즘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추진하는 정책과 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 1년 이상 끌어온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이제는 막바지에 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조짐들이 부분적으로 감지된다.무엇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유동성 지원 방식이 바뀌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금리 인하와 같은 간접 지원에서 올 3월에는 국채임대대출(TSLF)과 프라이머리딜러대출(PDCF), 9월에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에 공적자금 투입 등을 통해 유동성 위기와 신용 경색을 겪고 있는 금융사를 대상으로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이런 방식을 통해 확보된 유동성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파악된 부실과 잠재 부실 규모와 맞먹는다. FRB가 확정 발표한 유동성 지원 규모를 보면 TSLF 2000억 달러, 양대 모기지 업체의 잉여 자본금 요건 완화에 따른 유동성 유발액과 공적자금 투입 4000억 달러, 환매채(RP) 방식 1000억 달러, 선진국 공조를 통한 3500억 달러, AIG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850억 달러 등 무려 1조 달러가 넘는다.또 부실 자산과 채권을 관리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높은 부실 자산과 채권에 대해 부시 행정부와 FRB는 과거 1980년대 저축대부(S&L) 조합 사태 시 정리신탁공사(RTC)와 같은 부실 채권 매입 기구를 설립해 직접 매입해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이 같은 조치는 그동안 부실 자산과 채권의 처리를 원칙적으로는 민간 자율에 의해 처리하겠다는 방침에서 이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의도다. 다시 말해 앞으로 발생한 부실 자산과 채권은 미국 정부가 보증을 서거나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유동성 부족보다 더 큰 문제로 보고 있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했다.과거 금융 위기를 겪었던 나라들의 경험을 보면 최근과 같은 미국의 유동성 지원과 부실 자산 관리 방식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면 금융 위기는 종착역에 다다르고 일정한 시간이 경과된 후 자산시장과 실물경기가 따로 노는 차별화(de-coupling)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관례다.앞으로 미국 경기는 그동안 주가와 부동산 값 하락에 따른 역(逆)자산 효과와 부실 채권 처리 과정에서 발생할 대규모 해고 사태 등에 따른 구조조정의 역효과로 침체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자산시장은 증시와 부동산 시장 순으로 반등하다가 일정한 시간이 경과된 후 부(富)의 효과가 나타나면 소비와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든다. 요즘 뉴욕 월가에서 주가 예측 기법으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도 이 같은 경험과 논리로 만들어진 이론이다.자산시장 가운데 가장 먼저 반응하는 증시를 보면 부실 자산과 채권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많이 풀린 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올라가는 이른바 ‘유동성 장세’가 오는 점도 금융 위기 국가들의 정형화된 사실(stylized fact)이다. 이번에도 금리 인하와 직접 지원 방식, 그리고 레버리지 효과까지 합할 경우 이미 미국 국민소득(GDP) 1년 규모에 해당하는 돈이 풀렸다.9월 중순 이후 슈퍼 리치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가치(value)에 비해 가격(price)이 많이 떨어진 자산을 대상으로 체리 피킹(cherry picking)에 다시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정크 본드와 주택 경매 물건을 매입하다가 최근에는 금융주를 중심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자산시장 움직임과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하지만 바닥론과 같은 낙관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부실 규모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지금까지 파악된 부실 규모만 하더라도 종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헤지 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는 “이번 모기지 사태에 따른 부실 규모가 1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비슷한 맥락에서 미국 경제가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모기지 사태 이후 ‘부동산 등 자산시장 거품 붕괴→ 금융사 연쇄 도산→ 금융시장 대혼란→ 경기 침체’라는 경로가 1990년 이후 일본이 장기 침체를 겪을 당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늑장 대응과 부적절한 정책 수단으로 경기 침체 국면을 더 연장시킨 일본 정부와 달리 미국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적절한 정책 수단으로 신속하게 대응해 나가는 점을 감안하면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다행히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증시가 공적자금 투입과 부실채권 정리기구 설립 이후 추세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요즘 주가가 상승하는 문제를 놓고 약세장 속에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베어 마켓 랠리(bear market rally)’냐 아니면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진입하는 ‘트렌드 랠리(trend rally, 혹자는 불 마켓 랠리-bull market rally-라고도 부름)냐에 대한 논란이 무성하다.만약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 베어 마켓 랠리의 성격이 짙다면 현 시점에서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기회가 아니라 또다시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을 토대로 알아보자.이 이론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어떤 국가의 경기가 침체 국면에 빠지면 이때의 주가는 실제 경제 여건보다 더 낮게 형성된다. 경기 침체로 투자자들의 심리가 ‘비관’ 쪽으로 쏠리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기 때문이다.일정 시간이 지나면 투자자들 사이에는 경제가 개선되고 있다는 견해가 나오기 시작한다. 점차 투자 심리도 ‘낙관’ 쪽으로 옮겨오면서 경기가 더 침체되더라도 주가는 먼저 오르기 시작해 그 후 주가 상승 속도가 경제 여건 개선 속도보다 빨라지는 1차 소상승기를 맞는다.