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변화의 이치는 응축(凝縮)과 이완(弛緩)이다. 한 번 죄고 한 번 풀어짐이다. 기운이 죄면 뭉치게 되고 뭉치면 형태를 나타낸다. 형태가 생기면 주변의 기운을 부르고 이윽고 변화가 생겨난다. 이것이 응축의 과정이다. 응축을 통해 생겨난 변화는 세상을 바꾸어 놓지만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이미 잠재하던 분열의 씨앗이 커지는 계기를 만든다. 궁극적으로 해체의 과정을 밟게 된다. 이것이 이완의 과정이다.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분열의 기세가 가장 맹렬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쯤 되어야 또다시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자각이 나타날까. 그 계기는 2014 갑오(甲午)년이 돼야 올 것이니 그때까지 분열은 거침없을 것이다.이번 쇠고기 촛불 집회는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분열돼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의 문제가 좌우 이념의 대립이었다면 이번 촛불 시위는 그런 단순한 구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양극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이번 촛불 시위는 설명할 수 없다.이념 간의 분열, 빈부 간의 분열, 세대 간의 분열, 노사 간의 분열, 지역 간의 분열, 서울 강남과 강북의 분열, 종교와 비종교 간의 분열, 디지털과 아날로그 간의 분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분열, 수도와 지방 간의 분열, 또 그런 분열 속에서 가령 노조 간의 분열과 같이 더욱 세분화된 분열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념의 목소리가 높지 않으니 이번 시위를 누군가는 축제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축제는 아니다. 분열이 너무 심해서 뭐라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기에 그런 얘기를 할 뿐이다. 따라서 그것이 축제라고 한다면 고통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위는 우리가 어디까지 분열될 수 있는지, 그 전체 스펙트럼을 현기증이 날 정도로까지 보여주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일이다. 이를 경제라고 한다. 우리 경제는 언젠가부터 떡을 크게 하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고 그러자 기존에 만들어진 떡을 어떻게 나누느냐를 놓고 전개돼 왔다. 떡을 키우는 일이 어느 정도 한계에 달하면 그 나라의 금리가 10% 이하로 내려간다. 우리가 그렇게 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였으니 그때부터의 핵심은 떡 나누기였던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그런 시대적 요청 속에서 등장했었다. 그런데도 정작 떡 나눔이 여의치 않자 우리 국민들은 다시 떡을 키우는데 자신이 있다는 이명박 정부를 만들었다.하지만 지난 10년간의 양극화로 인해 모두들 까칠해져 있었고 조급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국영 기업들의 민영화 발표와 공무원 숫자 감축 등으로 사회의 안정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을 위협했다. 거기에 내각은 ‘강부자’ 또는 ‘고소영’ 내각이라고 하니 불만과 소외감이 엄청나게 증폭됐다. 노무현 정부가 2004년 4대 개혁법을 밀어 붙이면서 곤경을 자초했듯이, 이명박 정부는 이유야 어찌 됐든 그나마 그간의 안정 기반을 흔든 것이다. 여기에 쇠고기 문제가 증폭되면서 이번 시위를 폭발적으로 확장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모두가 너무나도 미래가 불안한 탓이 아닐까. 물론 우리를 둘러싼 국제 환경은 척박하고 엄중하기만 하다. 그래서 대통령은 서둘러 모든 문제를 진행하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이해가 충분히 간다. 하지만 떡을 키우려면 속도와 능률이 아니라 그간 불안해져 있는 민심을 달래는 일이 급선무인 것 같다. 정치는 정말 어렵기만 하다.명리학자고려대 법대 졸업새빛인베스트먼트 고문프레시안 고정 칼럼니스트