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마사요시(일본어 孫正義, 한국어 손정의, 1957년 8월 11일~)는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로 현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다. 일본 사가현 도스 시 출생으로 재일 한국인 2세의 차남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야스모토(安本)라는 일본식 성이 아닌 원래 성인 손씨 성으로 일본에 귀화했다. 이에 대해 자신은 고대 중국 손자의 후예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 겅호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회장인 손태장은 그의 동생이다.’한국 위키피디아(ko.wikipedia.org)에 나와 있는 손정의(51) 회장에 대한 설명이다. 위키피디아엔 원래 사람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게 올라 있진 않지만 너무 짧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국적’과 ‘귀화’에 대한 설명이 강조돼 손 회장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관점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론 일본으로 귀화하면서도 ‘손’이란 성씨를 버리지 않고 ‘손 마사요시’란 일본 이름을 지은 그에게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다음은 2006년 6월에 나온 보도 기사. “손정의 회장은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일본 부호 40인’에서 자산 총액 70억 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 2위는 소비자 금융 업체인 다케후지의 다케이 전 회장(56억 달러)이 차지했다. (중략)”조금 미사여구를 동원한다면 손 회장은 ‘인터넷의 지배자(Master of the Internet)’, ‘21세기 사이버 시대의 승부사’로 불린다. 세계 최대 인터넷 재벌인 소프트뱅크를 일군 그에 대한 찬사다. 소프트뱅크 그룹이 깔아 놓은 인터넷 매체들을 통하지 않고는 인터넷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이렇다 보니 손 회장을 얘기할 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게이츠 회장이 일본을 방문할 때면 항상 손 회장과 골프 라운딩을 갖는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야후와의 합병 협상을 벌일 때는 세계 언론들은 야후재팬 최대 주주인 손 회장의 입을 주목하기도 했다.그렇지만 손 회장은 한때 일본에선 ‘이단자’ 취급을 받았다.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한 그를 일본의 기업 문화로선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이다. 물론 이제는 경원시할 수 없을 만큼 거물이 돼버렸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일본 경제를 구할 영웅’으로까지 묘사되고 있다. 일본에서 존경 받는 기업인 중 한 사람인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은 그를 ‘21세기형 비즈니스 리더’라고 칭송하고 있다. 벤처 기업 라이브도아의 호리에 회장이 몰락하면서 거품만 잔뜩 낀 벤처, 신흥 재벌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본이지만 손 회장을 폄훼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1957년생인 손 회장은 일제시대 대구에서 규슈로 건너온 탄광 노동자의 손자로 태어났다. 다행히 부친이 음식점 사업에 성공해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조센진’이란 멸시를 받으며 다른 재일교포처럼 그의 성격도 공격적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유별나게 ‘1등’에 집착하며 열등감을 극복하려 했다.‘손정의 신화’에는 빠지지 않는 예화가 있다. 한 달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이력이다. 일본도 아닌 미국 고등학교에서다. 그는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17세였던 197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어학연수를 통해 경험한 미국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 아는 내용의 교과서에 잠시 실망했던 그는 교장을 설득하면서까지 월반을 거듭해 1개월 만에 졸업 자격 검정 시험을 통과하는 배짱을 보였다.이렇게 거침없고 당돌한 그의 성격에 미국은 자기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신을 주장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게 됐다. 명문 버클리대를 졸업한 손 회장은 공부만 한 게 아니라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여기서 잠깐 일화 하나를 살펴보자. 청년 손정의는 어느 날 늘 들르는 슈퍼마켓의 서적 코너에서 과학잡지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를 구입했다. 거기엔 인텔이 발표한 i8080컴퓨터 칩의 확대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는 이 사진에 정신을 온통 빼앗겼다. 감동한 그는 그 사진을 오려 파일에 넣어 늘 갖고 다녔다. 화장실에 갈 때도 심지어는 잘 때도 베개 밑에 놓아 뒀다.