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자들만의 세상인 것 같은 인도엔 우리가 모르는 낯선 무언가가 있다. 인도라는 이름은 분명 같지만 마치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처럼 신비로운 곳인 이 나라는 아직도 마하라자(국왕)가 지배한다. 그래서 찾아가는 사람도 마하라자의 손님으로 대접받으며 돌아올 때까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꿈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곳은 인도인들이 평생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카르마(karma:업)처럼 여행자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부분 인도 여행은 일정에 따라 코스가 다르지만 1주일 동안 돌아볼 예정이라면 골든 트라이앵글을 가장 추천하고 싶다. 행정수도인 델리(Delhi)에서 힌두와 이슬람 문화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자이푸르, 타지마할로 이름난 아그라로 이어지는 이 황금 코스는 인도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가보는 명소들이다. 특히 델리는 고대부터 여러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던 도시로, 제국주의 시절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무굴제국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올드 델리와 현대적인 시가지의 모습을 갖춘 뉴델리의 모습을 차례로 만끽할 수 있는 이색적인 도시이기도 하다.인도인들에겐 ‘딜리 두르헤(델리는 멀다)’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 있다. 델리가 풍요롭고 발전된 도시이긴 하지만 민초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엘리트 정치가들이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어 ‘델리는 아직 멀다’라고 말한다. 직항노선이 개설돼 있어 경제도시인 뭄바이와 함께 인도 여행의 중심지로 손꼽는다. 그 덕분에 인도 여행의 기점은 대부분 델리에서 시작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델리도시 전체가 주는 느낌은 뿌연 공해와 먼지 때문에 명쾌하지 않은 편이다. 달리는 차에서 창문을 열면 12월에도 후덥지근한 기운과 매캐한 매연냄새가 한꺼번에 밀려들어 온다. 시내는 운송 수단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혼돈의 세계다. 델리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선 덜 복잡한 편이지만 자전거 릭샤와 오토릭샤, 자동차, 버스 등과 낙타와 말이 끄는 수레,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소들이 한꺼번에 뒤엉켜 교통지옥을 연상케 한다.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눈 깜짝할 사이 도로 전체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때로는 공포감마저 들 게 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모습도 몇몇 지역을 가보면 확 바뀐다. 델리엔 최고급 호텔과 화려한 궁전, 귀족들만 쇼핑하는 특별한 공간들이 즐비하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임페리얼호텔(The Imperial New Delhi)이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지어진 이 호텔은 차라리 궁전이란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외관은 옛 인도 왕국의 전통적인 스타일로 마감되어 있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식민지 시대에 이곳을 지배하던 빅토리아왕조의 궁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고급스런 앤티크 가구와 값비싼 페르시안 카펫, 크리스털 샹들리에. 그뿐이 아니다. 호텔 주인이 전세계에서 수집한 예술품들이 마치 갤러리처럼 복도를 채우고 있다. 각기의 객실 내부엔 뱅앤올룹슨과 같은 최첨단 오디오, 텔레비전이 갖춰져 있어서 유럽 최고의 호텔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특별히 가볼 만한 공간으로는 무굴제국의 영화로운 시절과 강건한 힘을 느낄 수 있는 레드 포트(랄 킬라 lal Qila)와 아름다운 흰 대리석과 적사암으로 지어진 모스크, 자마 마스지드가 대표적이다. 둘 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에 의해 건설됐고 올드 델리에 자리하고 있다. 사실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지만 델리는 구시가가 훨씬 매력적이다. 