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왕)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나라,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위로 보잉 747이 날아다니는 신비한 나라, 고대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로 떠나보자.집트에 곧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계속 가슴이 설레며 두근거렸다. 이집트는 어려서부터 동경해오던, 수 없이 많은 인류의 비밀과 전설을 간직한 나라다.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도 잠시, 10시간 이상의 지루했던 비행도 어느덧 카이로 국제공항에 다다르며 막을 내리고 있었다. 저녁이라 사막의 피라미드를 볼 수는 없었지만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카이로의 야경은 생각보다 멋졌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피부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는 이곳이 아프리카임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이면서도 카이로는 많은 현대적 건물과 화려한 야경을 간직한 웅대한 규모의 근대 도시라는 인상을 주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이국적이란 느낌은 있었으나 여느 다른 도시와 큰 차이는 없었다. 고층 빌딩이 곳곳에 솟아있고 한강과 아주 흡사한 나일강 위로 솟은 카이로 타워는 마치 남산타워를 보는 듯 했다.이튿날 아침 카이로 전역에 울려 퍼지는 코란의 독경소리에 눈을 떴다. 근처에 회교 사원이 있는 것일까. 마치 불교의 불경과 같은 이 이국적인 가락이 새삼 낯선 땅에 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창문을 열고 카이로 시내를 둘러봤다. 이른 아침부터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카이로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상쾌한 기분으로 기자(카이로 서쪽 근교에 위치)의 피라미드를 향해 떠났다. 카이로 시내에서 40분쯤을 달렸을까.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함께 저 멀리서 웅장한 피라미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에 두근두근 가슴이 뛰어온다. 저것이 4000년의 역사와 신비를 간직한 인류 불가사의 중 하나인 피라미드란 말인가. 현장에서 본 피라미드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다. 마치 잠실야구장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실제로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잠실야구장보다도 더 크다고 한다.이집트인들은 현세보다는 저승에서의 영생을 믿었다. 파라오(왕)는 죽은 후에도 저승의 왕 오시리스 신으로 부활하기 때문에 피라미드는 내세를 위한 집으로 훌륭하게 지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인류 최고의 작품 앞에 넋을 놓고 있을 때 쯤 사막 한 가운데에서도 태양은 하루를 마감하며 뉘였뉘였 저물어 간다. 자연의 웅장함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은 모두를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로 만들어가고 있었다.배는 맑고 짙푸른 코발트 빛 홍해를 가로질러 시나이 반도로 향하고 있었다. 이 길은 그 옛날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로부터 탈출했던 바로 그 루트였다. 모세가 바다를 갈랐다는 홍해, 필자는 지금 이 역사적 사건을 간직한 바다를 건너고 있다. 그런 바다를 건너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지는 건 왜일까. 배가 출발하자마자 뱃머리로 나가 바다를 바라보며, 그 옛날 모세가 바다를 가르고 홍해를 건너는 모습들을 상상해보았다. 어떻게 이 넓은 바다가 갈라질 수 있었을까. 진정 이 바다가 갈라져서 육지를 드러냈을까. 그것은 과연 기적이었을까. 아니면 모세는 단지 자연의 법칙을 이용한 것이었을까.이집트란 나라는 전국이 다 신비와 미스터리의 역사를 지닌 경이로운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시나이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샤름엘 셰이크에 도착했다.샤름엘 셰이크는 한국의 관광객에게는 아직은 낯선 곳이지만 유럽인들에게는 이미 많이 알려진 휴양지다. 최근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인 카를라 부루니가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면서 더욱 유명해 진 곳이다.특별히 문화적이나 역사적인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닌 샤름엘 셰이크이지만 아직까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모든 것이 자연 상태인 순수함을 지녔다. 사람들 역시 해맑은 얼굴에서 이집트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아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집트인이나 외국인 여행자들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우정과 인간애를 나누었다. 이런 것이 여행의 참맛이 아닐까. 단조로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 낯선 친구들로부터 느끼는 쾌감과 이런 인간애를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세상은 아직 아름답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여행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이다.일주일 동안 샤름엘 셰이크의 자연에 갇혀 세상의 소식을 잊은 채, 자연이 들려 준 소식들을 벗 삼아 지낸 일상은 이처럼 생각의 변화까지도 느끼게 할 만큼 내 안의 자유를 일깨워 줬다. 자유는 맛 본 사람만이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듯이 샤름엘 셰이크에서 향유했던 자유는 어느새 내일의 홍해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듯하다.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 역시 시련의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시간이라는 개념에 휘둘리지 말고 1, 2년이 아닌 10년을 바라보는 통찰이 생긴다면 지금의 역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지나치고 다시 행복이라는 순간을 맞이하리라 확신한다. 어느 철학자가 그랬던가 ‘시간을 극복한 자만이 세상을 얻는다’고, 필자는 그 말을 믿는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지금,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아닌 버리기 위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마음 속 무거웠던 짐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책 한 권의 여유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글·사진 전광용 이오스여행사(www.ios.co.kr)대표, 여행 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