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율 높은 독점기업 돈볕드는 블루칩 후보"

기간 시장수익률을 크게 웃도는 실적을 내는 펀드매니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5년 동안 종합주가지수 상승률보다 5배나 높은 수익을 낸 펀드매니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채원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상무)은 바로 이런 놀라운 성과(표1 참조)를 냈기 때문에 장기투자, 가치투자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가치 투자가 이 시대 최선의 투자방법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이른바 ‘복리 효과’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는 기자에게 그는 오히려 “연 20%씩 꾸준히 수익을 내면 20년 후에 1억원이 얼마로 불어나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계산해 보니 31억원이었다. 이런 수익률을 10년만 더 유지하면 1억원이 무려 197억원으로 늘어난다. 그는 또 “워런 버핏이 연 24.9%의 수익률을 32년 간 유지해 왔는데 그 결과 운용자산이 몇 배로 불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실제 자료를 보니 그가 운용하는 자산은 무려 1308배나 불어났다. 이 상무는 또 하나의 표(표2 참조)를 제시하며 복리 효과를 설명했다. 표에서 ‘Case1’의 사례는 우리나라 일반 투자자들이 자주 경험하는 상황이다. 주가가 내려갔을 때 50% 가까운 손해를 보고 주가가 올라가면 80%나 되는 이익을 본다. 물론 수익률을 단순 평균하면 10%가 되지만 초기 원금(100)과 비교한 복리 수익률은 오히려 마이너스 11.8%가 된다. 그러나 가치 투자, 장기 투자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표의 ‘case2’에서 볼 수 있듯 가치 투자를 하는 사람은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손실을 10% 범위에서 최소화할 수 있다. 대신 주가가 상승했더라도 최대 수익은 30% 정도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투자 결과 원금은 40% 늘어났다. 바로 리스크는 최소화하면서 중간 정도의 수익을 얻는다는 이른바 ‘저위험 적정수익(low risk, medium return)’이 가치 투자의 기본 정신이다. 실증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복리 효과가 엄청나다는 사실은 이처럼 어렵지 않게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에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떤 종목을 골라야 하느냐’다. 이 상무는 이에 대해서도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다.“다른 지표보다는 수익가치와 자산가치, 배당 세 가지 지표를 봅니다.”수익가치에 대해 그는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다. 일례로 A기업의 시가총액이 100조원인데 한 해에 10조원의 순이익을 냈다면 주가수익배율(PER;시가총액÷당기순이익)은 10배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100조원짜리 회사가 10조원을 벌었기 때문에 10%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는 10%란 수치를 채권 수익률과 비교했다. 만일 채권 수익률이 5%라면 이 주식은 무조건 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채권 수익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이익률을 보인 기업을 사들였다. 단기적으로 시장의 부침에 따라 주가가 등락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이런 수익률이 유지되면 주가는 반드시 오른다는 확신 때문이다.그는 또 업종 평균 PER와 해당 기업의 PER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업종 평균 PER가 시장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권 수익률과 비교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자산가치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된 주식을 고르는 것도 가치 투자의 정석이다. 일례로 태광산업 주가가 13만원이었을 때 이 회사의 자산가치를 계산해 봤더니 주당 12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광은 수익성 측면에서도 별 문제가 없는 그야말로 ‘멀쩡한 회사’였다. 이 상무는 이 주식을 대거 매수했다. 그리고 주가가 50만원 정도 됐을 때 팔았다. 물론 이 주식은 더 올랐고 그가 매도한 주식 가운데 상당수는 매도 이후 몇 배 더 오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적정수익(medium return)에 만족하는 게 가치 투자의 기본이다. 추가 상승을 노리다가 한 종목의 의존도가 늘어나면 그만큼 위험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리턴을 제한하면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배당수익률도 중요한 투자 기법이다. 일례로 그는 SK가스 주식을 샀는데, 이유는 주가가 8000원인데 배당액이 1500원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18.75%의 배당수익률이다. 금리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보장해 주는 이 주식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나중에 주가가 올라 배당수익률이 떨어지자 분할 매도했다.그의 이런 투자전략은 하락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지난 2004년 차이나 쇼크 등으로 종합주가지수가 940에서 700대까지 떨어졌다. 철강 화학주 등이 하락세를 주도했다. 하지만 이 상무가 운용하는 펀드는 마이너스가 나지 않았다. 그가 들고 있던 가스주나 한전(주가가 2만원 대였지만 자산가치는 6만원, 배당수익률은 6%였던 주식이다) 같은 종목은 그의 표현대로 ‘아무리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는’ 주식이었던 셈이다.물론 그의 가치 투자가 처음부터 시장에서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98년 그는 동원증권에서 국내 처음으로 가치 투자를 표방한 ‘밸류 이채원펀드’란 실명 펀드를 운용했다. 99년 중반까지 수익률이 좋았다. 그러나 99년 하반기부터 벤처 열풍이 불면서 코스닥주가 매일 상한가를 쳤다. 돈이 코스닥으로 대거 몰려들면서 가치주들은 역풍을 맞아 오히려 하락했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그는 가치 투자를 해야 한다는 소신 때문에 기업가치에 비해 말도 안 될 정도로 고평가된 코스닥 주식을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평생 들을 욕설은 이때 다 들어야 했다. 심각한 스트레스로 이 상무는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펀드를 인계하고 그는 연월차를 몽땅 모아 23일 간 휴가를 떠났다. 다행히 김남구 한국투자증권지주 대표(당시 동원증권 부사장)만은 그를 인정해 줬다. 김 대표는 투자자들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상품 계정을 운용해 보라며 그에게 기회를 줬고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이 옳았음을 모두에게 입증해 보였다.그는 앞으로도 장기 투자가 대세를 이룰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사회적으로 노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장기 투자가 더욱 활성화할 수밖에 없는 데다 주식을 사는 주체들도 돈키호테 같은 모험가에서 안정적인 자산운용을 추구하는 대형 기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날처럼 내재가치와 무관하게 어처구니없이 상승하는 주식은 줄어들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따라서 경기에 민감하고 변동성 심한 주식은 별 희망이 없다고 그는 지적한다. 중국의 경기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유가가 오르든 내리든 꾸준히 실적을 이어갈 수 있는 기업이 증시를 이끌 것이란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강력한 독점력을 갖고 있는 내수 소비재 업종 가운데 저평가된 주식을 사야 한다고 권고한다. 또 구조적으로 독점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모바일 통신 업체나 가스 업체 등도 주목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적어도 3~4년을 바라보는 장기적 안목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