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이 같은 배를 타고 가는 학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물건을 팔러 다니시오?”학자는 대답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팝니다.” 학자의 말에 궁금해진 상인은 학자가 잠이 들자 그의 짐 보따리를 풀어보았으나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항해 중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됐다. 두 사람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어느 해안에 닿았다. 학자는 그 마을 예배당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얘기를 했다. 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이 매우 훌륭한 학자라고 칭찬했고, 그는 많은 재물을 모으게 되었다.상인은 이를 보고 감탄했다. “과연 당신의 말이 옳았소. 나는 팔 물건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당신은 살아있는 동안은 잃어버리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오.”탈무드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한국을 나름대로 아는 외국인들, 특히 미래학자나 경제학자들을 만나보면 한국에 대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한국의 미래는 정말 밝다. 왜냐하면 교육열이 대단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한국사람 입장에선 여기저기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한 말로 생각할 수도 있다.그러나 가만히 보면 이들의 얘기가 그저 ‘립 서비스’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 100개가 훨씬 넘는 지구상의 나라들을 둘러봤을 때 우리 국민들처럼 자신들은 물론 자녀 교육에 열심인 나라가 흔치 않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몇몇 일부 선진국들을 제외하면 더욱 그렇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는 교육에 열심인 나라의 미래가 밝은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한국인의 교육열은 정말 대단하다. 한국에 살건, 외국 땅에 사는 해외 동포건 예외가 없다. 가히 교육이 종교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런 한국인의 교육열을 무색하게 만드는 민족이 있다. 바로 유대인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 동포들이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 가면 십중팔구 그곳은 유대인 동네다. 한국 학부모들 사이에 “한국 아이들이 악기 하나 배울 때 유대인 아이들은 틀림없이 두 개를 배운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몇해 전 월드컴이란 미국의 대형 통신회사가 부실회계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살로먼스미스바니(세계 최대 금융회사인 시티그룹 계열)란 투자회사에 근무하던 유명 애널리스트 잭 그럽맨이 시티그룹 회장의 지시를 받아 월드컴의 기업 내용을 실제보다 훨씬 좋게 포장해 그 회사의 주가를 띄워 준 것이 ‘부실회계’ 스토리의 큰 줄거리다.재미있는 것은 잭 그럽맨이 기업 분석을 허위로 해주는 대가로 그룹 회장에게 요청한 것은 거액의 보너스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수 백만달러의 보너스가 오갈 수 있는 은밀한 ‘거래’였지만 그가 부탁한 것은 자기 자식을 ‘92스트리트Y’라는 유대인 센터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입학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그룹 회장인 샌디 와일이 바로 그 유치원의 이사장이었다. 나중에 사건이 불거지면서 이 유치원은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됐는데 바로 이 유치원이 유대인들의 교육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이 유치원이 있는 곳은 뉴욕 맨해튼 중심부 센트럴파크 인근의 부자촌이다. 등록금이 명문 사립대학보다 비싼 데도 입학 희망자가 줄을 서 있어 하버드대보다 더 들어가기 어렵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교육 프로그램이 훌륭한 데다 어려서부터 좋은 인맥을 쌓아주기 위한 부모의 ‘열성’ 때문이다. 이 유치원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식 입학을 청탁한 잭 그럽맨이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샌디 와일 시티그룹 회장 등 유치원과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이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배우로 유명한 유대인 우디 앨런과 그의 한국계 부인이 입양해 키우는 아이도 이 유치원에 다닌다.유대인의 교육열이 강한 이유로 유대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교육을 중시하는 종교적 가치체계다. 유대교에서는 ‘신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인간의 전형을 ‘지성인’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지성인을 만드는 교육은 다른 무엇보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로 간주된다. 유대인 세계에서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은 무식한 것을 넘어 종교적인 죄악으로까지 여겨질 정도다. 유대인 중에서 가장 지적인 사람은 유대 사회를 이끄는 랍비가 됐는데, 교육자이자 선생님인 랍비는 그래서 유대 사회에서 늘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유대인들은 어린시절부터 성서를 교육시킨다. 그런데 그 방법이 아주 재미있다. 아이가 세 살이 되면 꿀로 만든 칠판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적어 놓고 그것을 혀로 핥으며 글자를 깨우치도록 한다. ‘지성=달콤함’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형성시켜주는 풍습이다.두 번째는 고난의 역사다. 다른 어느 민족보다 고통을 많이 겪은 유대인들은 이를 극복하는 길을 몸으로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이라는 최고의 선생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육’의 중요성을 느꼈다는 말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작가 숄렘 알라이켐은 “유대인은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그것은 그들이 언제 여행을 떠나도록 강요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곳에서 쫓겨나 다른 곳으로 가서 살려면 머릿속에 남보다 뛰어난 지식이 있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지성은 달콤한 것일 뿐만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무기’였던 셈이다.교육을 중시하는 유대인의 모습은 요즘 미국 각급 학교 구성원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좋은 학교가 많은 뉴욕 보스턴 등 동부 지역의 경우 초·중·고 학교 선생의 30∼40%가 유대인이고, 학부모모임(PTA)도 거의 ‘유대인 엄마’들이 이끌고 있다. 유대인 어머니들이 하도 교육에 열심이어서 ‘유대인 엄마(Jewish Mom)’라는 말이 국제적으로 ‘교육에 열성적인 엄마’를 지칭하는 숙어로 통용될 정도다.그런 까닭에 대부분 학교에서 유대인 학생수는 전체의 10%에도 못 미치지만 학교를 움직이는 두 축인 선생과 학부모는 모두 유대인이다. 하버드 예일 등 이른바 아이비리그의 명문대학으로 가면 이 비율은 더욱 심해진다. 법대와 경영대 의대 등 인기학과의 경우 학생들의 절반가량이 유대인이고 교수들은 70∼80%가 유대인이다. 교육계에서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유대인 명절에 아예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점이다. 유대인 명절이 미국의 정식 공휴일은 아니지만 선생들이 대부분 휴가를 내고 학교에 나오지 않아 정상 수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예 교육위원회에서 유대인 명절을 학교 공휴일로 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의 힘은 교육에서 출발했고, 그 힘을 배경으로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계의 최강으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