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경제괴물, 서브프라임의 복수’

마디로 도미노식 금융 ‘쓰나미’다. 베어스턴스, 패니메이, 프레디맥,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AIG. 올 들어 세계 ‘빅5’ 투자은행(IB) 가운데 3개가 순식간에 파산하거나 팔려나갔다. 1, 2위인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도 떨고 있다. 미국의 양대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정부 소유로 넘어갔다. 전 세계에 7400만 명의 보험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최대 보험사 AIG는 850억 달러의 긴급 수혈을 받고 생명은 연명했으나 여전히 시한부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전 세계 금융권이 ‘다음 타자는 누구냐’는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60여 년간 글로벌 금융시장을 주름잡으며 미국 금융공학의 상징으로 꼽히던 ‘파생상품’이 괴물이 돼 돌아왔다. 이제 누구도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 대형 IB의 파산 소식에 ‘블랙 튜즈데이’라고 불릴 정도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한 9월 16일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터널의 저편에서 보이는 불빛은 터널 끝이 아니라 마주보고 질주해 오고 있는 또 다른 차의 불빛일 뿐”이라며 대형 금융 회사의 추가 도산을 전망했다. 그동안 ‘우리는 별로 손해 본 것이 없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 온 국내 금융 회사들도 이제 사정권에 들어왔다. 당장 주가연계증권(ELS) 등으로 인한 손실이 발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초단기 콜금리가 치솟는 등 자금 조달에도 비상이 걸렸다.시간이 지날수록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금융 환경에 기관은 물론 개인 투자자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21세기 경제괴물, 서브프라임의 복수(에가와 유키오 저, 김형철 편역, 선암사 간)’는 책 제목에서부터 강력한 인상을 던져준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전개 과정과 이후의 투자 전략을 담은 이 책은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가 다소 잠잠해진 지난 4월 초 번역, 출간됐다. 서서히 긍정론이 힘을 얻던 시기여서, 사실 ‘출간이 뒤늦은 감이 없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연초보다 더 큰 괴물로 돌변한 서브프라임 후폭풍에 직면한 현 상황에서 오히려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듯하다. 편역의 형태를 띠지만 일본인 저자의 분석 내용에 한국적 상황을 적극 반영해 현실감을 크게 살렸다. 단순한 번역서에 그치지 않고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부동산 전문가(아기곰)까지 동원해 완성도를 높였다. 책의 구성에서부터 시선을 끈다. 1부 미국발 금융 대지진은 쓰나미로 돌변한 서브프라임 후폭의 연쇄 반응과 이로 인한 미국 일본 중국의 경제 위기를 짚고 있다. 2부와 3부는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과 문제의 전모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미국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헤치면서 어떻게 문제가 유럽 등 타 대륙으로까지 확대돼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4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던지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의문과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을 짚고 있다.책의 마지막 부문은 일본인 저자가 다루지 않은 서브프라임 사태와 한국 경제의 상관관계와 정책적 시사점을 밀도 있게 다루며 향후 우리의 대응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서브프라임 파장이 일파만파가 확산되고서야 원인과 대책을 찾느라 부산을 떨고 있는 국내외 금융 회사에 권할 만한 책이다. 수박 겉핥기식 내용이 홍수를 이루면서 오히려 큰 혼란을 느끼고 있는 투자자들도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서브프라임에 대한 수수께끼가 실타래처럼 풀린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추천사에서 “글로벌 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21세기 경제괴물, 서브프라임의 복수 (에가와 유키오 저, 김형철 편역, 선암사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