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변기 뚜껑은 닫아 놓는 것이 좋을까, 열어 놓는 것이 좋을까?” “출입구를 기준으로 침대를 어느 쪽에 배치하는 게 좋을까?”(그림1)“좋은 거실 배치는 어떤 것일까?”“사무실 책상 배치는 벽을 등지게 하는 것이 좋을까, 창문을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그림2)위 질문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테리어 풍수서적들에서 흔히 언급되는 내용이다.1990년대 이후 미국과 서유럽에 불기 시작한 풍수바람은 최근 구 사회주의 국가에까지 확대돼 모스크바 서점에서 아예 풍수서적들을 비치한 코너가 생길 정도다. 문자 그대로 풍수 바람, 즉 ‘풍류(風流)’다. 시인의 직관은 이를 간과하지 않은 듯, 2005년 9월2일~5일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린 ‘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 김지하 선생은 ‘한류’와 함께 ‘풍수’를 ‘특별주제’로 다뤘다. 이 자리에 발표자로 나선 암도 스님(전 백양사 주지)은 조계종에서 부처의 10대 제자 가운데 설법 제일로 기록된 부루나에 비견되는 분이다. 암도 스님은 “사람이 성웅이나 걸물이 되려면 탯자리 땅이 좋아야 되고 그런 곳에서 살아야 생체리듬이 좋고 지성리듬이 좋은 것”이라면서 풍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한국에서 앞으로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려면 부부가 합궁하는 잠자리부터 좋은 땅을 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부가 아이를 만드는 장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풍수와 전혀 무관한 시민운동가이자 생명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인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연합 사무총장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잉태 순간이 일생을 좌우한다”(2004년 세계생명문화 포럼). 일반적으로 좋은 환경, 좋은 장소에서 아이를 만들어야 훌륭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풍수 뿐만 아니라 전통의학이나 현대 의학계에서도 동의하는 부분이다.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의 자리도 중요하지만 어린시절을 보낸 생가를 풍수에서는 조상의 묏자리보다 더 중요시한다. 산과 물, 바위, 흙, 새소리, 바람소리 등에 대한 어린시절의 원초적 체험은 아이에게 무한한 창조적 상상력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현재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출산을 장려하지만,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훌륭한 아이를 낳게 하는 국가적 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무한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를 일류국가로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관광지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보다 좋은 산천정기가 모인 곳에 가서 첫날밤을 보낼 수 있는 ‘신혼여행 명당’을 전국에 많이 만들어야 한다. 또 전국의 어린이들이 산수가 수려한 주거 공간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도록 해 주어야 한다. 땅덩이는 작고 자원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훌륭한 인재가 희망이다. 인걸은 지령이라고 했다. 조선조 지관 설발 고시과목인 ‘지리신법’에서는 “사람은 땅의 기운에 따라 인간의 청탁(淸濁), 현우(賢愚), 선악(善惡), 귀천(貴賤), 빈부(貧富), 요수(夭壽)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풍수는 운명을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풍수지리서 ‘금낭경’은 이를 “신이 하는 일을 빼앗아, 하늘로부터 주어진 운명을 바꾼다(奪神工改天命)”고 했다.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데도 단명하는 집안이 있고, 건강관리를 잘 하는 데도 유전적 질병에 고생하는 집안이 있는가 하면, 까닭 없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집안도 있다. 현대 의학으로도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경우 옛사람들은 풍수지리적 지혜를 활용, 집안의 운명을 바꾸려 했다. 어떻게 했는가. 터에 문제가 있다고 믿어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면 달라지는가.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고,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서 나온 곡식을 먹고 살았다. 이때 물과 곡식은 그 땅의 특성에 따라 맛과 질이 달라지는데 이를 몇 세대에 걸쳐 오래 마시고 먹으면 특정한 체질이 형성된다. 좋은 땅에서 살면 좋은 체질로 바뀌지만 나쁜 땅에서는 나쁜 체질로 점차 바뀌게 된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은 이러한 까닭에 생겨난 말이다.이사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 마시는 물이 달라지고, 먹는 곡식이 달라지며, 접하는 문화환경이 달라진다. 다른 환경 속에서 그 집안의 체질 역시 점차 바뀌게 된다. 문제는 산 사람만 이사하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도 이사를 시킨다는 점이다. 바로 이장(移葬)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 사람만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도 사람으로 보아 죽은 사람에게 거주할 집, 즉 음택(陰宅)을 만들어 주었다. 죽은 자의 집인 묘지가 안 좋으면 산 사람의 집터와 마찬가지로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묘지 풍수를 활용해 운명을 바꾸어 보려는 시도는 유명 인물들 가운데 많이 볼 수 있다.정조대왕이 그랬고, 흥선대원군이 그랬고, 명성황후가 그랬다. 최근 10여년 동안 주요 정치인들이 선영을 이장했는데, 일부 언론에서는 이장 이유가 풍수설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를 하기도 했다. 사실이야 어쨌든 이사를 하거나 이장을 하면 분위기 쇄신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풍수지리는 땅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지리(地利)’다.풍수가 단지 좋은 땅에서 아이를 잉태시키고 자라게 해 품성이 좋은 훌륭한 아이를 만들거나 개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풍수의 핵심은 땅의 성격을 파악해 그에 맞는 용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여의도를 예로 들어보자. 여의도는 바람이 세다. 바람 따라 흘러가는 소문이 풍문(風聞)이다. 또 여의도는 모래땅(沙土)이다. 분산되고 흩어지는 지기(地氣)가 특성이다. 여의도는 또 물을 끼고 있다. 물가에는 주로 놀러가는 곳이다. 이런 특성의 땅은 방송, 금융, 연예인들에게 어울리는 땅이다. 다양한 민원들을 취합해 하나의 정책을 입안하는 국회의 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땅이다.사진 3과 같은 땅은 바위산이 가파르게 솟아 있고 골이 많다. 비가 오면 그대로 방류하고 가뭄이 들면 물 한 방울 내보내지 않는 땅으로서 농사짓기에 부적절한 땅이다. 이런 곳에서 3년만 농사를 지어도 쪽박 차고 나오는 땅이다. 농사에는 못 쓸 땅이다. 풍수에서는 이것을 치마를 걸어 놓은 형상(懸裙砂)라고 하여 혼란스러운 지기(地氣)의 땅이라고 본다. 이런 곳은 사진 4처럼 ‘러브호텔’이나 유원지로 활용하면 그것이 바로 명당이 된다.이처럼 땅의 기운과 규모에 따라 사찰이나 교회 건물이 들어서야 할 땅이 있고, 유원지가 들어서야 할 땅이 있고, 도시가 들어설 자리가 있다. 땅마다 쓰임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앞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 뿐만 아니라 혁신도시가 지방 곳곳에 건설될 예정이다. 이때 풍수적 지혜를 활용하면 다음과 같은 이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첫째, 선정된 입지에 대한 해당 지역 주민들의 합의 도출이 쉬워진다. 둘째, 도시건설에 소요되는 공사비가 적게 든다. 셋째, 공사 과정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끝으로 그곳에 근무하거나 거주하게 될 사람들의 품성이 좋아지고 능력 향상에 영향을 준다.이렇듯, 풍수는 ‘땅을 보고(相地)’, 그 ‘땅의 성격(地氣)’을 파악하여 그에 걸맞은 용도를 결정하는 ‘전통적인 땅에 대한 경제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