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흐름 냉정히 따져 펀드 환매 결정해야 할 시점

● 마켓리더 -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알파우먼 - 고유선 대우증권 애널리스트● 베스트 스톡 - 호남석유화학● 스몰&스트롱 스톡 - 크로바하이텍● 지상 IR - KEBT 조정일 대표펀드 투자자들의 인내력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펀드 환매를 두고 고심해 오던 일부 투자자들이 연초 코스피지수가 1200선을 넘어서자 손절매에 나서고 있다. 올 들어 지난 12일까지 주식형 펀드에서 2350억 원이 순유출됐다. 3500억 원 이상 신규 자금이 들어왔지만 환매 규모가 거의 6000억 원에 달했다. 특히 해외 펀드 위주로 환매가 이뤄졌던 지난해와 달리 국내 주식형 펀드의 자금 이탈이 두드러지고 있다.미국의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6%에 달하는 등 글로벌 경제 한파의 골이 예상보다 깊어지면서 펀드 투자자들의 마음도 한결 조급해지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한계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경우 가계의 현금흐름(Cash Flow)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손실을 감수한 환매 성향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섣부른 환매는 오히려 독’이라고 강조하던 전문가들도 변동성이 중복되는 해외 펀드를 중심으로 환매를 권하는 등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펀드 투자 전략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제 고민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내 주식형 적립식과 거치식 펀드의 평균 매입 지수대는 각각 1569과 1603으로 현재까지 평균 손실률은 30%에 달한다. 900선까지 무너졌을 당시에는 손실 규모가 워낙 커 차마 환매에 나서지 못했지만 손실률이 30% 안팎 수준까지 줄어들자 연초부터 환매 규모가 커지고 있다. 앞으로 주가가 당분간 박스권에 머무르거나 또는 추가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펀드 환매 심리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현재 30% 손실률을 기록하고 있는 펀드의 경우 43%가 상승해야 원금을 회복할 수 있다. 코스피지수 기준으로 30% 손실 당시 1200이라면 1600대까지 올라야 원금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 토막 난 펀드는 100%, 60% 손실이 난 펀드는 150%가 올라야 한다. 글로벌 동시 경기 침체를 보이고 있는 최근의 여건을 감안하면 당분간 요원해 보이는 수준이다.펀드 환매 시 손실 규모도 중요하지만 최근에는 가계의 현금흐름이 핵심 고려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이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소득 감소 현상이 전 분야로 확산되는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 경제 하에서는 자산 가치 하락으로 현금의 가치가 한층 커진다. 30%의 손실이 발생해 1000만 원이 700만 원으로 쪼그라든다고 하더라도 손에 쥔 700만 원의 가치가 1년 전 1000만 원보다 훨씬 커진다는 얘기다.예·적금의 대안으로 펀드에 가입하고 있는 투자자의 경우 납입 규모가 가계의 현금흐름에 미치는 영향과 환매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 등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올해 국내에서는 건설 조선 업종을 필두로 자동차 반도체 등 산업계 전반에 인력 감축과 같은 구조조정의 한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하반기에도 경기가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을 경우 상대적으로 건실한 기업들도 경기 대응력 확보 차원에서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임금 소득에 의존하는 일반 가계가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현재 손실률만 따질게 아니라 가계의 현금흐름을 전체적으로 고려한 펀드 환매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현대증권 오성진 WM센터장은 “주식시장이 1200선 위까지 오르자 이른바 ‘펀드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고 일부 펀드를 정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환매 욕구가 한층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들은 위험성 중복 여부, 투자 기간, 적립 방법, 투자 대상 등에 따라 환매나 버티기 등의 결정을 달리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여러 개의 국내 주식형과 해외 펀드를 보유한 투자자라면 리스크 변동성이 겹치는 지역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가장 많은 펀드 자금이 몰렸던 브릭스(BRISc) 관련 펀드의 경우 동일한 방향성을 갖는 경향이 강하다. 브라질과 러시아의 주가는 원자재 가격과 동반 움직임을 보이고 전 세계의 생산 기지 역할을 하는 중국 인도도 주식시장이 유사한 방향성을 띤다. 전문가들은 브릭스 중에도 가장 유망한 국가 관련 펀드로 갈아타거나 환매를 통해 변동성을 줄일 것을 권하고 있다. 박용미 동양증권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약세장에서는 국가나 지역 간 증시의 상관관계가 높아진다”며 “올해 증시도 동조화가 예상되므로 투자 국가가 겹치거나 분산 효과가 떨어지는 해외 펀드는 우선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장기 투자자들도 무조건 묵혀 두기보다는 밸류에이션을 감안한 환매 전략을 짜야 한다. 최근 펀드에 가입한 고객이라면 약세장이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는 효과를 가져다주지만 장기 투자는 원금 회복과 점점 멀어지는 상황이다. 연내 현금 수요가 있거나 대체 투자처가 있다면 반등 때마다 환매에 나설 필요가 있다.부동산 등 경기 후행 펀드도 교체 대상이다. 리츠 등 부동산 관련 펀드는 경기 침체기에 더욱 부진한 성과를 가져온다. 과거 경기 침체기 리츠 지수는 오피스 빌딩의 높은 공실률로 일반 펀드에 비해 훨씬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리츠는 일반 기업과 달리 이익의 성장성이 크지 않아 상당 기간 전고점을 돌파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다 반등 폭도 상대적으로 작은 만큼 가능한 한 환매할 것을 권하고 있다.지속적으로 수익률이 부진한 펀드도 구조조정 대상이다. 대다수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2008년에도 수익률 상위 20개 펀드와 하위 20개 펀드의 수익률 격차는 2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침체기일수록 하위 20개 펀드의 수익률 만회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갈아타기’나 일시적 납입 중단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조완제 삼성증권 연구원은 “손실 규모가 워낙 커 상당수 투자자들이 펀드를 방치하면서 고통을 잊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한 진단을 통해 투자 전략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