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빌 게이츠도 이 잡지에 실린 같은 사진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그는 먼저 일본어를 키보드에서 누르면 영어 발음이 나오는 전자 음성 번역기를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마침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그는 약혼녀 마사미와의 결혼식 시간을 까먹고 말았다. 한 차례 미룬 결혼식에도 늦게 도착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두 사람의 결혼을 보증할 증인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그는 성당에 있던 흑인 경호원을 붙들고 사정한 끝에 겨우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지만 그런 집중력이 그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이렇게 개발한 전자 음성 번역기를 샤프사에 1억 엔에 파는 수완을 발휘했다. “20대에 깃발을 올리고 30대에 1000억 엔의 군자금을 마련한다. 40대에 승부를 벌여 50대에 완성하고 60대에 후계자에게 넘긴다”는 자신의 인생 50년 계획을 상쾌하게 시작한 것이다.1981년 손 회장은 일본 소프트뱅크를 설립, 드디어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소프트웨어 유통 시장에 주목했다. 당시 일본에선 전자오락과 개인용 컴퓨터 열풍이 불어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이어 설립한 컴퓨터 관련 잡지도 대히트를 쳤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골드러시로 돈을 번 것은 청바지 제조업을 하던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IT 산업의 인프라인 유통과 출판은 산업 성장과 함께 미래가 보장된 사업 아이템이었다.1994년에는 염원이던 주식시장 상장을 이뤄냈다. 1995년엔 컴덱스의 셀던 아델슨 회장과 담판을 지어 컴덱스를 인수했다. 같은 해 세계 최대 컴퓨터 관련 출판사인 미국 지프데이비스를 인수했다. 소프트뱅크 상장 이후 불과 2년 사이에 약 5000억 엔을 조달해 이를 M&A에 쏟아 부은 것이다. 이후 야후를 매입하면서 IT 분야에서 유통과 네트워크, 테크놀로지, 전시회, 인터넷, 미디어 인프라라는 6대 인프라를 장악하게 됐다. 최근에는 일본 3위 이동통신회사인 보다폰 재팬을 인수, 통신 산업에까지 진출하는 과감성을 보이고 있다.손 회장은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꿈과 아무 근거도 없는 자신감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 말한다.그런 그에게도 시련은 닥쳐 왔다. 소프트뱅크가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을 때 그는 ‘만성간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는 이때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밤이 되면 병실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치료가 힘들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갓 태어난 딸과 회사를 놔두고 왜 내가 이대로 죽어야 할까. 입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은행 차입도 끊어질 판인데…. 그 때문에 몰래 병원을 빠져 나와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지요. 그때 나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내가 왜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되묻고 되물었죠.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한 그는 절망하지 않고 자숙하면서 적절한 치료법을 찾았다. 다시 한 번 강렬한 삶의 의지를 다졌고 결국 병상을 딛고 일어섰다.마지막으로 손 회장의 경영 철학을 살펴보자. 그의 경영론은 ‘신(新)손자병법’이란 말로 대변된다. 손자병법에 빗대 자신만의 전략적 원칙을 체계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일류가 안 될 사업은 아예 손대지 않는다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맞추면서 시스템으로 승부한다 △전체를 조망하며 전략을 세우고 70% 승률이 예상될 때 싸움을 벌인다 등이다.‘혁명가’를 자처하는 그이지만 ‘70% 승률론’에선 현실적인 사업 감각도 돋보인다. 또 하나 숫자로 표현된 그의 경영 철학은 ‘1000중 체크’로 집약된다. 회사 경영 상황을 살펴볼 때 1000개 지표를 하나씩 따져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컴덱스를 인수할 당시 그는 인수 타당성을 시뮬레이션으로 평가한 2만 쪽 분량의 보고서를 철저히 점검했다고 한다.손 회장은 사실 M&A로 성장한 만큼 그의 협상술도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컴덱스를 인수할 때는 미리 8억 5000만 달러라는 인수액 상한선을 그어 두었다. 그리고는 아델슨 컴덱스 회장에게 “받고 싶은 가격을 딱 한 번만 말해보라”고 했다. 아델슨은 잠시 고민한 뒤 “8억 달러 주시오”라고 했고 손 회장은 바로 협상 성립을 선언했다. 몇 푼 아끼는 것보다 인수할 기업은 인수해야 한다는 철학에서 더 이상의 흥정은 그에게 필요 없었던 것이다.‘강한 것에는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도 그의 지론 중 하나다. 야후를 매입할 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스콧 맥닐리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최고경영자(CEO) 등에게 e메일을 보내 반대 여부를 물어봤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anielc@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