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르면 백전백패…원금 보장형 펀드 인기 끌어
사원 K씨(33)는 요즘 세상 살 맛이 난다. 틈틈이 모아 둔 쌈짓돈 일부를 투자한 상품에서 대박이 터졌기 때문이다. K씨가 투자한 종목은 21세기 엔터테인먼트의 총아인 영화. 이동통신 업체 KTF와 영화 투자, 배급사인 쇼박스㈜미디어플렉스(이하 ‘쇼박스’)가 올 초 시행한 ‘웰컴 투 동막골’(이하 동막골)과 ‘야수와 미녀’ 개인투자자 모집에 참여한 것이다. 100만원 계좌 3개를 현금으로 직접 투자한 그는 700만명 이상 관객 동원이 확실시되는 ‘동막골’의 흥행 대박으로 최소 150여만원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수익률 50%다. K씨처럼 개인투자자 모집을 통한 영화 펀드에 투자하는 개미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KTF와 쇼박스는 올해 초 제휴를 통해 KTF 고객을 대상으로 한국영화에 투자하는 ‘굿타임 시네마 파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굿타임 시네마 파티는 익명 조합 설립을 통해 KTF 고객이 쇼박스가 투자, 배급하는 ‘동막골’과 ‘야수와 미녀’ 두 편에 각각 6 대 4의 비율로 직접 출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인 최고 한도액인 1000만원을 투자한 투자자는 ‘동막골’에 600만원을 투자하는 셈이 돼 이 영화가 80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할 경우 10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영화 펀드의 역사는 유서가 깊다. 익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네티즌 펀드’라는 것이 90년대 말부터 시작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1999년 인터넷 영화 콘텐츠 그룹 ‘인츠필름’이 ‘반칙왕’에서 처음 시도한 네티즌 펀드는 97%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하며 네티즌 펀드 열풍을 일으켰다. 그 후 ‘공동경비구역 JSA’(수익률 150%), ‘친구’(수익률 293.63%) 등 투자 기획한 영화마다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우며 네티즌 펀드는 황금알을 낳는 투자 상품으로 상한가 행진을 벌였다. 초기 네티즌 펀드가 성공한 이유는 ‘될만한 영화에 투자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이 높고 안전한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영화들이 주로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네티즌 펀드는 애초 투자금 모집보다 영화에 대한 사전 마케팅의 일환으로 시작된 기획이었다. 초창기 모집하는 족족 수익을 냈던 네티즌 펀드가 실패 사례를 남기기 시작했을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상세한 검토 없이 무분별하게 펀드 모집을 확장해 나간 것이 원인이었다. ‘천사몽’ ‘킬리만자로’ ‘눈물’ 등 흥행 실패작에 투자한 투자자는 낭패를 봤다. ‘눈물’은 40%의 투자금 손실을 기록했고 흥행 쪽박을 찬 ‘킬리만자로’ ‘천사몽’은 투자자들에게도 ‘쪽박’을 안겼다. 2004년에 네티즌 펀드는 또 다른 암초를 맞는다. MK픽쳐스가 기획한 ‘안녕, 형아’ 제작비 전액 인터넷 공모 프로젝트가 금융감독원의 ‘불법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투자자들을 무작위로 모집하는 방식에 대해 금감원은 ‘자산운용법으로 허가받지 않은 업체는 유가증권 및 부동산, 금 등의 투자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인터넷을 통한 펀드 모집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그 후 ‘인터넷 펀드’를 대신하는 대안으로 나온 것이 ‘익명 조합’을 통한 투자다. ‘익명 조합’이란 영업 자금을 출자하는 투자자들이 ‘익명 조합원’이 되고 사업을 수행하는 회사(영화 투자, 배급, 제작사)가 ‘영업자’가 돼 조합을 결성한 후 출자된 자금을 영화 제작에 사용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각자 나눠가지는 공동 기업 경영 형태를 말한다. ‘안녕, 형아’는 결국 인터넷 펀드에서 익명 조합으로 전환해 투자금을 모집했고 ‘동막골’은 익명 조합 투자 방식의 두 번째 사례였다. ‘동막골’의 흥행 성공은 다시 한 번 영화 펀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동막골’ 익명 조합 사업을 기획한 KTF 마케팅팀 김은상 과장은 “영화 펀드에 대한 문의 전화를 하루에도 몇 통씩 받는다”고 말한다. “KTF가 선점한 사업에 다른 이동통신사가 개입할 여지는 좁을 것”이라는 게 김 과장의 전망이지만 또 다른 제3의 사업자가 나타날 지는 모르는 일이다. KTF는 올해 말 ‘동막골’과 함께 투자자 모집을 한 ‘미녀와 야수’의 결과가 나온 후 또 다른 영화 펀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동막골’과 같은 행운이 매번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영화는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하이리스크 산업이다. 멀쩡하게 투자 받아서 만들어지던 영화가 중간에 ‘엎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 충무로다. 애초 책정한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도 하고 배급 시기를 잘 못 만나 괜찮은 영화가 사장되는 경우도 흔하다. 영화계에서 수 십년 간 잔뼈가 굵은 제작자들도 “영화 흥행은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영화 제작 환경과 시장의 불투명성이 오죽했으면 최근에는 ‘완성보증보험(영화 제작에 차질이 생겼을 때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보전하기 위해 가입하는 보험) ’이라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어느 투자에나 다소의 모험을 수반하겠지만 영화만큼 리스크가 큰 산업에는 쉽게 투자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90년대 한국영화의 물주였던 삼성, 대우 등의 대기업 자본, 90년대 말부터 유입된 금융 자본 등이 영화 투자의 예측 불가능성과 불투명성을 버티지 못하고 발을 뺀 선례를 봐도 리스크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초창기 네티즌 펀드의 깜짝 성공이 지속적인 안정 투자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위험도가 높은 산업이라면 그만큼 신중하고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영화 펀드에는 특별한 왕도가 없다. 영화에 투자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방법뿐이기 때문이다.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으면 그만큼 실패를 예방할 수 있으나 영화 투자의 또 다른 딜레마는 투자자가 준비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다는 데 있다. 기껏해야 촬영 전 제공되는 시나리오나 시놉시스, 감독과 주연배우, 제작사의 브랜드 등을 투자의 준거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나마 시나리오를 공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요즘에는 영화 기자들에게도 시나리오를 공개하지 않는 게 충무로의 관례다) 한 마디로 정보는 없고 제작사 브랜드나 감독, 배우의 이름값만 믿고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제작의 얼개만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건 그 자체로 모험이다. 몇몇 달콤한 성공 사례들에 현혹돼 경솔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는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투자금을 잃지 않으려면 영화를 잘 알아야 한다. 영화를 모른다면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투자 모집 주체가 투자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판단을 위한 준거들을 잘 마련했는 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시나리오가 말이 되는가, 감독과 주연배우, 제작사가 믿을 만한가, 영화가 개봉됐을 때 함께 경쟁하게 될 영화는 무엇인가, 배급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투자자 보호 시스템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등등을 살펴야 한다. 정보가 충분치 않다면 투자사나 제작사에 요구해서라도 확실히 해 두는 게 좋다. 영화 투자는 ‘돈을 벌기 위한 투자’에 신경을 쓰기보다 ‘망하지 않는 투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망하지 않으면 돈을 벌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 장치는 특히 중요하다. ☞ : 영화투자성공, 실패사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