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반등세가 심상치 않다. 작년 말 이후 코스피지수 1000∼1200의 박스권을 오락가락하던 증시는 3월부터 급피치를 올리며 단숨에 1300선을 회복하는 저력을 보였다. 3월부터 4월 초순까지 6주 동안 지수는 25%나 뛰어올랐다. 시장 참여자들의 예상을 깨고 증시가 급반등한 배경에는 풍부한 유동성이 자리 잡고 있다. 저금리와 부동산시장 침체로 갈 곳을 잃은 800조 원 가까운 부동자금이 서서히 증시로 물꼬를 트고 있는 것이다.여기에 지난 4년 이상 줄기차게 한국 주식을 팔아대던 외국인까지 매수세에 가담하면서 ‘돈’의 힘으로 증시를 밀어 올리는 유동성 장세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 증권사에 맡겨놓은 고객예탁금은 지난해 말 9조 원대에서 올해 1월 말 10조 원대로 올라선 후 4월 초에는 15조 원까지 급증했다. 고객 예탁금이 15조 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07년 7월 이후 처음이다. 반등장세가 예상 외로 지속되자 시중 자금이 증시로 서서히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경기가 저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따라서 2분기 중 증시는 유동성 장세에 진입하면서 단기랠리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위기다. 다만 시중 자금이 가계나 기업으로 충분히 흘러들어가지 않고 있어 유동성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있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자금은 2월 말 기준으로 784조7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은행 수시입출금식예금(MMDA)과 저축예금, 머니마켓펀드(MMF)와 단기 채권형 펀드, 요구불 예금, 양도성 예금증서(CD)와 환매조건부채권(RP),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고객예탁금 등이 포함된다. 이는 같은 시점 금융권 총 수신 1525조4000억 원의 절반인 51%에 달하는 규모다. 단기자금 규모는 2006년 말 611조 원에서 2007년 말 665조 원, 작년 말 749조원 등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눈에 띄는 것은 올 들어 크게 늘어난 단기자금 중 일부가 최근 증시로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중자금을 빨아들였던 MMF의 경우 3월 한 달간 4조4000억 원 감소했다. 반면 국내 주식형펀드(상장지수펀드 포함)는 이 기간 1조1000억 원 이상 순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금 금리는 연 3%대로 떨어지는 반면 주가가 반등하는 기미를 보이면서 은행 예금에서 증시로 자금이 이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3월부터 증시 반등세가 뚜렷해지자 증권사 객장을 찾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일선 증권사 지점장들은 “증시가 상승세를 지속하자 고객들이 주식계좌를 다시 열고 한동안 나오던 펀드 환매 얘기도 쑥 들어갔다”며 “각 지점의 신규 증권계좌 개설 규모가 작년 4분기보다 30~40%가량 증가했다”고 전했다.전문가들은 최근의 증시 동향이 유동성 장세로 진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상당 부분 만족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교보증권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경기저점 근접 △주식의 저평가 △국내 자금시장의 경색 완화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현상의 완화 등을 꼽았다. 이 증권사의 주상철 연구원은 “경기 저점 근접과 주식 저평가 조건은 거의 충족됐다”며 “신용경색과 안전자산 선호현상과 좀 더 완화되면 2분기부터는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강세도 진정되면서 국내 증시에 유동성 장세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금리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증시로의 자금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등급 ‘AA-’급 회사채의 월 평균 수익률은 1월 7.3%에서 4월에는 6%대로 하락했다. 이에 따라 국고채 3년물 수익률과의 차이(스프레드)는 연초 4%포인트에서 최근 2%포인트대 초반까지 좁혀졌다. 이우현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2.00%로 낮춘 탓에 예금 금리가 연 3%대로 급락했다”며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에 진입했으며 이는 주식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오재열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한은이 추가로 정책금리를 낮출 가능성은 낮으므로 금리 하향세가 멈추면서 채권에 대한 투자 매력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MMF를 중심으로 부동화된 자금과 채권선호형 자금이 증시로 회귀하면서 유동성 장세를 불러 올 공산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황빈아 교보증권 연구원도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초과 유동성은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갔고 3월 말 기준으로는 더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증시 불확실성이 빠르게 완화되고 있어 대기자금이 증시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2분기에는 유동성 장세가 펼쳐지며 지수를 ‘레벨 업’ 시킬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로 돌아오고 있는 점도 유동성 장세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33조 원 이상 순매도했던 외국인은 올 들어 4월 초까지 2조2000억 원 넘게 순매수로 돌아섰다. 최근 수년간 매도 공세로 외국인들의 한국주식 보유비중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은 추가 매수에 기대를 걸게 한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은 지난 2004년 말 42%에 달했으나 현재 28%로 급감한 상태다.유동성의 힘이 감지되자 일부 증권사들은 2분기 지수 목표치를 올리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최근 유동성 랠리 가능성을 점치며 2분기 코스피지수의 목표를 1388에서 1490선으로 높였다. 이 증권사의 강현철 연구원은 “현재 경기가 저점 국면을 통과하는 중”이라며 “한동안 유동성 랠리 국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장의 초점이 기업 실적으로 옮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다만 시중에 현금성 자산은 풍부하지만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은행과 KTB투자증권에 따르면 본원통화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지난해 10월 7%에서 올해 초 27%까지 크게 올랐지만 광의의 통화인 M2 증가율은 이 기간 14%에서 11%대로 오히려 하락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화폐공급이 늘더라도 민간부문의 화폐수요가 커지지 않으면, 즉 화폐의 유통속도가 빨라지지 않으면 통화량 증가가 실물을 부양하는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해정 대신증권 연구원도 “시중에 현금성 자산은 넘쳐 나지만 비현금성 자산을 포함하는 유동성 지표의 증가속도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며 “유동성 장세를 기대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회사채 ‘BBB-’급의 월 평균 수익률은 1월 11.95%에서 4월에는 12%대 초반으로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AA-’급과 달리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는 아직 국고채와의 스프레드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최성락 SK증권 연구원은 “투기등급 회사채 시장은 아직 충분히 풀리지 못했다”며 “증시가 유동성 랠리에 본격적으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경기회복과 기업 이익 개선 시그널이 동반돼야 한다”고 진단했다.유동성 장세가 본 궤도에 오르려면 개인 투자자들이 컴백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3월 코스피지수가 200포인트가량 급등했지만 개인은 이 기간 유가증권 시장에서 2조 원 가까이 순매도했다. 강우신 기업은행 PB팀장은 “증시가 살아나면서 주식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이 멈칫하고 있다”며 “기존에 투자한 주식과 펀드의 수익률이 살아날 때까지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박해영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