이 추세가 지속되면 주가 상승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서 ‘낙관’ 쪽으로 몰렸던 투자자들의 쏠림 현상이 흐트러진다. 결국 향후 주가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얽히면서 맴돌이(조정) 국면을 맞게 된다. 이때 경기와 기업 실적이 뒤따라오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경기와 기업 실적이 받쳐주면 투자자들의 심리가 재차 ‘낙관’ 쪽으로 쏠리면서 주가가 1차 소상승기보다 더 오르는 2차 대세 상승기를 맞는다. 이때는 악재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시장 자체적으로 흡수해 주가 흐름에는 장애 요인이 못된다.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순간 거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한동안 ‘낙관’쪽으로 쏠렸던 투자자들의 심리가 흐트러지면서 재차 맴돌이 국면을 맞는다. 과거와 달리 이때는 금리 인상 등 악재에 대해 투자자들이 과민하게 반응한다.이 상황에서 경기와 실적이 뒤따라오면 3차 소상승기를 맞게 된다. 반대로 경기와 실적 악화가 지속될 경우 투자자들의 심리가 ‘비관’ 쪽으로 쏠리면서 주가는 실제 경제 여건보다 더 떨어지는 과잉 조정 국면에 직면한다. 경우에 따라선 투자자들은 심리적인 공황상태(panic)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소로스의 이론대로라면 최근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1차 소상승기에 해당한다.이 기간에서는 실물경기는 계속 침체되는 데도 불구, 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베어 마켓 성격이 짙어 보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실물경기가 따라가지 못하면 또다시 주가 수준이 높지 않느냐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조만간 1차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동안 주가 상승에 따른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로 소비와 경기가 회복될 경우 1차 조정 시의 장애 요인이 해소되면서 주가가 더 크게 상승하는 2차 대세 상승기가 찾아온다. 추세적으로 보면 베어 마켓 랠리도 상승 국면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이런 측면에서 요즘 뉴욕 월가에서 대표적인 낙관론자인 바톤 빅스와 1987년 블랙 먼데이를 예견했던 마크 파버 간에 벌어지는 논쟁도 어느 시기까지 감안했느냐에 따른 다른 해석으로 풀이된다.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근 주가가 상승하는 문제를 놓고 베어 마켓 랠리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은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중요한 것은 최근의 주가 상승세가 앞으로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초 여건인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공교롭게도 공적자금 투입과 부실 채권 정리 기구 설립 이후 뉴욕 월가에서는 향후 주가 흐름과 관련해 중요한 두 가지 경기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하나는 이번 경기가 언제부터 회복될 것인가 하는 이른바 ‘단기 경기 저점’ 논쟁이다. 현재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로렌스 소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월가 투자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내년 상반기(혹은 1분기)를 저점으로 하반기부터는 회복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에 대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와 전미경제연구소(NBER) 등은 이번 경기 침체가 최소한 내년 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한다. 증시 입장에서 경기 저점 논쟁은 주식을 언제 매입할 것인가와 관련해 아주 중요한 문제다.또 하나의 경기 논쟁은 2010년 이후 미국과 세계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중·장기 경기 사이클’ 논쟁이다. 버블론의 저자로 유명한 해리 S 덴트는 인구 통계학적인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196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가 2010년 이후에 은퇴하기 시작하면 197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에코 붐 세대가 다시 핵심 소비 계층으로 편입되는 2020년대 초까지는 경기가 대공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반면 미국의 와튼스쿨 교수인 제라밀 시겔 등은 덴트의 주장은 갈수록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후발국에 비해 미국의 위상을 너무 높이 본 것을 단점으로 지적하면서 2010년 이후에도 중국, 인도 등에 의해 세계 경기가 지탱해 나갈 수 있다는 글로벌 해법(global solutions)을 제시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벌어지는 이 사이클 논쟁은 장기 포트폴리오와 자산 배분 전략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주가가 경기에 약 6개월에서 1년 정도 앞서 가는 점을 감안하면 덴트의 시각대로 2010년 이후 미국과 세계 경기가 대공황에 빠지고 글로벌 증시가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갈 경우 2009년에는 그때까지 보유한 주식을 처분해 수익을 거둬들이고 안전 자산인 국채나 우량 회사채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최근 벌어지고 있는 단기적인 경기 저점 논쟁과 중·장기적인 경기 순환 논쟁을 조합하면 ①내년 하반기부터 회복한 경기가 2010년 이후에도 지속되거나 둔화된다고 하더라도 연착륙한다는 장기 낙관 시나리오 ②내년 하반기부터 회복한 경기가 2010년 이후 다시 침체되는 단기 낙관 시나리오 ③2010년 이후에나 경기 회복이 가능하다는 단기 침체 시나리오 ④이번 사태에 따른 경기 침체가 2010년 이후까지 연장된다는 장기 침체 시나리오 등의 네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이에 대한 결론은 모기지 사태와 미국 경제의 위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다를 수 있다. 일단 모기지 사태와 관련해서는 과거 금융 위기 국가의 경험과 미국 경제의 복원력, 미국 정부의 신속한 정책 대응 등을 감안하면 시기가 문제지 경기는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갈수록 글로벌화가 급진전되는 시대에 있어 2010년 이후 인구통계학적인 관점에서 미국 중심의 장기 침체 가능성은 국가 간 인구 이동과 상호 경제 의존도에 의해 충분히 보완될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주식 및 주식형 상품에 투자하는 것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펀드에 가입하는 것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한상춘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 겸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