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양극화 시대 ‘비싼 것이 제값한다’
황기에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자산 가치 양극화다. 투자자들이 ‘비싼 것일수록 제값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즘 같은 부동산 침체 국면에서도 최고급 부동산 상품에는 여전히 투자 문의가 활발하다. 최근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상품은 단연 100억 원대의 오피스 빌딩이다. 강남에 있는 지상 5층 이상 오피스 빌딩은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는 실정이다.일반적으로 서울 지역 오피스 빌딩 시장은 광화문·종로 일대와 마포·여의도 권역, 테헤란로 권역으로 구분되는데 이들 지역은 주로 법인 고객들의 차지였다. 하지만 최근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자산 매각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소위 ‘큰손’으로 불리는 고액 자산가들이 강남권 빌딩을 기웃거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테헤란로 주변은 오피스 빌딩 투자자들에겐 최고의 노른자위 땅으로 불린다.강남역 테헤란로 주변 오피스 빌딩은 매매가를 매기는 방식도 여타 지역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매매값을 산정할 때 사용하는 것은 대지의 3.3㎡당 가격인데 비해 테헤란로 일대는 연건평의 3.3㎡당 가격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테헤란로 변에 있는 엔씨소프트 빌딩은 연건평 기준 3.3㎡당 매매값은 3500만 원이지만 대지 면적으로 환산하면 3.3㎡당 매매값은 2억 원이 넘는다. 이면 도로에 있는 오피스 빌딩 값은 연건평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지난 2006년 3.3㎡당 2000만 원 하던 것이 지금은 2500만 원까지 치솟았다.테헤란로 일대를 중심으로 시작한 오피스 빌딩의 가격 상승세는 논현동 역삼동 등 강남구 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논현동 A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주택은 일반적으로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 이내를 역세권으로 정하는데 비해 오피스 빌딩은 통상 10분 거리까지 역세권으로 본다”며 “1분당 100m를 간다고 가정하면 지하철역 반경 1km 거리를 모두 역세권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그렇다면 투자 매력은 어떨까.“강남 오피스 빌딩을 구입하면서 은행 금리와 비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투자수익률이 생각처럼 좋지 않기 때문이죠. 3년 전만 하더라도 연 6%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3%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강남 오피스 빌딩을 선호하는 이유는 경기를 덜 타는데다 환금성이 좋아 매도 시 이익 실현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제이엠투자산운용 김요섭 대표)오피스 빌딩 전문 관리 업체 샘스가 조사한 8월 서울 지역 오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강남권 임대료는 ㎡당 3만2282원으로 한 달 전보다 0.4% 올랐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는 5.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공실률은 1.1%를 기록해 한 달 전보다는 0.1%포인트 오른 반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0.1% 포인트 하락했다.개인 투자자들이 강남 오피스 빌딩을 구매할 때 가장 중요시 하는 부분은 환금성 여부다. 매도가 쉬워 당장 현금으로 환산하기 쉬운 물건일수록 투자자들이 몰리게 마련이다. 매매 차익과 월 임대수익률은 그 다음 문제다. 일부 투자자들은 추후 자녀 양도에 대비, 아예 공동 지분 형식으로 빌딩을 매입하고 있다. 지역마다 편차도 커 홍대 신촌 가회동 평창동 삼청동 일대는 5년마다 손 바뀜이 일어나는데 비해 관철동과 인사동 등 종로구와 테헤란로 주변은 장기 보유를 희망하는 투자자들이 많다.이런 가운데 최근 강남 상권에도 조금씩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강남역 사거리에 삼성 타운이 조성되면서 이 일대가 삼성역을 누르고 강남 최고의 상권으로 부상하고 있다. 강남역 주변에서도 오피스 빌딩 값이 단기간 가장 많이 상승한 지역은 삼성 타운에서 시작해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다. 이들 지역은 지하철 신분당선이 개통되면 건물 가격이 교보타워사거리~강남역을 큰 폭으로 앞지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삼성타운 주변 건물 값 상승세가 건너편 강남역 태극당 주변으로 번지는 모습입니다. 이면 도로에 위치한 건물 값이 대지 면적 기준 3.3㎡당 1억~1억 5000만 원선까지 올랐습니다. 삼성타운 주변은 매물이 아예 없습니다. 이쪽이 이 정도면 삼성타운 주변은 3.3㎡당 2억 원은 족히 넘는다고 봐야 합니다.”(제이엠투자산운용 강보경 이사)이 때문에 최근 강남에서 지상 5~7층짜리 오피스 빌딩의 매매값은 15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일부 물건은 매매값이 200억, 400억 원에 육박하지만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은행 대출을 끼지 않고 100% 자기 자금으로 빌딩을 매입하고 있는 것. 아이알에셋 부동산중개 주청연 대표는 “금리 인상 등 경기 변화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고 오랜 시간 보유할 수 있는 것도 넉넉한 현금 동원력 때문”이라고 말한다.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테헤란로 주변에서는 모텔 등 숙박시설이 오피스 빌딩으로 간판을 바꾸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다. 역삼역과 선릉역 주변 숙박 시설들은 최근 경기 침체 여파로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서초동에 사는 서모 씨는 테헤란로 이면도로에 있는 지상 8층짜리 1653㎡(500평) 모텔을 최근 인수했다. 인수 이후 서 씨는 3.3㎡당 100만~150만 원을 들여 건물을 새롭게 리모델링할 계획으로 공사 업체를 물색하고 있다.그러나 가격이 꼭짓점에 이르렀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마땅한 대체 수단이 없어 강남·송파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세가 가팔랐지만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임대료가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안태옥 MJC 대표는 “투자금이 늘어난 대신 임대료는 그대로여서 수익률은 과거에 비해 2~3% 낮아졌다”며 “경기 침체로 임대료 연체가 늘어나게 되면 오피스 투자에 대한 환상은 조금씩 깨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아직까지는 매도자 위주의 시장이지만 부동산 주변 상황을 놓고 보면 언제든지 매수자 위주 시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상투론자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이런 때일수록 가급적 저가 매입을 통한 수익률 향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소한 6~7% 정도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어야 안전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가급적 공실률이 낮은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면도로에 있다고 해도 건물 앞 도로가 4m 미만이면 차량 통행 문제로 임차인이 외면할 수 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에도 이면 도로에 있는 건물 중 진입도로가 좁은 건물이 직격탄을 받은 바 있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 이들 지역의 건물 값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안 대표는 “오피스 빌딩은 최소한 5년 이상 보유하는 중·장기 투자 상품이다. 3년 보유 후 팔더라도 양도세가 35%에 달한다”면서 “금리 상승에 대비, 대출보다는 자기 자본 비율을 최대한 높여 매입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realsong@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