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사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억 원 이상의 자산가들은 금융 투자보다는 상속·증여에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재산이 많을수록 재산의 이전과 유지에 관심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재산이 적을수록 투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실제 고액 자산가들과 상담하다 보면 자녀나 배우자에게 조기 증여하는 것이 유리한지 문의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러면 과연 왜 조기 증여하는 것이 그들의 관심 사항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조기에 재산을 증여하는 것은 미래의 자산 가치 상승이 예상되는 자산을 저평가된 시점에 낮은 평가액으로 증여세를 신고하고 시간에 따른 가치 상승분을 고스란히 추가적인 세금 부담 없이 이전할 수 있다는데 가장 큰 매력이 있다. 나중에 상속세 계산 시 상속 재산으로 합산한다 하더라도 시세 상승 후의 금액을 합산하는 것이 아니고 당초 증여 시의 금액을 합산하기 때문에 이르면 이를수록 유리한 것이다.증여재산공제액을 무시하고 현재 자녀에게 1억 원을 증여해 1000만 원의 증여세를 부담하고 나서 자녀가 증여받은 금액을 펀드나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해 재산 가치가 상승하는 경우에도 추가로 증여세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 또 증여받은 자산은 자녀가 미래에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자금 출처가 확실한 재원이 될 수 있다.증여 재산의 종류별로 보면 나이가 어린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 장기간 투자할 것을 예상한다면 현금성 자산을 증여하는 것보다는 자산 가치의 상승이 예상되는 부동산을 증여하는 것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현금의 가치는 전액 노출돼 신고 되지만 부동산의 경우는 시가(유사매매사례가액 등)가 없는 한 기준시가로 가치를 평가해 시가 대비 80% 정도로 저평가되기 때문에 유리하다.주식의 경우에는 부모가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는 경우 출자지분을 증여하면 유리하다. 나중에 증여하는 경우에는 증여 시점에서 주식을 평가한 금액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최초 설립 시보다 낮은 금액으로 지분을 증여하는 것이 낫다. 다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에는 증여세를 포함한 취득·등록세, 국민주택채권 매입 비용 등의 현금도 함께 증여해야 추가적인 증여세 부담을 피할 수 있다. 또한 현행 증여세는 재산을 증여받은 자(수증인), 증여하는 자(증여자)별로 증여세를 계산하며 10년간 합산하면서 초과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것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10년 이후에 재증여한다면 다시 합산 기간을 시작할 수 있다.예를 들어 부모가 2억 원을 자녀에게 증여하면 공제액을 무시하고 3000만 원의 증여세를 자녀가 부담해야 하지만 부모로부터 1억 원, 장인으로부터 1억 원을 증여받는 경우라면 별도 계산이기 때문에 2000만 원의 증여세만 부담하면 된다. 10년간 증여인별, 수증인별로 합산하기 때문에 증여자나 수증자의 수가 많을수록 전체적인 세 부담은 줄어들게 된다.이와 함께 증여 재산 공제도 배우자는 6억 원, 직계존비속으로부터 받는 경우에는 3000만 원이며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1500만 원을 공제받을 수 있고 합산 기간(10년) 후에는 새로 공제받을 수 있다. 자녀가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사업을 하면 부모가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상이거나 9%보다 낮은 이자를 받는 것으로 계약하면 지원하는 금액이 1년 내 1억 원 이상인 경우 대출 금액이나 9%와의 차액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하고 있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최근 조기에 재산을 이전할 수 있는 시점을 놓치고 토지 보상이 활발해지면서 토지 보상금을 수령하기 전에 자녀들에게 미리 증여를 통해 농지 등을 넘기려는 부모님들을 상담한 적이 있다.사전증여로 절세하고자 하는 의도는 바람직하지만 검토하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토지를 증여하고 난 후에 그 토지를 처분하거나 수용 당하게 되면 세금을 더 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감면을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8년 이상 거주하면서 경작하던 농지를 자녀에게 증여한 후 토지 보상이 이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녀가 자신의 직업이 있고 고향으로 내려와 경작할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세법상 비사업용토지로 보아 토지 보상금 수령 시 60%의 중과세율이 적용돼 차익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그렇다면 토지 보상이 예상되고 부모가 연로하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8년 동안 재촌자경요건, 즉 농지 소재지에 거주하면서 직접 경작하는 요건을 충족한 부모가 토지 보상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토지 보상 시 1억 원에 가까운 양도소득세 감면을 받을 수 있으며 내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2억 원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또 부모가 연로하셔서 사전증여로 재산을 정리하고자 할 때는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전증여를 하게 되면 무조건 절세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상속 전 증여를 하더라도 상속인에게 증여한 경우에는 사망일로부터 10년 이내 증여분은 상속 재산에 포함돼 큰 절세 효과가 없다. 그리고 부모님 사망 이후 토지 보상을 받게 되는 경우 그 토지를 상속으로 취득했느냐, 증여로 취득했느냐에 따라 세 부담의 차이가 매우 크다. 상속으로 받은 경우 상속일로부터 3년 이내 토지 보상이 이뤄지면 부모의 보유 및 경작 기간이 합산돼 8년 이상 재촌자경한 것으로 보아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하지만 증여로 토지를 취득하게 된 경우에는 증여일부터 취득한 것으로 본다. 즉, 부모의 보유 및 경작 기간이 합산되지 않는다.따라서 부모가 연로하시더라도 증여보다는 상속으로 농지를 받는 것이 절세에 도움이 된다. 단순 증여를 하는 것보다는 상속으로 받거나 부모가 보상을 받는 게 중과세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얘기다.한 가지 더 알아두어야 할 점은 배우자 간 증여 시 증여일로부터 5년 이내에 양도 시 취득가액이 증여 시점의 금액이 아니라 증여자의 당초 취득 금액이 된다는 부분이다. 상황에 따라선 훨씬 더 많은 세 부담을 할 수도 있다.즉, 현재 시세가 6억 원이며 2억 원에 취득한 주택을 부인에게 증여하면 배우자 증여공제액이 6억 원 이하이기 때문에 부담하는 증여세는 없다. 하지만 5년 이내에 8억 원에 양도하는 경우에는 양도차익(8억-6억 원)인 2억 원에 대해서 양도세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당초 취득 금액인 2억 원과 8억 원의 차이인 6억 원에 대해서 세 부담을 해야 한다.따라서 대부분의 증여가 가족 간에 이뤄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증여일로부터 5년 뒤에 처분해야 추가적인 세 부담을 피할 수 있다. 당초 납부한 증여세는 환급되지 않고 필요 경비로 인정되긴 하지만 절세 효과가 미미하다. 그리고 증여 당시에 부인이 부담한 취득세와 등록세는 경비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내게 된다. 내년부터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직계존비속 간 증여한 경우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하게 된다.증여를 검토하는 경우 단순하게 절세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빨리 해야 한다고 접근하기보다는 증여를 받은 사람이 계속 보유할지, 보유하는 경우에 자산 가치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에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박재운 하나은행 PB본부 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