 결과다. 그런 점이 그의 그림을 빛나게 만든다. 이런 질감에 대해 프랑스 언론은 “한반도에 주단을 깔고 나무를 심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프랑스 미술평론가 파트리스 들리 페리에르는 “이 화백의 ‘아름다운 우리강산’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한국적 뿌리 등을 놀라운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캔버스에 표현했다”고 극찬했다.이 화백이 한국적 정서에 눈을 뜬 건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분이 있던 프랑스의 한 화가가 던진 말 한마디가 인생 항로를 바꿔놓았다. “당신이 그리는 것은 서양 그림이다. 토착미가 없다. 동양 그림, 특히 한국 그림을 그려야 세계인이 알아준다. 그림은 정신철학이 녹아 있어야 빛이 난다.” 그는 그때부터 ‘한국적인 미’를 찾아 나선다. 그래서 완성한 게 오늘날 평단에서 ‘신표현주의적 구상회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화백의 작품 세계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한국의 산수는 밝고 온화하다. 주황색 계열로 대변되는 색채감과 사람 인(人)자를 겹쳐서 표현하는 사물의 질감도 그만의 독보적인 화풍(畵風)으로 자리잡았다. “그림이 인간의 마음을 붓으로 빚는다는 걸 깨닫는데 거의 80평생이 걸렸다”는 이 화백은 요즘 한국 화단의 세계화와 국제화, 자본시장화를 어떻게 이뤄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다. 화단 원로다운 모습이다. 그는 서양미술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흐름을 타고 있다고 강조한다. 작품마다 국경을 초월해 서로 닮은 꼴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세계화의 산물로 빚어진 이런 경향이 한국 화가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한마디로 고유문화의 영역이 축소되면서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역으로 민족 고유의 정신이 깃들여 있는 작품이 빛을 보게 됐다는 것. 이 화백은 “예술은 민족의 철학 속에서 나온다”며 “영화계의 임권택 감독이 빛을 보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한다.한국 미술시장에 대해서도 노 화가는 할말이 많다. “이중섭과 박수근 작품 만이 이른바 ‘유가증권’이고 다른 작가는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게 시장입니까. 인기 작가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이들 작품을 독점하면서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건 온당치 않습니다. 이런 게 개선돼야 유망 작가가 늘어나고 한국의 문화산업 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갑니다.” 이 화백은 “한국시장이 알아주지 않으니 외국으로 나가고, 그래서 뒤늦게 외국에서 인정받고 금의환향하는 작가가 한둘이 아니다”며 “좋은 시장이 좋은 작가를 만든다”라고 말한다. 시장 왜곡만 없다면 유가증권처럼 매매될 좋은 작품과 작가가 수두룩하다는 게 이 화백의 논리다.이 화백은 “고통과 고독은 작가가 평생 안고 살아야 할 필수사항”이라며 “독창성을 찾는 작업은 지금도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달 서울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파리 전시회의 감흥을 고국의 미술 애호가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란다. 국화향기 가득한 가을에 만나보는 노 화가의 ‘아름다운 우리강산’은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줄 터인데. 벌써부터 그의 전시회가 기다려진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