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pset Style
세련됐다, 멋있다, 잘 입었다…… 보통 우리는 옷을 보고 그 사람의 센스를 판단하곤 한다. 지금의 우리에게 ‘잘 입었다’의 기준은 무엇일까?욕의 패션, 예술, 디자인 전문 서적 출판업체인 애술린(assouline)사는 4월 중 집셋(GYPSET)이라는 제목의 스타일 서적을 펴낸다. 집셋은 집시와 젯셋족(jet-setter: 전용 제트기로 여행을 즐기는 상류층을 의미하는 말로 고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한다)의 합성어다.집셋 역시 여피(Yuppies)나 젯셋족(Jet setter), X세대, Y세대처럼 시대의 새로운 흐름을 대표하는 신조어다. 이 책에 따르면, 집셋족은 젯셋의 세련됨을 지니고 있지만 너무 완벽하기보다는 편안하고 안 꾸민 듯한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이들로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등을 주축으로 하는 집단이라고 소개된다.언뜻, 집시가 세련됐다고? 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집시와 젯셋의 세련됨이 결합한다고 해서 갑자기 젯셋족이 노숙자 스타일을 입지는 않을 테고, 그렇다고 기이할 정도로 빈티지한 아티스트가 말쑥한 신사정장을 차려 입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과연, 세련된 집시들은 어떤 옷을 입을까. 나탈리 포트만의 연인으로 유명세를 탔던 미국의 포크락 싱어송 라이터인 디벤드라 반핫(Devendra Banhart)이 애써 포멀한 스타일을 입는다면 대략 집셋과 가깝지 않을까?우선, 머리는 자고 일어나 바로 튀어나온 듯 산발을 해줘야 한다. 여기에 약간의 곱슬은 매우 지적인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슈트는 비록 고급스러운 디자이너 라벨이지만, 몸과 적당한 공간을 두고 있으며, 약간의 구김도 굳이 펼 필요가 없다. 완벽한 격식에서 한 걸음 정도 물러나서 기본적으로 타이는 생략해주는 센스를 발휘하며, 약간의 캐주얼한 아이템들을 매치시켜 자연스러움을 더한다.아닌 게 아니라 2009년 봄, 여름 시즌 런웨이를 보면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처럼 약간은 풀어진 듯한 ‘세련된 편안함’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시즌의 버버리, 겐조, 랑방, 폴 스미스, 요지 야마모토 등은 마치 휴가라도 갈 듯한 자연스럽고 여유 있는 세미 포멀 스타일들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클래식한 스타일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제냐에서도 노타이의 코튼 느낌 슈트나 편안한 카디건 스타일링이 등장했다. 심지어 보테가 베네타는 일명 파자마 룩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일어나자마자 신문을 사러 갈 듯, 잠옷 위에 재킷을 서둘러 입은 바로 그 옷차림을 런웨이에서 보여준 것이다.사실, 조금은 보수적일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 편안한’ 룩은 조금 시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그 누가 파자마 차림으로 회사를 갈 수 있단 말인가. 런웨이의 스타일은 어디까지나 그 콘셉트를 최대화시켜 보여주는 것뿐이다. 소비자들은 그 뉘앙스를 이해하고, 그 철학을 받아들이면 된다. 세련된 편안함이 가져가는 뉘앙스는 다음과 같다. 첫째 너무 신상 티를 내지 말 것, 둘째 너무 완벽한 격식에 얽매이지 말 것, 마지막으로 고급스러움은 안으로 숨길 것이다.일본 디자이너 준야 와타나베는 리바이스와 콜래보레이션을 하면서, 데님의 겉모습은 유지하고 안감에 깅엄체크를 넣거나 가죽으로 트리밍을 대 클래식한 뉘앙스를 전달했다. 새로운 집셋 스타일을 위해서도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활용될 수 있다. 신상품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약간의 구김과 마치 오랫동안 입었던 듯 부드러워진 촉감을 갖고 있지만, 고급스러운 소재와 피팅감을 가지고 있어 후줄근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적어도 아우터 아이템을 위해서는 중간 이상의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하겠다. 그렇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깔끔한 룩을 고수하는 편이 낫다.또 하나 중요한 팁은 컬러의 선택이다. 조금은 입은 듯한, 조금은 편안한 룩에 컬러까지 침침하다면 한 마디로 우중충한 룩이 되기 십상이다. 이번 시즌에는 프레시한 느낌을 줄 수 있는 화이트 계열이 주목을 받지만, 사실 국내에서 화이트 슈트를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스타일링에 조금 자신이 있다면 자연스러운 화이트 계통의 컬러인 에크루 컬러를, 그보다는 조금 안정감을 주고 싶다면 밝은 회색 계통의 컬러나 네이비 컬러를 선택한다. 네이비 컬러를 활용할 경우 전체에 적용하기보다는 하나의 아이템에 포인트를 주는 것이 조금 더 신선하게 보일 수 있다. 네이비 재킷에 밝은 그레이나 화이트 계열 컬러의 팬츠, 또는 반대의 매치로 산뜻한 포인트를 잃지 말자.완벽한 격식에서도 한걸음 물러날 필요가 있다. 타이를 착용하기보다는 셔츠 단추 한두 개를 열고, 포멀한 베스트보다는 편안한 니트 카디건을 코디해준다. 여기에 딱딱한 서류가방 보다는 빈티지 뉘앙스를 갖는 조금은 캐주얼한 가죽 가방을 매보자. 특히 클래식한 옷차림에서 중요했던 바지 길이는 어쩌면 이 집셋 룩에서는 덜 중요할 수 있다. 약간 통이 넓어진 팬츠는 편안하게 동글동글 밑단을 접어 올림으로써 여유로운 스타일을 완성하기 때문이다.지나치게 꾸민 스타일은 더 이상 트렌디하지 않다. 환경적인 문제에서도 그렇고, 경제적인 상황도 그렇고, 시간이 지나면 버려지는 아이템들은 더 이상 멋지지 않을 뿐더러, 이러한 민감한 이슈들에 무관심하다는 눈총을 사기에 알맞다. 완벽하고 멋지게 연출하기보다는 조금은 자연스럽고 차분해진 룩으로 센스를 발휘해야 할 때다.이현주 퍼스트뷰코리아 패션컨설턴트©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