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of Tea

‘홍차(black tea)’라고 하면 우리는 노란색 립톤(Lipton)을 기억한다. 그러나 차의 종류는 부지기수다. 우리나라에서 즐겨 마시는 차가 있고 유럽에서 즐겨 마시는 홍차가 있다. 우리 눈에는 붉은 색조를 띠고 있어 붉을 홍(紅)자를 써서 홍차(紅茶)라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블랙 티’라고 한다. 이는 흑차(黑茶)라는 뜻으로, 발효된 상태의 검은색을 띤 찻잎을 의미한다. 찻잎이 검은 이유는 발효됐기 때문이다.차는 처음 영국에 들어올 때 음료보다는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됐다. 차 마시는 관습은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궁정에서부터 시작됐으며 17세기 중엽 네덜란드에서 자란 찰스 2세와 포르투갈에서 온 캐서린 왕비가 영국 궁정에 차를 소개했다.영국에서는 차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자 귀족층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차를 즐겼다. 게다가 영국의 공장주들은 술에 절어 있는 직공들에게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 마시기를 권장했다.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차가 독일의 맥주나 프랑스의 포도주 같은 대중 음료로 사랑을 받게 됐으며 프랑스에서는 와인이나 초콜릿, 커피 등 다른 음료에 밀려 차가 대중 음료로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1721년에 드디어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를 누르고 차 수입의 주도권을 잡게 되는데, 이때만 해도 홍차 대신 녹차에 우유나 설탕을 타서 마셨다. 차가 들어오기 전에 영국인들은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만을 먹었다. 1840년에 베드포드 백작 부인이 시장기를 없애기 위해, 혹은 오후의 가라앉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차와 케이크 과자 등 가벼운 식사를 차와 함께 들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게임 도중에 간편하게 먹기 위해 샌드위치 백작이 두 빵 조각 사이에 다른 것을 끼워서 먹는 방법을 발명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오후에 차를 마시면서 샌드위치를 먹는 습관이 점차 사교적인 행사로 발전했다. 바로 ‘애프터눈 티 타임(afternoon tea time)’이다. 아직도 보수적인 시골의 대저택이나 도서관에서는 오후에 티파티를 열곤 한다. 이즈음에 두 가지 차를 마시는 법이 생겼다. 한 가지는 ‘로 티(Low tea)’로서 상류층 사람들이 오후 4시께 다과회를 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서, ‘하이 티(High tea)’ 혹은 ‘밀 티(Meal tea)’는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6시께 저녁을 먹으면서 차를 마시는 것에서 유래됐다. 그런데 왜 ‘로’와 ‘하이’로 구분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로 티’는 다과회용 탁자로서 비교적 낮아서, ‘하이 티’는 다이닝 테이블에서 디너와 함께 먹는 데서 나온 말로 비교적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영국의 신분 차이가 차를 마시는 방법에도 나타나고 있다.유럽에서는 티가 대중화되자 티와 관련한 예법이 나타나고 이에 따른 다기(茶器), 즉 티 컵(Tea cup)과 포트(Pot)가 은과 도자기로 제작된다. 특히 영국에서는 매우 다양한 디자인의 다기들이 등장하면서 티를 즐기려는 귀족들을 자극하며 인기를 얻는다. 중국에서 들어온 다기들은 손잡이가 없었는데 점차 그리스 암포라(몸통이 불룩 나온 항아리 형식) 같은 고전적인 디자인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컵들이 나타나면서 티는 또 다른 문화 아이콘이 되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 요즘은 풍성한 앤티크 티컵과 티포트가 매력적인 컬렉션으로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아르데코 디자인의 셸리 컵, 빅토리안의 앤슬리, 로열덜튼, 민튼, 하비랜드 정도의 컬렉션은 250~550달러 정도면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다.‘티 가든(Tea Garden)’은 신사숙녀들이 야외에서 차를 마시면서 꽃구경, 연주회, 모닥불 놀이, 카지노 등을 즐겼던 곳이다. 커피하우스와 달리 성별이나 출신 계급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함께 모일 수 있었기 때문에 평등한 오락 장소로 각광받았다. 트라팔가 해전의 영웅 넬슨(Nelson) 제독이 해밀턴 엠마를 만난 곳도 바로 티 가든이다. 특히 초여름의 티 가든은 활기가 넘친다. 지금도 ‘가든’은 런던 교외나 유서 깊은 시골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엘리자베스 가든 혹은 사이온 가든과 같이 경관이 좋은 뜰에서 잘 가꾸어진 잔디와 장미 등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야외 테이블에서 차를 마신다. 메뉴는 대부분 차와 간단한 케이크로 간혹 오븐에서 갓 구운 감자를 곁들이기도 한다. 또 티 가든에는 ‘T.I.P.S.’라고 쓰인 작은 나무상자가 테이블마다 놓여 있었는데, 이것은 ‘투 인슈어 프롬프트 서비스(To Insure Prompt Service: 좀 더 빠르고 확실한 서비스를 위해)’의 약자다. 손님이 신속한 서비스를 원할 때 동전을 넣는 것으로 웨이터에게 팁을 주는 관습도 여기에서 비롯됐다.19세기 중반이 되면 영국과 미국의 ‘티 클리퍼(tea clipper)’ , 즉 차 무역선들이 중국 푸젠성에서 런던으로 차를 싣고 가는 경쟁이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했다. 영국과 미국의 ‘티 클리퍼’들은 중국의 광둥(Canton)에서 출발, 동지나해를 남하한 후 인도양을 지나 남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서 다시 대서양을 올라가 아조레스 제도를 지나 런던으로 들어온다. 그 후에는 예인선에 끌려 템스강으로 올라와 선착장에 누가 먼저 차 꾸러미를 하역하는가를 겨뤘다. 이 경쟁은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장거리 경주이지만 흔히 몇 분차로 승부가 결정되곤 했기 때문에, 그 아슬아슬한 레이스의 스릴은 온 유럽에 관심거리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스카치위스키의 상표로 잘 알려진 ‘커티삭(Cutty Sark)’도 원래는 차 수송선으로 선박 이름이다. 1856년 런던의 차 상인들은 차 수송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런던에 가장 먼저 차를 실어 오는 배에 톤당 1파운드의 상금을 주기로 했다. 커티삭 호는 바로 이 시기에 건조된 것으로, 당시 가장 빨랐던 서모필레(Thremopylae)호와 경쟁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남부의 던버튼에서 건조됐다. 전장 85m, 너비 11m, 총 963톤에 이르고 최고 시속 31.4km이며 마스트는 3개, 돛은 34장, 돛의 총면적은 3047㎡다. 커티삭 호는 95일로 수송 기간을 단축,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템스 항해학교에 기증돼 커티삭 보존협회 관리 아래 그리니치의 한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커티삭’이란 배 이름은 로버트 번스의 시 ‘샌터의 탬(Tam O’Shanter)’에서 마녀가 입고 있던 짧은 속옷이라고 한다. 지금도 영국 그리니치에 가면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의 자태 그대로 커티삭을 감상할 수 있다.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