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파슨스 사장

사업이 뭡니까” 한미파슨스 김종훈(59) 사장은 12년째 이런 질문을 받아오고 있다. CM(Construc-tion Management) 사업을 처음 시작한 1990년대 후반보다는 다소 덜하긴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에게 CM의 개념을 이해시키려면 설명이 길어진다. “한마디로 CM 업체는 건설 발주사를 대신해 건설 기획에서부터 설계 발주 공기 사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시어머니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건설 과정을 세세히 알지 못하는 정부 기관이나 개별 기업이 모든 공사 과정을 관리 감독하려면 당초 예산이나 계획보다 길어지는 게 다반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주요 건물이나 플랜트 공사 시 대부분 전문 CM 업체가 맡아 진행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건설사 엔지니어로는 드물게 삼성의 S급 인재로 뽑힐 정도로 잘나가던 임원자리를 박차고 나와 1996년 CM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서 사업에 뛰어든 것도 해외 현장 소장 시절 선진국 업체들과 협업 과정에서 CM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개념도 생소하거니와 사업 성공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발주에서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먹이사슬 구조에 익숙해 있는 건설사에 CM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김 사장은 회고했다. 현재는 한차례라도 CM을 경험한 발주사가 다시 사업을 맡기는 비중이 60%에 달할 정도로 국내 기업들의 인식도 크게 변했다. 특히 2002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CM을 맡아 당초 계획보다 4개월 앞당겨 사업을 마무리한 것은 CM에 대한 국내 발주사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 사장에게도 아직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CM 용역이다.불모지에서 출발, 오는 10월 주식시장 상장을 앞둔 회사로까지 성장한 한미파슨스는 독특한 기업 문화를 가진 대표적 혁신 기업이다. 설립 초기 선진국의 노하우 습득을 위해 미국 CM 회사인 파슨스가 45%의 지분을 참여하는 합작회사로 출발했으나 2년 전 100% 종업원 지주제로 전환했다. 사업 초기 임직원들에게 ‘직장인의 천국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직원은 10년 이상, 임원은 5년 이상 근속 시 2개월의 유급 안식년을 실시하고 전 직원이 참여하는 사회 공헌 활동도 12년째 이어오고 있다. 김 사장은 올해 연말 임원급 가운데 차기 사장 후보를 인선, 실무를 물려주고 복지재단과 회사의 차세대 먹을거리를 고민하는 2선으로 한발 물러나는 새로운 실험을 준비 중이다. 내달 코스피 상장을 추진 중인 김 사장을 만나 향후 사업 계획과 국내 건설 산업의 현황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증시 상황을 봐야겠지만 현재는 2만 원 안팎에 250만 주(약 500억 원)를 발행할 계획입니다. 회사의 수익 구조나 지분 구조만 고려할 때는 상장 필요성이 없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인력 강화와 함께 해외의 CM 관련 회사를 인수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CM은 선진국형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미국 유럽 호주 등이 우리보다 앞서 있습니다. 현재 호주의 건설비용 산출 전문 업체를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또 대형 건축 공사가 집중돼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현지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고 내년에는 미국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자금 사정 때문에 활발히 전개하지 못했던 소형 CM 프로젝트인 ‘e집’ 사업도 보다 강화할 계획입니다. e집은 노후 주택 단지의 리모델링에서부터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관리하는 CM 사업입니다.”“미국의 경우 포스터 힐 URS 등 CM 전문 업체들이 상당수 상장돼 있고 시장 평가도 오히려 일반 건설 업종의 평균 주가수익률(PER) 17.6배보다 30% 높은 22배 수준입니다. 매년 높은 성장성을 유지하고 있는데다 일반 건설 업종에 비해 높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CM 분야는 최근 연간 20~30%의 성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해외 수주 목표를 3500만 달러로 잡았다가 1억 달러로 높여 잡은 것도 이 같은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것입니다. 10월 IPO 후 투자자들에게 역동적인 시장의 성장성을 반영한 다양한 이벤트와 뉴스를 전하는 회사가 될 겁니다.”“건설 유통 구조에 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섭니다. 