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6일 열린 산업혁신포럼에서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산업화 시대에는 큰 것이 좋은 것이었지만 앞으로 펼쳐질 복잡성의 시대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작은 규모에 강한 경제구조를 갖춘 나라가 유리하다”며 “한국경제의 잠재력은 규모(size)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비단 국가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초복잡성'(Super complexity) 현상이 두드러질 앞으로의 기업 환경에서 규모는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인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얼마나 우수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가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보면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제조공정 중 세정장비(Wet Cleaner)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세계 1위를 기록 중인 DMS야말로 토플러가 말한 ‘소규모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DMS가 ‘작은 거인’이 된 것은 선장인 박용석 대표의 치밀한 경영수완 때문이다. 그는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도전해 왔다. 그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보면 흡사 경영학 교과서를 복습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박 대표는 DMS 주식 451만주(지분율 22.71%)를 보유하고 있다. 일약 ‘거부’ 반열에 오른 그의 성공스토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표는 여러 개의 별명을 갖고 있다. 용팔이, 용달이 등 이름과 관련된 것도 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박순신’이다. 이는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순신 신드롬’ 때문이 아니다. 박순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LG전자에 근무할 때부터다. 그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고 해 늘 주변인(아웃사이더)의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던 그에게는 따르는 후배들이 넘쳐났다.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소신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이순신 장군과 같았기에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박순신’이라는 다소 버거운 별명이 붙었다.박 대표는 LG전자와 LG필립스LCD에 근무하면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을 손수 개척해 온 액정표시장치(LCD) 1세대다. 그는 TFT-LCD 등 평판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만 20년 간 일했다.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들이 그렇듯이 그는 연구실보다 언론에 나서는 걸 어려워한다. 기자와의 첫 만남에서도 그랬다. 왜 그렇게 언론에 나서길 꺼리느냐는 질문에 그는 서슴없이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서”라며 웃는다. 세계 1위의 세정장비 생산능력을 갖춘 벤처 거부의 입에서 나온 얘기치고는 너무 겸손이 지나쳐 보일 정도였다. DMS의 슬로건은 ‘꿈을 향한 무한도전의 즐거움’이다. 일벌레들에게나 어울릴 듯한 다소 상투적인 슬로건이다. 그러나 이 회사의 성공은 ‘무한도전의 즐거움’에서 비롯됐다.박 대표는 요즘도 주중에는 수원공장 옆 오피스텔에 묵는다. 그가 회사 일을 마치는 시간은 대개 새벽 2~3시. 회사에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택까지 출퇴근하는 시간이 아까워서라고 말한다. 누가 뭐래도 ‘지독한 일벌레’다. 그는 늘 아이디어를 달고 다닌다. 독창성과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사무실에 들어와 직접 설계하고 지시한다. 현재 DMS가 출원하거나 특허를 획득한 것 만해도 150여건이며, 이중 절반이 박 대표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DMS의 제품 다양화 노력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주력상품의 해외시장 진출에 만족하지 않고, 신제품 개발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노력이 좋은 결과로 연결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가 LG전자를 떠나 DMS를 설립한 것은 지난 99년. 그리고 그는 이듬해인 2000년에 기존 TFT-LCD 공정용 세정장비의 3분의 1 크기인 고집적 세정장비(HDC)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2001년에는 셀(Cell) 공정 주요 장비인 자외선 경화기(UV큐어)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 고집적 박리장비(HDS)와 현상장비(Developer) 등도 잇따라 내놨다. 그의 성공신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DMS의 신화는 전공정 핵심장비로 분류되는 감광액 도포장비(PR coater)의 독자개발로 이어졌다.이러한 성공신화에 대해 그는 “LG와 삼성 등 대기업들이 가능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는 LCD산업의 초창기 멤버 중 한 사람입니다. LCD 분야의 전체 공정을 한번씩 다 거치다보니 자연스럽게 노하우가 쌓였지요.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보다는 현장에서 밤을 지새운 엔지니어들의 피와 땀이 DMS를 만들었습니다.”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의 삶은 지독한 고난의 연속이었다.“LG에서 나오게 된 이유도 일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아예 6개월 동안은 주말에도 집에 가지 않고 공장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만두고 회사를 차렸는데, 내 사업이라고 생각하니 더 몰두하게 되더군요. 아예 몇 년 동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내달렸습니다.” DMS는 다른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 벤처회사답게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경영철학이다.“수원 본사 사무실도 겨우 한층만 분양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사 사옥은 꿈도 꾸지 않습니다. 건물 밖에 간판 하나 있으면 되잖아요. 