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에서도 그를 다룬 책이 출간될 만큼 유명한 중국 청나라 시대 상인 후쉐옌(胡雪岩). 그는 훙딩상런(紅頂商人)으로 불렸다. 훙딩은 1~2품의 고급관리를 일컫는다. 모자의 상단을 붉은 산호로 장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부(富)를 축적하는 과정은 정치에서 기회를 찾는 중국 상술의 한 면을 보여준다.관직에 뜻을 둔 왕요우링이라는 젊은이에게 예사롭지 않은 기백을 느낀 후쉐옌은 은자 500냥을 선뜻 빌려줬고, 왕요우링은 이를 밑천으로 출세 가도를 달린다. 덕분에 왕요우링이 고향 저장성의 지방관리로 부임했을 때 후쉐옌은 군량미와 병기 등을 납품하는 일을 맡게 된다. 고위관리 줘중탕과의 인연도 후쉐옌이 부를 불리는 순기능을 하게 된다. 줘중탕이 태평천국군의 항저우 점령으로 곤란에 처했을 때, 회족 반란 진압을 위해 신장으로 출병할 때 어김없이 후쉐옌은 군수물자와 군자금을 아끼지 않고 원조했다. 후쉐옌은 덕분에 무기 구입대금과 외국차관 등을 포함한 상업적 이익 말고도 좋은 관직까지 받았다. 이후 승진을 거듭해 훙딩상런으로까지 불리게 됐다.정치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중국 상인의 모습은 개혁개방의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원저우 상인 셰빙챠오는 1992년 봄 광저우로 물건을 사러 갔다가 덩샤오핑의 남순 강화(南巡講話) 기사를 읽게 된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의 시장경제가 위축될 시점 덩샤오핑은 남순 강화로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는 계기를 삼는다. 셰빙챠오는 이 흐름을 읽고 곧 바로 창업에 나섰다.그러나 정치와 비즈니스가 긍정적인 호혜 관계만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정경유착은 부패의 고리를 낳고 이는 중국 고도성장의 그늘을 만든다. 최근 들어 중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훙딩상런이 그렇다. 이들은 척결의 대상으로 거론된다.지난 8월 초 중국 광둥성 다싱탄광 갱도에 지하수가 밀려들면서 작업 중이던 광원 127명을 집어삼켰다. 지하 440m 지점에서 석탄을 캐고 있던 광원들 중 4명만 갱도를 빠져나왔고, 나머지 123명은 모두 수몰됐다. 중국 언론들은 잇따르는 탄광사고 책임의 화살을 훙딩쾅주(鑛主)로 돌렸다. 갱도 내 누수 현상은 6월 중순부터 발생했다. 회사 측은 누수 현상이 있는 갱도 벽을 시멘트로 바르고 ‘안전하다’고 했다. 그러나 광원들이 작업했던 지하 440m 갱도 위쪽 120~260m 지점에는 수년 전 석탄을 캐내고 폐쇄했던 갱도가 있었다. 그곳으로 수년간 물이 들어차기 시작해 1500㎥ 규모의 거대한 물탱크가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다싱탄광은 지난 6월7일 당국으로부터 ‘안전생산허가증’을 받았다. 민영 탄광업체인 이 회사의 회장과 3명의 부회장이 모두 탄광 소재지인 싱닝시와 상급도시인 메이저우시 인민대표, 정치협상회의 위원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 모든 탄광에 지분투자한 공무원들에게 일률적으로 지분을 철회하라고 지시한 것은 이처럼 왜곡된 훙딩상런을 근절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왜곡된 훙딩상런은 탄광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선 관리들이 국유기업 등의 경영자를 겸직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1993년 실시된 국가공무원잠정조례는 공무원이 기업의 경영활동 참여금지 규정을 어길 경우 처벌을 받도록 규정했다. 이어 2002년에는 처장급 이상 관리는 주식투자를 할 수 없다는 규정까지 만들었다. 그래도 훙딩상런이 근절되지 않자 작년 초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당 중앙조직부는 공동으로 “당정 간부의 기업 겸직을 정리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독자적인 체제를 고집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정책 방향이 비즈니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훙딩상런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중국도 갈수록 정부의 권력을 시장에 넘기는 시장지향적인 체제로 나가고 있다. 미래 중국의 훙딩상런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