분위기도 인도의 멋들어진 풍경을 감지하게 한다. 노점에서 파는 물건들조차 지방색이 강한 물건 일색이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핑 아이템은 실크제품과 준보석, 금 세공품이다. 혼잡한 거리를 지나 레드 포트에 도착하면 붉은 빛의 성벽과 마주하게 된다. 레드 포트는 야무나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엄청난 규모임을 실감할 수 있다. 입구에서 마하라자의 알현실을 지나 진주 모스크, 마하라자들이 사용했다는 세 가지 스타일의 목욕장까지 관광루트가 이어져 있다. 하지만 옛날의 영화는 이곳을 다시 복원하는 도공들의 시끄러운 작업소리에 파묻히고 빛바랜 흔적들만 여행자들을 맞고 있어 적막한 느낌도 없지 않다. 이에 비해 자마 마스지드는 마치 타지마할을 연상케 하는 둥근 돔과 흰색 대리석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인상적이다. 또 굽타 미나르(Qutab Minar)란 이름의 기념비도 빼놓을 수 없다. 뉴델리에서 남쪽 교외로 약 15km 지점에 자리한 이 탑은 힌두교도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노예 왕조의 술탄(군주)이 세운 것이다. 행운을 기원하는 인도인들이 이 탑 주위를 돌거나 영내에 있는 쇠기둥(남성의 성기를 상징한 힌두양식)을 뒤로 끌어안고 기념 촬영하는 재미있는 모습들을 스케치할 수 있다. 델리에선 ‘간디’를 만날 수 있다. 인도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절대로 잊지 못할 그들의 성자, 간디는 곳곳에 그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델리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기념박물관, 추모하는 성소 등이 주요 관광 포인트로 스크랩된다. 자이푸르는 지혜로운 마하라자인 사와이 자이 싱 2세(Sawai Jai Singh II, 1699~1744)가 건설한 계획도시다. 델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266km 떨어진 이 도시는 광대한 타르사막을 끼고 있는 라자스탄주의 주도다. 1728년에 이 지방에 세력을 떨쳤던 사와이 자이 싱 2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도시의 이름조차 왕의 이름을 본떠 자이푸르(승리의 도시란 의미도 된다)라고 명명되었다. 푸르른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름처럼 구시가지는 7개의 문을 지닌 성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또 다른 이름은 핑크 시티(Pink City). 영국의 지배를 받을 때 이곳을 방문하는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인 웨일스의 왕자를 영접하기 위해 도시 전체를 핑크색으로 칠한 사연 때문이다. 라지푸트족들에게 핑크색은 환대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마하라자가 그런 색으로 도시를 칠하라고 명했던 것이다.마하라자의 화려함이 가득한 곳, 자이푸르그럴싸한 별명과는 달리 도시는 역시 지저분한 인도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도시엔 마하라자가 아직도 존재한다. 자이푸르를 건설한 자이 싱 2세가 1726년에 도시 중심에 세운 궁전(City Palace) 뒤에 자리한 궁전에서 살고 있다. 상징적인 존재로 자이푸르의 공식 행사에만 얼굴을 비치는 그는 엄청난 부자이기도 하다. 궁전의 동쪽에 위치한 바람 궁전(Hawa Mahal-Palace of Winds) 역시 자이푸르의 또 다른 상징이다. 특히 시티 팰리스는 전부 7층 건물(Chandra Mahal)로 지금도 마하라자가 살고 있다. 일부는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곳에서 자이 싱 2세를 만날 수 있다. 비록 그림의 형태를 빌려서이지만 상당히 준수한 용모를 지닌 이 어린 성주는 성장 후의 모습까지 세밀하게 초상화로 남겼다. 바람 궁전은 사실 외부와의 접촉이 단절된 궁전의 여인들이 이곳과 맞닿은 시장(Tripolia Bazaar)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자이 싱 2세의 후손인 프라탑 싱(Pratap Singh)에 의해 건설된 곳으로 얼핏 보면 힌두신인 크리슈나(Krishna)의 왕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사랑의 전당, 아그라의 타지마할인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타지마할이다. 그러나 1주일 이상 인도를 여행할 사람이라면 그 어떤 지역보다 이곳을 마지막에 둘러볼 것을 권한다. 타지마할을 본 이후엔 어떤 건축물을 봐도 감흥이 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탄과 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도 여행상품에는 타지마할이 맨 마지막 코스로 잡혀 있다. 