많은 벤처 업체들이 조금 돈을 벌면 사무실을 늘리고 부동산을 사들였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사옥부터 투자해서 망한 벤처 업체가 어디 한둘입니까?”그래서 박 대표는 기술력에 집적 투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DMS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체 직원은 240여명으로 이중 중국이나 대만 현지에 나가 있는 인력 80~100명을 제외하면 국내 인원이라야 고작 140~16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박 대표를 비롯해 10년 이상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전문 인력들은 이 회사 최고 자산. 현재 직원 200명 중 석·박사급 30여명을 포함한 80여명이 연구개발에 매달리고 있으며 매년 매출액의 5%는 전액 연구개발비로 투자되고 있다.원래 박 대표의 꿈은 농부였다. 20년 동안 일벌레로 살아오다가 회사를 그만둔 뒤 그는 실제로 농사를 지을 생각을 했었다. “농사라는 게 회사 경영과 비슷한 점이 참 많습니다. 기술을 개발하는 건 종자를 개량하는 것과 같고요. 거래처를 뚫어내는 건 밭이랑을 가는 것과 같지요. 농사나, 회사 경영이나 현장을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고는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벤처 갑부의 경영철학치고는 너무도 소박했다. 그래서 코스닥에 상장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다.“상장할 때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오히려 신중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물론 마음으로야 신났죠.” DMS는 공모경쟁률이 192 대 1을 기록했고 2004년 10월1일 코스닥시장에 등록하면서 거래 첫날 단숨에 시가총액 20위로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독보적인 공정기술과 국내외 TFT-LCD 업체들의 투자수혜 등으로 DMS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투자유망종목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DMS는 매출액도 급신장세를 기록 중이다. 지난 2001년 229억원을 시작으로, 2002년 379억원, 2003년 565억원, 2004년 1700억원으로 연평균 95%의 높은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같은 기간 순이익 증가율만 해도 연평균 176%에 달한다. 올해는 2200억원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DMS는 수원에서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창업 첫해 14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에 비하면 놀랄 만한 성장이다.“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는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국내 시장 규모도 절반으로 줄고 동종 업계 회사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현재 박 대표의 주식평가액은 약 600억원. 대기업 부장에서 일약 벤처 스타로 변신한 그의 심정이 궁금했다.“600억원이라고 해도 그게 뭐 다 제 돈입니까. 주식이야 올랐다가 내려갈 수도 있는 게 아닌가요. 주식평가액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는 편인데, 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그는 벌써부터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부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부는 어떻게 만드느냐 보다는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는 동기유발 효과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영웅 만들기도 약간은 필요하죠.”DMS는 블루오션 기업의 전형이다. 박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염두에 놓고 있었다. 좁은 국내시장보다는 광활한 해외시장을 개척해 돈을 벌겠다고 마음먹은 지 6년이 지난 지금, DMS는 현재 대만에 3개의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중국 베이징에 첫 깃발을 꽂았다. “해외시장에서 주로 경쟁하게 되는 업체들은 히바우라 DNS 등 주로 일본 업체들이더군요. 일단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입니다. 앞으로 이들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기술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하게 줄이고 성능을 개선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입니다. ”DMS는 지난 2000년 일본 업체들 세정장비 제품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시킨 고집적세정장비(HDC)를 가지고 지난해 170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현재 DMS는 늘어날 주문량에 대비해 지난 2월 1만평 규모의 화성 제2공장을 완공,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계 중에는 최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췄다. 기존 화성 1공장은 부품·가공 관련 10여개 협력업체로 단지를 조성해 장비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하도록 할 계획이며, 2공장은 6세대 이상 대형 LCD 패널 제품 출시에 대비한다는 구상이다. 이 밖에 DMS는 2010년까지 전 제품 세계 1위, 매출 1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WIN2010’을 마련했다. “이제는 직원들의 복지후생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사원 기숙사 건립비로 30억원을 책정해 뒀습니다. 또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YMCA와 연계, 주부사원들의 교육에도 신경을 쓸 생각입니다.”군대에 갔다 온 남자라면 꼭 한 두 번씩 들은 말이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삶이 짓누르고 있는 고통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쁨으로 승화된다는 의미다.일벌레인 ‘박순신’ 박 대표에게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No pain No gain)’는 하나의 신조에 가깝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 자체가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피할 수 있으면서도 즐기는 법을 택했으며, 이것이 그를 성공으로 이끈 좌우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