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unhandy, it's cool

신 트렌드의 대명사인 기성복이 지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주문 제작에 6개월 이상 걸리는 신발과 가방을 위해 레디메이드 제품의 몇 배 이상 비용을 지불한다. 최첨단 기능을 자랑하는 전기면도기 못지않게 불편함을 과시하는(?) 일자 면도기가 뜨고 있고 데님 하나를 입으면서도 그 역사를 챙기기 위해 중간 점검을 해주는가 하면 6개월 이상 세탁도 하지 않고 내 몸의 움직임들을 새기는 구질구질함을 감내한다.소비자들이, 그것도 남성들이 ‘불편함’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전 같으면 물 한 컵도 따라 마시기가 귀찮아 갈증을 참던 남성들이 번거로움을 위해 기꺼이 돈과 시간을 들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생각할 수 없었던 드라마틱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에는 컷 스로트 101(Cut Throat 101)이라는 이름의 클래식 면도법 강의가 인터넷 메인 지면의 한가운데를 장식했다. 맨해튼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프리맨 스포팅 클럽(Freeman Sporting Club)이라는 곳은 남성복 매장 및 맞춤 양복점과 함께 이발소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 이발소에서는 작년 10월부터 스트레이트 레이저 셰이빙(Staight Razor Shaving)이라는 매우 클래식한 면도법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칼집에 접어 넣는 일자 면도기를 잡는 법부터 시작해 면도 크림 제조 기계에서 직접 만들어 내는 셰이빙 크림을 사용해 적당하게 힘을 주어 가며 면도하는 방법, 사용 후 면도칼을 손질하는 방법까지 완벽한 클래식 면도법을 배운다.비단 외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일자 면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40만 원대에 달하는 뮬러(Muhle)나 아트 오프 셰이빙(the Art of Shaving)의 클래식 면도기를 사기 위해 코트나 카메라도 과감하게 포기한다. 이들은 신나서 면도기를 손에 들었지만 익숙하지 않아 면도하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고도 하고 일자 면도기를 쓰기 위해 일부러 면도를 3일 정도 걸렀다고도 하며 사용하기가 너무 어렵다거나 영광의 상처를 얻었다는 리뷰들을 올리기도 한다. 번거롭기 짝이 없고 돈도 많이 들고, 심지어 상처까지 얻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들은 면도를 배우고, 면도기 세트를 사고, 또 시간을 들인다.한편 에스콰이어지는 2009년 1월 우에스(UES)라는 이름의 일본 진 매장을 소개했다. 이 매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카르테(Karte)’라는 제도를 데님에 적용했다고 한다. 카르테란 독일어로 ‘진찰 기록’을 의미하는 말이다. 일종의 데님의 일대기를 기록해 주는 것이다. 우에스에서 데님을 판매한 시점으로부터 각각의 제품에 대한 카르테가 시작되는데 구매자는 우에스의 데님을 입는 중에 정기적으로 자신의 카르테를 업데이트한다. 우에스에서는 해당 시점의 데님 상태에 따라 조언해 주며 필요하면 수선해 주기도 한다.스웨덴의 누디진(Nudie Jeans)이라는 데님 브랜드는 워싱하지 않은 상태의 데님을 판매한다. 그리고 구매자들에게 최대한 자주 입고 최소 6개월 이상 세탁을 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만의 생활 습관이 그대로 자국을 남겨 자신만의 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패션 전문 매거진인 WWD는 남성복 슈트로부터 슈즈에 이르기까지 맞춤복 카테고리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기성복보다 20에서 30%가량 비싼 맞춤 테일러링이 계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지난해 9월 프랑스의 대표적인 패션 명품 브랜드 랑방(Lanvin)은 파리 플래그십 맞춤 신사복 층을 개조했고 섀빌로 거리에 세워진 새로운 런던 매장에 맞춤 서비스를 제공했다. 역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지앙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e)도 직영 매장에 슈트, 셔츠, 코트 및 수제화를 위한 ‘특별 고객 서비스’를 론칭하는 등 늘고 있는 소비자들의 맞춤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리테일러 또한 예외가 아니다. 뉴욕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의 바니스 뉴욕 백화점은 맞춤 신사복 층을 마련했으며 런던의 헤롯백화점은 맞춤 서비스를 위한 공간을 확대했다.남성들은 이제 ‘시간’의 미학을 소비한다. ‘최신’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는 우리 사회에 과잉 소비와 거품 수요를 야기하고 금융 위기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면서 퇴장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소비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남성들은 ‘최신’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잠시 잊고 있었던 가치와 전문성, 정통과 안목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럭셔리다.이현주 퍼스트뷰코리아 패션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