타지마할은 사실 궁전이 아닌 무덤이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무굴 황제인 샤자한의 이름을 많이 듣는다. 샤자한은 건축광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궁전과 사원 짓기를 즐겼다. 인도 전역에 걸쳐 뛰어난 명성을 자랑하는 모스크와 사원, 궁전 중 대부분이 샤자한의 명에 의해 지어진 것들이다. 그가 황제로 재임하던 시절, 사랑하는 왕비인 뭄타즈 마할이 죽자 그녀의 소원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무려 22년 동안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타지마할은 정말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다. 천문학적인 건축비용은 둘째치더라도 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화려한 준보석이 박힌 하얀 대리석은 뛰어난 상감기법 덕분에 이음새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특히 새벽에서 별이 내리는 밤까지 주변 환경의 빛과 분위기에 따라 마치 인상파 화가의 기법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타지마할의 신비로운 매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함을 지녔다. 더군다나 완벽한 대칭의 전형인 타지마할을 중심으로 사방에 자리한 건축물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편 건물을 반사하고 있다. 건축가들은 물론 예술가들조차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이 아름다운 무덤을 정작 샤자한은 그 완공을 보지 못했다.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맞은편 아그라 포트에 갇혀 말년을 보내면서 멀리 안개와 구름 속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는 타지마할만 음미했을 뿐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권력의 끝은 참 무상하다. 인도 정부에서는 이곳을 24시간 개방체제로 운영한다. 특히 매주 금요일엔 무료로 개방해 누구든 들어갈 수 있다. 왕비는 생전에도 사랑을 받았지만 죽어서도 전 세계의 조문객을 받고 있으니 그녀의 행복한 카르마를 어디에다 비할까. 인도엔 마하라자가 살던 궁전들을 호텔로 개조한 훌륭한 숙박시설들(Heritage Hotels)이 많다. 주로 외국관광객들이나 부유한 인도인들이 이용하는 이 궁전호텔들은 옛 궁전스타일의 서비스를 고수한다. 체크인과 더불어 터번을 두른 종업원들이 옛날 마하라자를 영접하듯,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하고 짐을 머리에 얹어 나른다. 달리는 궁전으로 여행하는 호사스러움자이푸르가 속한 라자스탄은 마하라자의 땅(The Land of Maharajas)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이곳엔 자이 싱 2세를 비롯, 번성했던 인도왕국의 마하라자들의 흔적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럭럭리 트레인, ‘달리는 궁전(The Palace on Wheels)’이란 초호화 열차도 이곳을 지나간다. 욕실까지 딸린 이 열차에 머무르는 동안 마하라자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요금은 하룻밤에 미화 495달러(1인실, 성수기 기준). 인도의 물가 수준을 감안할 때 가히 천문학적인 요금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인도의 대표적인 지역을 편안히 이동하면서 정박하는 곳마다 관광을 즐기는 크루즈식인 이 기차는 완벽한 서비스와 안전, 호사스러움을 동반한다.여행수첩▶ 찾아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자이푸르까지는 우선 인천-델리 간 직항편을 이용할 수 있다. 인도 국적 항공사인 에어인디아(02-752-6310)와 국적기인 아시아나 항공(02-669-8000, 8시간30분 소요) 등이 있다. 델리 도착 후 차량으로 이동(약 5시간30분)하면 된다. 인도 국내에선 제트 에어웨이즈, 사하라 인디안 에어라인즈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기후 인도를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11~2월이다. 이 무렵은 건기에 해당해 맑은 날이 이어진다. 다만 일교차가 심해 한낮에는 섭씨 30도까지 올라가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약간 서늘한 편이다. 차량이나 기차 안, 호텔도 냉방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긴 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 참고 인도정부 관광국( www.tourismofind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