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보고 또 보면 투자안목 절로…

재 화가 이중섭이 사망했을 때도 이렇게 들썩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작가의 미발표작 1000여 점의 진위 논쟁이 불거지면서 언론은 요란하고, 화랑가는 고요해졌다. 이와 관련된 사람들이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의 기로에 서 있다면 투자가들은 ‘사야 하는지 사지 말아야 하는지(To buy, or not to buy)’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주식 투자, 부동산 매매 등 재테크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이 새롭게 눈을 돌린 대상은 미술품이었다. 국내 작가 중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등은 고가의 가격대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들의 작품은 미술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미술품 애호가들이 낚아채 가기 일쑤다. 작품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만큼 투자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중섭, 박수근의 위작 시비가 결국 법원의 심판대에 오르면서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서도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안료를 떨어뜨리거나 뿌리는 등 즉흥적인 행동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묘사된 결과보다 제작하는 행위에 예술적 가치를 둔다)의 대가 잭슨 폴록의 미공개 작품 32점이 진위 논란에 휩싸여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의 작품은 지난해 5월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1160만달러(약 120억원)에 팔렸을 만큼 인기가 높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술품 투자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위작 시비에도 불구하고 미술품 투자는 매력이 넘친다. 특히 자산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미술품 구매는 권장할 만하다. 1%의 위험성 때문에 99%의 가능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공신력있는 단체서 작품구입그렇다면 위작 시비에 말려들지 않고 훗날 블루칩이 될 작품을 ‘입도선매’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공신력 있는 단체의 인정을 받은 작품을 구입하는 게 중요하다. 소더비나 크리스티경매, 국내외의 유명 갤러리에서 구입하는 게 개인을 통하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어느 작가가 최근 부상하고 있는지, 어떤 작품을 구입해 두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화상들의 말은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품에 대한 안목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술품을 보는 안목은 발품을 얼마나 파느냐에 비례해서 늘어가게 마련이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제집 드나들듯 다녀야 한다. 유명 작가의 전시회는 사전에 예습을 하고 가는 게 좋다. 화가가 어떠한 시절에 그린 작품인지, 전시된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알고 가면 더 자세히 조목조목 따져가며 각 작품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짚어낼 수 있다. 해외에 있는 미술관에 갈 때에도 마찬가지다. 서점에 가면 파리 오르세이미술관, 루브르미술관,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 암스테르담의 고흐미술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는 작품을 소개하는 책자가 많다. 미리 읽어 기본적인 상식을 알고 간다면 각 전시장을 흥미롭게 둘러보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 터이다. 명품 브랜드의 옷과 가방을 사용해 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거의 흡사하게 만든) 가짜와 진짜를 식별하는 눈이 높아진다고 한다. 많이 사용해 본 사람이 각 제품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물론 명품 브랜드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멋스럽지만 실질적으로 착용했을 때는 소재가 쉽게 상해서 활용도가 떨어진다거나, 멋스러운 디자인이 오히려 활동하기에 불편함을 주는 경우도 있다.직접매매를 해봐야 노하우 터득미술품도 마찬가지다. 도록만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럴 경우 어느 작가의 무슨 작품인지 줄긋기는 가능할지 몰라도 작품을 보는 심미안은 가질 수 없다. 인쇄된 상태로는 화가의 감각이 실린 붓 터치, 작품의 질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실물을 보지 않으면 작품의 진면목을 5%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전시장을 자주 다니는 것과 더불어 직접 매매를 해봐야 한다. 특히 집 안에 걸어두고 수시로 바라보면 처음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어떤 작품을 처음 대면했을 때 그림을 읽어내는 속도가 빨라지게 되고, 자연스레 미술품을 보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 물론 만만치 않은 가격의 작품을 구입하는 게 경제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때에는 일정 기간 작품을 대여해 주는 화랑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정 작가의 진품을 소장해 보는 것은 도록에 담긴 그림을 1000번 보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유명 작가의 작품보다는 비전이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해 투자하는 게 좋다. 지난 여름 로댕갤러리에서 열렸던 나라 요시토모의 개인전은 하루 1만여 명이 관람하는 등 1999년 갤러리 개관 이후 최대 관람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하고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작업을 하다 2000년 일본에 정착한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하지만 순진함의 대명사인 어린이가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눈 꼬리를 치켜 올려 악동의 이미지를 강조한 그의 작품이 범상치 않음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투자했다면 지금쯤 큰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 작가의 작품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작지 않아 혜안을 갖고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무던히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무명에 가까운 작가가 1~2년 새 유명 작가 반열에 올라서는 경우는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세계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중국미술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싸구려’ 취급을 받던 중국 작가의 작품은 최근 들어 국제 미술투자자들의 투자 1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신인작가를 발굴하려면 저개발국가 작가의 작품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베트남과 남미에도 투자 전망이 있는 작가가 꽤 많이 있어서 미술품 애호가들은 이미 서서히 그곳 시장을 탐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요컨대 미술품을 구입할 때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은 필수 사항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그들의 의견만 좇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진정한 미술품 투자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