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푸단대 90학번…10년만에 재산 1조원 중국갑부 1위
해 나이 서른셋의 온라인게임회사 샨다의 최고경영자(CEO). 2005년 중국 갑부 서열 1위. 한국의 게임회사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한 중국 재계 거물.중국 최고 갑부 천톈차오(陳天橋)에겐 이처럼 여러 개의 수식어가 붙는다. 실제로 그럴 만하다. 그는 누가 뭐래도 당대 중국 최고의 갑부다. 중국 경제잡지 ‘신차이푸(新財富)’는 지난 4월 올해 천톈차오의 재산을 150억위안(1조9000억원)으로 추정, ‘2005년 중국 500대 갑부’ 순위 1위에 올렸다.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는 대학생이었다. 그는 명문인 상하이 푸단대학 경제학과 90학번이다. 대학에서 학생회장까지 지냈으니 평범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10년 만에 이룬 부(富)여서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다.호사가들은 천톈차오가 부를 이룬 원천이 한국의 게임사업이라고 해석한다. 왜 그럴까.천톈차오는 26세였던 1999년 부인이 주식 투자를 해서 번 돈을 밑천으로 온라인게임회사 샨다(盛大)를 설립한다. 동생 천다녠과 부인을 포함해 동업자는 네 명이었다. 사업 아이템은 가상 커뮤니티를 주제로 한 온라인게임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는 고속인터넷이 깔려있지 않았던 데다 ‘닷컴’에 대한 인식이 척박했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사업 아이템에 대해 확신이 섰다. 그의 예상대로 가상 커뮤니티 게임은 몇 달 만에 100만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대성공이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의 유명 포털업체 중화망(china.com)으로부터 3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상하이 푸둥에 있던 거실 하나에 방 세 개짜리 사무실 겸 집을 최상급의 쯔진산(紫金山)호텔이 입주해 있는 고층 빌딩으로 옮겼다. 20대 초반의 천톈차오는 “좋은 사업 아이템만 있으면 13억 중국 소비자들을 얼마든지 감동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자신감이 너무 컸던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가 찾아왔다. 중화망이 투자를 회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온 것이다. 이 때가 바로 천톈차오가 한국의 위메이드사가 개발하고 액토즈소프트가 해외 판권을 갖고 있는 ‘미르의 전설’을 처음 접한 때다. 액토즈소프트는 당시 중국 배급사를 찾고 있었는데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에다 간편한 매뉴얼을 갖춘 이 게임은 천톈차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돈 냄새를 맡았다. ‘미르의 전설’을 들고 중화망 관계자를 찾아가 “연말 쯤이면 돈을, 그것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면서 투자를 철회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온라인 게임의 성장성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마이동풍이었다. 중화망과 결별한 후 천톈차오에게 남은 돈은 30만달러였다. 그는 이 돈을 몽땅 ‘미르의 전설’ 배급사 자격을 얻는 데 쏟아 부었다. 온라인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해 끊김없이 수십만 명의 동시접속할 수 있는 고속 인터넷 서버가 당장 필요했지만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가진 것은 배급권 뿐이었다. 그는 훗날 중국 관영 CCTV의 ‘대화’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저승사자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50명이던 직원 수가 20명으로 줄었고 남은 사람들에겐 평소의 80% 밖에 월급을 주지 못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그는 ‘승부수’를 던진다. ‘봉이 김선달식’ 의 무모함으로 밀어붙였다. 천톈차오는 액토즈소프트와 맺은 배급권 계약서를 들고 중국 정보기술(IT) 회사인 랑차오와 미국계 델을 찾아가 서버를 두 달만 시험 테스트해 보겠다고 했다. 랑차오와 델은 그렇게 해줬는데 이유는 그가 갖고 있던 계약서가 국제 규격에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은 잠재력은 컸지만 모든 거래 관행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래서 국제규격에 맞는 계약서 하나가 이처럼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서버 문제가 해결되자 이번에는 이 서버 임대 계약서를 들고 중국 국영 통신회사인 차이나텔레콤을 찾아갔다. 또 무료로 두 달 간 인터넷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다. 중국에선 온라인 게임 회비를 공중전화 카드처럼 게임카드를 팔아 거두는데 이 카드 문제도 돈 한 푼 없이 해결하는 수완을 보였다. 당시 중국에서 가장 큰 온라인 게임 카드 판매 회사였던 상하이 위비(育碧)를 찾아가 수익을 67 대 33으로 나누자고 제안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미르의 전설’은 2001년 9월28일 중국에서 시험 테스트를 시작한다. 두 달 후 랑차오, 델, 차이나텔레콤에게 약속한 대로 서버 및 인터넷 이용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게임을 유료화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동시접속자수가 순식간에 40만명을 돌파하면서 전국의 온라인 게임 카드가 동이 났고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미르의 전설’은 중국에서 한때 동시접속자수가 20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는 온라인 게임 사상 신기록이다. 하지만 천톈차오의 사업이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특히 맹목적 사업 확장과 무리하게 던지는 승부수는 중간중간 화를 불렀다. 액토즈소프트와는 손을 잡은 이듬해부터 삐꺽거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샨다가 배급사 신세에서 벗어나 진정한 온라인게임 회사가 되겠다며 개발한 ‘전기 세계’라는 게임의 표절 시비다. ‘미르의 전설’ 개발사인 위메이드는 샨다의 ‘전기 세계’가 ‘미르의 전설’을 그대로 베꼈다며 국제 기구에 샨다를 지식재산권 침해로 고소했고, 이 분쟁은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천톈차오는 한 인터뷰에서 “2001년에 샨다는 매일매일 죽을 고비를 넘겼고, 2002년엔 매달 넘겼고, 2003년엔 분기마다 넘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2002년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털어놨다. 