현재 건설 유통 구조는 농수산물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이런 유통 구조는 고스란히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결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됩니다. CM의 가장 기본적인 역량은 유통 구조 단순화를 통해 비용을 낮추는 것입니다. 프로젝트 성패의 80%는 시공 전 단계에서 결정됩니다. 한미파슨스는 공기 단축 기술력과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건설 엔지니어링 노하우를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주택공사와 일부 사업장에 대해 이를 적용하고 있는데 결과가 성공적일 경우 일반 아파트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사실 미국을 제외하고 선정한 기준이라 미국 CM 업체까지 넣은 정확한 순위는 세계 40위권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죠. CM 분야는 글로벌 ‘빅 10’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데 2015년까지 10위권에 진입하는 게 목표입니다. 수주 1조 원, 매출 8000억 원 수준이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현재 세전영업이익이 10%에 못 미치고 있으나 2015년께는 이익률 15% 달성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중동뿐만 아니라 미국에 현지 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대형 CM 업체들과의 경쟁을 통해 핵심 역량을 키워나가기 위한 전략의 일환입니다.”“해외 플랜트 수주 능력을 갖춘 대형사의 수주는 중동 지역에 몰려 있고 아파트 분양에 매달려 온 업체들은 대안 없이 유동성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국내 건설 업체 규모는 전 세계에서 5위권이나 중동을 제외한 미국 유럽 지역에서 경쟁력을 갖춘 건설사는 없습니다. 유가 하락으로 중동의 플랜트 수주마저 꺾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제 질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컨버전스 시대를 맞아 건설 금융 정보기술(IT)이 한데 맞물려 돌아가는데 건설업은 전혀 주도권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비쿼터스 사례에 보듯 IT 업체에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마치 하도급 업체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다.”“현재 건설사의 위기는 버블에 취해 핵심 경쟁력을 키우지 않은 건설사와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버블의 씨앗을 뿌린 뒤 갑자기 정책을 180도 바꾼 정부의 공동 책임입니다. 2000년대 초반 규제 완화로 깃발만 꽂으면 분양이 되는 시장 상황에 건설 업체들이 만취해 있었습니다. 당시 모 건설사 최고경영자(CEO)에게 해외 사업을 제안하러 갔더니 ‘리스크 많은 해외 사업을 왜 하느냐’는 핀잔만 들었습니다. 이익 좋은 사업을 선별적으로 하겠다는 얘기인데 결국 리스크가 따르는 해외 사업은 하지 않겠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위기라는 칼럼도 여러 차례 쓰면서 경종을 울리려 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현 시점에서의 문제는 제2금융권와 연관된 건설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입니다. 자칫 잘못 다루면 한국판 서브프라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정책 측면과 시장 측면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된다고 봅니다.”“1인 가구 급증을 감안할 때 공급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봅니다. 선진국은 통상 전체 가구의 40%가량이 1인 가구인데 이를 소화하기 위해 주택 보급률이 120%에 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수도권 주택 보급률이 100%에도 훨씬 못 미치고 있습니다. 1인 가구와 잠재 수요, 1인 다주택 수요까지 감안한다면 현재의 공급 위축은 수년 후 시장의 복수를 낳을 개연성이 높습니다.”“기업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후계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게 평소 생각입니다. 미국 GE 대표가 잭 웰치 전 회장에서 이멜트 현 회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내에서 능력 있는 후계자를 공정한 절차를 거쳐 선발한 후 1년간의 수습 기간을 거쳐 대표 자리를 물려줄 생각입니다. 팀장급 이상 5명의 후보를 선발한 후 사외이사 등으로 구성된 선발위원회에서 연말이나 내년 초 결정할 계획입니다. 차기 대표가 경영 실무를 책임지고 저는 경영 전략과 사회공헌재단을 책임지는 쪽으로 역할을 나눌 계획입니다.”한미파슨스 사장서울대 건축공학과서강대 MBA한샘건축연구소삼성물산한미건설기술 대표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