그는 "지금도 심장이 가끔 좋지 않은데, 그때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당시엔 숙면을 취하지 못한 데다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고 했다.샨다가 이런 위기들을 넘기면서 비약적으로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해외투자를 꾸준히 유치한 덕분이다. 2002년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4000만달러를 유치한 데 이어 2004년 5월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 자본의 국제화를 이뤘다. 11달러에 시작한 샨다 주가는 이후 세배나 뛰어 올랐다. 지난 9월8일 종가는 30.86달러. 미국에서 1억5000만달러어치 채권도 발행했다. 나스닥 상장은 천톈차오와 샨다에 비약적인 도약의 기회를 마련해 줬다. 샨다는 8일 현재 시가총액 21억달러로 한국 엔씨소프트(1조4560억원)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온라인게임 회사가 됐고 천톈차오는 중국 최고 갑부가 됐다. 앞으로 발전 속도는 더 빠를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의 온라인게임 시장은 4년 만에 8배 성장이라는 폭발적 위력을 자랑하며 지난해 2억9790만달러(약 3000억원) 규모로 커졌고 지금도 이 같은 고성장세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 중국기업이라고 해서 누구나 샨다처럼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톈차오는 돈 버는 기회를 잘 찾고 행동이 빠른, 타고난 사업가다. 그 자신은 “집중과 속도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의 성공 비결 첫 번째는 “방향을 잡았으면 ‘올인’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속도다. 속도는 기회가 왔을 때 미루지 않는 것이다. 그는 각종 인터뷰에서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인 것 같다. 세상에 일을 그르치는 것은 없다. 시간을 그르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드는 것은 나스닥 상장이다. 샨다가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을 때 미국 증시에는 중국 주식에 대한 한파가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중국생명이 상장 직후 회계 부정으로 적발돼 중국 기업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고민 끝에 공모가를 13달러에서 11달러로 낮추고 규모를 50% 줄여 상장을 강행했다. 샨다가 상장을 밀어붙인 것은 인수합병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규모가 축소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채권을 발행했는데 천톈차오는 이 때도 골드만삭스를 찾아가 1주일 안에 채권을 모두 인수해 줄 것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이때 그가 쓴 무기는 “이번에 안 해주면 다음번엔 골드만삭스와 거래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이었다. 천톈차오는 이렇게 해서 마련한 돈으로 중국 최대 포털인 시나닷컴과 한국의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했다. 나스닥 상장기업인 시나닷컴(sina.com)은 이 회사 지분 19.5%를 공개매집 하는 방식으로 전격 인수했다. 당시 언론들은 ‘중국 최초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고 보도했다. 액토즈소프트의 경우에는 배꼽이 배를 먹은 격이어서 한국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샨다는 액토즈소프트 대주주 지분 28.96%를 9170만달러에 사들였다. 천톈차오와 샨다는 이같이 공격적인 M&A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회사 주가는 다시 한번 치솟았다. 샨다가 올 들어 지분을 사들인 회사들로는 중국 문학포털인 기점중문망(起點中文網)과 음악포털 글로벌음악(環球音樂)등이 있다. 이 같은 ‘집중과 속도’의 경영은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다 뜻대로 될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의 소유자다. 여건이 좋지 않은 데도 나스닥 상장을 밀어붙인 데 대해 “샨다는 상장 후 분기마다 20%씩 성장할 것”이라고 계산하면서 “결국은 투자자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회고한다. 천톈차오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젊어서 그런 지, 아니면 벤처기업 사장이어서 그런 지는 몰라도 전혀 억만장자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상하이 샨다 본사를 방문했던 한 업계 관계자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봤는데 입고 있는 옷도 허름하고 해서 평사원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일단 말을 해보면 그의 언변과 자신감에 모두 설복당하고 만다고 한다. 천톈차오는 지금도 ‘황당무계한’ 계획들을 내놓고 있다. 온라인 콘텐츠 공급회사들을 사들인 후 매달리고 있는 사업은 양방향 엔터테인먼트를 실현해 줄 셋톱박스인 ‘샨다박스’ 개발이다. 샨다는 온라인게임, 도서판매, 음악 및 영화감상, 주식투자 등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TV와 고속인터넷망을 이용해 중국 각 가정에 공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샨다에는 제조 노하우나 유통망이 전혀 없다. 이에 대해 천톈차오는 “나는 요리사지 농부가 아니다”면서 제조는 대만 파트너 회사에 맡기고 유통은 중국 PC회사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샨다박스의 핵심이 될 반도체 사업은 미국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과 기술개발 파트너십을 맺어 추진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차지하기 위해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샨다의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현재 TV를 갖고 있는 중국 가정이 3억7000만, 고속인터넷을 쓰는 가구는 2000만이다. 이 괴리를 채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천톈차오는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차피 사업 환경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의 고속인터넷 보급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기대할 뿐이다. “샨다는 앞으로 5년 안에 매년 100%씩 성장해 회사 규모가 몇 배로 커질 것이다. 인터넷 세계의 월트디즈니가 못 되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